나는 가문비나무 송진을 향로에 넣었다. 그사이 화덕의 불은 잦아들었고 창밖은 좀더 환해졌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고 나는 그에게 말했다. 그동안 나는 이곳의 기나긴 겨울과 마찬가지로 가문비나무 송진과 소문 속의 늑대 그리고 고독에 익숙해졌다. 시내로 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갈라진 숲길을 지나가야 한다. 그 길에서 숲이 두 부분으로 나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우체국, 식료품점, 도서관이나 은행은 모두 시내에 있다. 나는 종종 시내로 걸어간다. 그것이 내 산책이다. 빛이 희박한 겨울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해가 뜨자마자 서둘지 않으면 시내에서 돌아올 때 이미 어두워지는 일도 있었다. 어느 해인가 갈라진 숲길에서 늑대의 흔적이 발견되었다는 말이 있었다. 정확히는 누군가 숲 입구에 주의를 알리는 경고문을 써두었고 그것을 읽었다. 개를 숲에 풀어두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아이들도 안 된다. 하지만 너무 겁을 먹고 산책을 포기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경고문에는 적혀 있었다. (읽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지역신문에 기사도 났을 것이다.) 대개 늑대는 성인 인간을 먹이로 인식하지 않으므로 지나치게 겁낼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숲에 눈이 쌓이고 작은 동물들이 겨울잠을 자는 겨울이며 늑대가 굶주렸다면 그건 예외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숲에는 멧돼지와 노루가 있었고, 들판에는 마멋과 두더지도 있었다. 죽은 팔 수역에는 비버가 물가의 나무 둥치를 갉았다. 밤이면 수달이 찰박거리는 물소리를 내며 저수지를 가로질러갔다. 무엇보다도 은둔자들은 돼지와 닭을 마당에 풀어서 길렀다. 창고와 마당에 족제비가 나타난다고 들었다. 어치와 안개 까마귀, 뻐꾸기와 숲비둘기와 딱따구리 그리고 매와 부엉이. 붉은 여우는 밤에 울음소리만 들었을 뿐이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내가 끝내 받아쓰지 못할, 최후의 소리를 들으려는 사람처럼. 간혹 창을 열면, 막 숲에서 나온 흰색 바탕에 검은 점박이 무늬의 벤타이머 암퇘지가 갈라진 숲길을 향해 머리를 흔들며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지팡이를 든 은둔자 한 명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미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숲에 한줄기 눈부신 황금빛 마지막 광선이 꼿꼿한 가문비나무 줄기 사이를 관통했다. 숲의 나무들 사이로 핏빛 석양이 스며들어 아래부터 고이는 중이다. 붉은 거울 혹은 검을 연상시키는 저녁의 빛. 숲은 빛으로 불탄다. 그 안에서 고개를 돌리면 새가 앉아 있던 짙고 뾰쪽한 나무 꼭대기가 어두운 하늘을 배경으로 선명한 윤곽을 이루고 있다. 11월의 빛은 그늘을 향해 기울어지고, 놀랄 만큼 빠르게 저녁은 사라진다. 핏방울같이 흩어진 마가목의 붉은 열매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기를 나는 오래전에 멈추어버렸다. 나는 귀를 기울인다. 은둔자들은 한 외국인 번역가가 홀로 여름 거주지에 산다고 생각했다. 추위를 타는 그녀는 외출할 때면 일 년 내내 겨울 외투를 걸치고 다닌다고. 외국인 여자의 남자는 오래전에 집을 떠났고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고.
지난겨울 우연히 숲길에서 마주친 은둔자들이 물었다, 국경 너머 마을에서 열리는 시장에 갈 텐데 혹시 함께 가겠느냐고. 나는 그러겠다고 한 후 서둘러 외투를 걸치고 모직 숄을 두른 뒤 밖으로 나와 은둔자들이 어디선가 빌려 몰고 온 트럭 짐칸에 올라탔다. 트럭의 운전실에는 빈 좌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짐칸에는 은둔자 두 명과 나 말고도 벤타이머 암퇘지가 타고 있었다. 은둔자 한 명이 돼지를 무릎에 앉히고 병에 든 크림을 먹였다. 돼지의 이름은 벨라라고 했다. 그들은 간혹 트럭을 빌려 국경 너머 마을로 갔는데, 그곳의 노천 시장에서 밀가루와 감자, 비누 등 생필품을 싸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은둔자들이 면세 상점에서 커피와 담배 등을 고르는 동안 나는 의류나 신발을 파는 노점들을 구경하다가 칼집에 든 주머니칼을 하나 샀다. 숲에서 혹시 늑대와 마주칠 경우를 대비해서였다. 식료품을 사러 혹은 우편물을 부치기 위해 시내로 갈 때마다 외투 속주머니에 칼을 넣고 다녔다. 칼은 생각보다 뭉툭한 칼날을 가졌다. 이것이 편지 봉투를 여는 기능 말고 과연 늑대에게 정말로 위협이 될 수 있을지는 나 스스로도 확신이 없었다. 게다가 나는 지금까지 그 무엇도 칼로 찌른 적이 없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사냥꾼이 아니었다. 자객이나 군인이었던 적도 없었다. 사람이나 동물 혹은 그 어떤 대상도 찔러버리고 싶을 만큼 적대감을 느낀 적은 없었다. 늑대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 체룹은 밤에 글을 썼다. 작업을 마친 한밤중 혹은 해가 뜨기 직전인 이른 새벽 글쓰기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그는 긴 산책을 나갔다. 강도를 만날 경우에 대비하여 지갑은 항상 책상 위에 두고 나간다고 했다. 매일 그는 밤의 도심과 텅 빈 광장과 집 근처 으슥한 변두리를 산책했다. 다행히도 강도를 당한 적은 없다고 했다. 어느 날 그는 늑대를 만났다고 했다. 그날따라 시 경계 너머로 연결되는 숲 깊숙한 곳까지 들어갔고, 숲속 묘지의 담장을 따라 걷고 있는데 건너편 수풀에 홀로 서 있는 늑대를 봤다고 했다. 처음에는 주인과 함께 밤 산책에 나선 개인 줄 알았으나 곧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 다음 순간 늑대는 사라져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아마도 그건 체룹의 착각이었을 것이다. 대도시와 가까운 숲에, 강도라면 몰라도 늑대가 어슬렁거린다는 말은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늑대는 훨씬 더 조심스러운 동물이며 훨씬 더 야생의 존재라고 알고 있다. 아마도 그건 간혹 도시 외곽에 나타나는 붉은 여우이거나 떠돌이 개인데, 어두운 밤인데다 체룹이 놀라는 바람에 순간 착각한 것이리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은둔자들은 내게 벨라의 귀를 쓰다듬게 해주었고 병에 든 크림도 숟가락으로 먹일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내가 늑대를 본 적은―늑대가 나를 본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아직 한 번도 없다고―나는 말했다. 어쩌면 사람들이 늑대의 흔적이라고 생각한 건 단지 검은 개의 흔적일 수도 있다고. 예전에 체룹은 자신의 농가에서 일하던 일꾼 하나가 바로 그곳, 갈라진 숲길에서 죽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꾼은 어느 금요일 저녁 습관대로 가까운 마을의 술집으로 갔고 그날 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음날 아침 사람들이 그를 찾아 나섰다. 겨울이었고, 밤사이 내린 눈을 두텁게 뒤집어쓴 가문비나무 꼭대기에서 간헐적으로 무거운 눈덩이가 쏟아져내렸다. 일꾼은 갈라진 숲길 아래쪽 들판에 쓰려져 있었다고 했다. 들판은 온통 눈에 덮여 있어서 그를 발견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밤새 일꾼의 몸 위에도 눈이 쌓여 넓적한 바위나 흙무더기가 눈에 덮인 모양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예전에 그가 갈라진 숲길에서 커다란 검은 개를 봤다고 한 것, 돌을 던졌으나 개가 도망가지 않더라는 말을 기억해냈다. 이후로 일꾼은 갈라진 숲길을 지나 술집으로 갈 때마다 주인 없는 그 개가 또 나타날까봐 내심 겁을 먹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꾼은 술집으로 가는 일을 중단하지는 않았다. 이상한 일은, 그 일꾼 이외에는 아무도 주인 없는 떠돌이 검은 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가 보았다는 개는 아마도 유령 개일 거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체룹은 그렇게 믿었다고 했다. 체룹은 떠났지만, 그가 했던 말들이 여름 거주지 오두막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이루었다. 눈 내리는 어두운 저녁, 나는 칼을 품고 갈라진 숲길을 지났다. 그러나 나는 일생 단 한 번도, 자객과 마찬가지로 군인이었던 적이 없다. 나는 암살도 전쟁도 모른다. 나는 미움도 원한도 없다. 설사 내가 어느 미지의 전쟁을 겪었다 해도,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주변에서 실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고 해도, 내가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사냥꾼이 아니며 사냥꾼 삼촌도 없다. 나는 단 한 번도 칼을 든 사냥꾼을 본 적이 없다. 내 칼은 조용히 칼집 속에 들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정말로 숲에 늑대가 살고 있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나는 늑대의 소문을, 숲에 누군가가 연필로 급하게 갈겨써놓은 한 장의 경고 메모를 통해 알게 되었을 뿐이다. 늑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박하 오일을 사러 들른 시내 약국의 약사가 말했다. 감기에 걸려 목이 아플 때 가슴 부위에 강하게 문지르거나 뜨거운 물에 타서 그 증기를 호흡하라고 했다. 혹은 더운물에 타서 차처럼 마셔도 좋다. 약사는 늑대가 정말로 나타날지 묻는 내 질문에 걱정할 필요 없다고 웃으면서 대답했다. 보통의 경우 늑대는 사람을 먹이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널리 퍼져 있었다. 열이 나면 나는 박하 오일을 양쪽 관자놀이와 가슴 가운데에 바르고 강하게 문지른다. 목이 아프면 뜨거운 물에 박하 오일을 서너 방울 떨어뜨리고 그 김을 호흡한다. 그것을 마신다.
그가 이곳을 떠날 때와는 많은 것이 변했다고 나는 체룹에게 말했다. 가장 큰 변화는 원래부터 낡았던 여름 거주지 오두막이 점점 더 빠른 속도로 무서울 만큼 급격하게 낡아가고 있는 것이다. 항상 그늘진 북쪽 벽은 금이 갔으며 습기 머금은 연초록 이끼가 두텁게 앉은 지붕은 당장 수리하지 않으면 썩어서 무너질 것이다. 곳곳에 틈이 생겨 아마도 조만간 들쥐가 집안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 물론 벽도 지붕도 아무도 수리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이 오두막의 지붕과 같았으나 그중에서도 오두막의 지붕은 가장 사소한 일에 속한다. 울타리 일부가 무너졌고 저수지 기슭에는 산딸기 덤불과 함께 쐐기풀이 무성하게 자라나 판자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나는 가시에 찔리지 않게 조심하면서 낫으로 풀을 베어보려고 했다. 그러다가 저수지에 빠질 뻔했다. 다리의 널빤지가 썩어서 거의 무너져내렸던 것이다. 그래도 집 가까이 서 있는 늙은 자작나무를 베어내는 일만은 막았다고 말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와서 오두막의 문을 두드리며 나무를 베어내야 한다고 했다. 특히 북쪽 벽에 가까이 있는 가장 키가 크고 늙은 자작나무가 시급한 문제라고 했다. 빛을 가려서 이끼와 풀로 덮인 낡은 지붕이 더욱 빠르게 썩어가는 원인이며, 과거 태풍의 영향으로 둥치가 집 쪽으로 크게 휘어지며 자라는 바람에 다음번 태풍이 오면 언제든지 지붕 위로 쓰러져 오두막과 헛간 전체를 망가뜨리고 사람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그들을 집안으로 들이지 않았고, 그들이 내미는 서류에 절대로 서명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 가족이 아주 멀리 떠나버렸다고 했다고 나는 말했다. 그의 형제를 말하는 것으로, 그는 죽은 팔 가족 묘지에 묻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했다는 말은 역설적이게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말과도 같은 의미일 거라고 나는 덧붙였다. 변화를 지연시키기 위한 어떤 의미 있는 저항도 시도되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자연은 생명과 마찬가지로 끊임없이 유동하는 매 순간으로 이루어지고, 그것은 시간이라는 정물이 항상 신선한 고요를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왜 떠나지 않았느냐고? 나를 봐. 그게 내 자연이야.
우리는 버터차를 마시고 귀리죽을 먹고 손으로 빵을 뜯어 파기름에 찍었다. 빵은 아직 따뜻하고 부드러웠고 수분과 기름으로 촉촉했다. 그는 내가 아직도 이 오두막에서 살고 있을 거라고는, 당연히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고 다시 말했다. 그러나 곧 이어서 고백하기를, 여름 거주지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처음 발견했을 때, 이상하게도 어쩌면 내가 아직도 여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비록 찰나이기는 했지만, 문득 들었다고 했다. 물론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고는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예감을 믿지 않았다. 그 누구의 예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는 다시, 우리가 헤어진 이후 내게 한 번 엽서를 써 보냈다고도 털어놓았다. 물론 그 엽서를 나는 받지 못했다. 물론 그는 내가 당연히 이미 오래전에 여름 거주지를 떠났을 거라고,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믿었다고 한다.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고, 어린 시절 잃어버린 고향집을 되찾았으니 더이상 그의 곁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그는 나에게 오직 상실한 고향집의 대체품이었을 뿐이라고, 그렇게 내가 선언했던 그대로! 그러므로 당연히 지금 오두막에 불을 피운 건 여기 살고 있다는 은둔자 중 한 명일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한겨울을 이런 시골에서 보내려는 이는 은둔자 패거리밖에 없을 테니까. 나는 은둔자들에게서 우리와 다르게 유별난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었다는 16세기 동전도 마찬가지다. 부유함이란 그들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어휘일 것이라고, 공증인은 아마도 읍내에 떠도는 소문을 네게 그대로 옮긴 것 같다고. 농가의 은둔자들은 비밀 종교 신자들도 과격 환경주의자들도 아니고 너의 옛 공증인이 말한 것처럼 이발과 목욕을 거부하거나 이상한 코스튬으로 자신을 과시하는 이들이 아니라고, 단지 도시의 밀도와 생산 사회의 규율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는 학교 중퇴자들이라고 나는 말했다.
숲 가장자리 늙은 자작나무 우듬지를 휘몰아치는 바람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잠시 대화를 멈추고 바람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의 겨울은 다른 세계였다. 마치 모든 것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최후의 땅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이곳에 온 첫해에 나는 생각했다. 한 잔의 뜨거운 물, 그리고 두송나무 열매 몇 알. 그것이 기나긴 겨울밤 동안 나와 함께 머무는 전부였다. 우리는 두송나무 열매를 씹으면서 버터차를 마셨다. 귀리죽을 말끔히 비운 그는 어느새 파기름을 바른 빵도 두 덩이나 먹었다. 아마도 그는 여행중에 식사다운 식사를 하지 못해 배가 고팠던 것이리라.
그래서 나는 조만간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는 걸 알았다고, 계속해서 말했다. 이미 두 번이나 그를 우연히 마주쳤으니, 설사 그것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뿐이었을지라도, 설사 내가 본 것이 실제로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고 해도, 어쨌든 그건 이미 그가 아주 먼 나라에서 나를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는 뜻일 거라고 여겼다.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다, 지구 반대편 아득히 멀리 있는 그가 걸어서 마침내 내게 도착하기까지는. 아니 어쩌면 그는 이미 오래전에 출발했고, 이제 거의 내 가까이로 다가오는 중일지도 몰랐다. 어떤 경우라도 나에게 그를 불러일으키고, 그를 야기하고, 그와의 시간을 회귀시키는 움직임은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 대가로 나는 샐러맨더의 눈을 갖게 되었다고.
체룹은 자신이 몇 년 전에 보냈다는, 내가 받지 못한 엽서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그 엽서는 내가 최근에 그와 마주쳤다는 일과 어쩌면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기에. 내가 그의 모습을 목격했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나와는 달리 자신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경험했노라고 먼저 나서서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는 초자연적 현상을 믿지 않았다.―자신도 어떤 상황에서 내게 엽서를 썼는지 털어놓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이상한 일이라고 그는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지만 자신도 그동안 나를 본 적이 한 번 있다고 했다. 그것도 내가 그를 본 것과 같은 방식으로. 그런데 그 상황이 도저히 설명 불가능하기에, 그 스스로도 그 마주침이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아니면 환각을 본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어쨌든 그는 나를 보았고, 그래서 그는 내게 엽서를 썼다고 했다. 엽서의 첫 줄에는 자신이 죽었다고 쓰려 했다고. 생각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는 그렇게 했다. 아마도 장티푸스에 걸린 것 같다고, 그래서 자신이 죽었다고 그는 엽서에 썼다고 했다. 아주 가까운 미래를 선취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그것을 전혀 오류라고 여기지 않았노라고 했다. 그는 홀로 여행중이었다고 했다. 멕시코 푸에블라의 자치대학 세미나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자치대학에서 가르치는 친구 존이 주관하는 세미나였고 세미나의 주제는 ‘권력 없이 세계를 변화시키기’였다고 했다. 분명 정치학자가 아니며, 경제학이나 사회학을 공부하지도, 관심을 갖지도 않았던 그가 무슨 이유로 세미나에 초청 강사가 되었는지 내가 물었고, 그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했다. 심지어 자신은 세계를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잠시 뒤, 그건 거짓말이라고 번복했다. 세계를 변화시키고 싶다는 생각이 없다기보다는, 변화된 세계를 꿈꾸기를 멈추어버렸다고 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까울 거라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푸에블라 자치대학의 세미나에 초청받은 사람 중에는 사회학이나 정치 경제 관련 학자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했다. 모두 그와 같은 작가나 시인, 음악가, 교육가, 연극배우나 화가 등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시 엽서로 돌아와서, 그는 더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는다고 했다, 멕시코에서도 그리고 장티푸스에 걸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오직 세계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가장 멀리 가는 버스를 골라 열 시간이나 떨어진 고원지대의 한 오지 마을로 갔고, 그 마을 유일한 작은 여관의 유일한 투숙객으로 머물렀다고 했다. 그곳의 태양은 도시에서 보는 태양보다 두 배로 크고 두 배로 뜨거웠다고. 환하고 뜨거운 백색의 커다란 태양 아래서 원주민들은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얼굴에 마치 구두약처럼 보이는 검은 안료를 바른다고 했다. 한낮의 직사광선은 끔찍했고 해가 지면 소름 끼치는 냉기에 턱이 덜덜 떨릴 정도였다고 했다. 시장 카페에서 빵과 치즈와 커피로 점심을 먹은 직후 병의 최초의 증후가 시작되었다고 했다. 엽서의 첫 줄에, 그는 자신이 죽었다고 썼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그 일을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으므로 그가 직접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엽서를 쓴다고(“그렇다면 이것은 일종의 유언장인가?”) 그러므로 시간 순서에 약간의 오차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노라고, 여행지에서 열병에 걸렸다고, 약도 없고 의사도 없고 도와주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여관방에는 전화기도 없고 프런트조차 아무도 없이 텅 비어 있노라고. 이틀 동안 거의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한없는 고통을 느끼며 방에서 걸어나왔다고, 그렇게 그는 썼다고 했다. 여관 입구는 문이 없이 마치 유목민의 천막처럼 라마 가죽으로 만든 담요가 한 장 걸쳐져 있었고, 그 담요를 젖히고 거리로 나서자 막 폭발이 일어난 듯 희고 뜨거운 섬광과 같은 태양빛이 그늘 한 점 없는 텅 빈 세계를 비추고 있었다고 썼다고 했다. 공기는 그 어떤 밀도도 없이 투명한 진공이었다. 아마도 그건 고열이 닥치기 전까지 지난 며칠 내내 밤새도록 잠들지 못하면서 말라파르테(Malaparte)의 책 『피부』를 읽었기 때문일 거라고, 그렇게 그는 엽서에 썼다. 그는 그 순간 자신의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을, 오직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만 볼 수 있는 비전이라고 믿었노라고 했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언젠가 최후의 날이 다가와 눈을 감는 순간 마지막으로 자신의 눈꺼풀 위로 떠오르게 될 것이 무엇일지 늘 궁금해했는데, 그것을 마침내 보게 된 거라고 믿었다고 했다. 그것은 지상의 다른 장소에서보다 두 배로 가깝고 두 배로 커다란, 두 배로 환한 태양이었다고 했다. 태양은 지상의 모든 생명과 의식을 빨아들이며 매 순간순간 더욱 크게 자라나는 듯했다. 그는 현기증을 느끼며 벽에 기댄 자세로 여관 앞에 서 있었다고 했다. 여관 앞 작은 광장에는 타원형 구름 하나가 마치 한 마리 흰 고래처럼 지상 가까운 곳에 낮게 정지한 채 떠 있고, 광장에서 이어지는 비스듬하게 경사진 언덕 위에는 손에 삽을 든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세 남자들의 실루엣이 보인다고 엽서에 썼다고 했다. 삽을 든 남자들은 참을성 있게 꼼짝도 없이 서서 뭔가가 일어나기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챙이 넓은 모자를 쓴 그들은 무덤 파는 인부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임을 알았다고 썼다고 했다. 놀랍게도 무덤덤한 기분이었으며, 죽음과 함께 이 고통도 사라진다면 크게 안타까울 일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육체의 고통과 더불어 머리와 영혼을 짓누르는 한없는 무거움. 그것이 그가 느끼는 유일한 감각이었다고 했다. 그 순간 그는 해방되기만을 간절히 원했다고 했다. 설사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상관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놀랍게도, 광장에 면한 모래색 건물 일층 작은 사무실의 유리창 뒤편에서 한 여자가 보건소로 장티푸스 약을 부탁하는 편지를 쓰고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그 여자가 바로 나였다고 했다. (“그건 분명히 메레 너였어.”) 나는 소박하고 단순한 디자인의 흰색 면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고 긴 머리를 목뒤에서 하나로 모아 묶은 차림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편지를 쓰기 위해 책상에 고개를 기울인 프로필만으로 판단하건대, 내 얼굴은 우리가 처음 만났던 당시와 놀랍게도 흡사해 보였다고 했다. 젊고, 무표정하고, 내면 깊이 충격을 받았으며, 모든 것을 회피하는 입매와 눈빛, 말을 거부하는 거칠고 뜨겁게 마른 입술. 지상에서 보내는 최후의 날, 생의 마지막에 단 한 번 보게 될 풍경들, 내가 그 풍경의 일부였고, 그는 그렇게 믿었노라고 했다. 어떻게 내가 거기에 있을 수 있는지 그 상황이 설명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분명 그건 나였다고 했다. 또 어떻게 내가 쓰는 편지의 내용을 알 수 있었는지,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지만, 이 모든 비균형의 전체에는 정체불명의 열과 같은 광적인 혼몽함이 지배하고 있었노라고 그는 말했다. 어쨌든 그래서, 내가 쓰는 부탁 편지를 통해 그는 자신이 장티푸스에 걸렸음을 확신했다고, 그렇게 엽서에 썼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주문한 약이 소포로 도착하기도 전에 그는 죽을 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예감했고, 그것을 알았고, 그는 미련도 후회도 없는 슬픔을 느낀다고 엽서에 썼다고 했다.
그 엽서는 어디로 갔느냐고 내가 물었고, 그는 엽서를 마을의 작은 우편 수집소에서 부쳤다고 했다. 그가 묵고 있던 하나뿐인 여관이 곧 우편 수집소도 겸하고 있었다고. 마을의 집들은 따로 주소가 없었고 모든 우편물은 일단 수집소로 모인 다음 주민들 각자가 알아서 찾아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이 주일에 한 번 도시의 우체국에서 집배원이 편지와 신문 등을 한꺼번에 배달해주고, 그때 수집소에 모인 우편물도 수거해간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도시의 우체국으로 간 엽서는, 늘 그렇듯 부실한 행정과 직원들의 태만과 부주의로 우편물 창고 구석에서 몇 달이나 잊힌 채 잠들어 있다가, 운이 좋다면 마침내 발견되어 선박으로 배달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반대로, 운이 좋지 않아 아예 분실되어버릴 경우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는 엽서를 이곳 여름 거주지가 속한 본채 농가로 부쳤다고 했다. 내가 여기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달리 다른 주소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엽서는, 내가 정말로 받아서 읽게 되리라는 일말의 희망 없이, 그렇게 쓰였다고 했다. 그런데 만약 엽서가 우체국의 실수로 하필이면 잘못된 주소로 보내졌다면―그런 일은 정말로 너무도 흔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다시 몇 달 혹은 경우에 따라서는 몇 년이 걸려 원래 출발했던 멕시코 산속 마을의 수집소로 반송되었다가, 단지 엄청나게 운이 좋은 경우에 한해, 친절한 여관 주인이자 우편물 수집소장 덕분에 다시 도시의 우체국을 거치고 선박에 실려, 해적의 습격도 받지 않고 이런저런 전쟁으로 항구나 해협이 봉쇄되지도 않고 불의의 사고로 침몰하거나 하는 일도 없이 대양을 건너 무사히 내게로 배달된다면, 그렇다면 정말로 기적 같은 큰 행운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몇 년 아니 몇십 년까지도 걸릴 수가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내가 그의 엽서를 아직 받지 못했다고 해도 엽서가 내게로 끝내 오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닐 거라고, 그는 말했다. 자신은 수십 년 전 보내진 우편물이 뒤늦게 배달되었다는 말을 종종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약간의 문제가 있는데, 당시 극심한 두통과 고열 때문에 자신이 과연 주소를 정확하게 기입했는지 그건 장담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아,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는 정확한 주소에 크게 신경쓰지는 않았는데, 엽서가 반드시 내게 가닿기를 간절하게 원하는지,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이미 말한 대로 내가 여름 거주지를 진작에 떠났을 것으로 믿었으므로, 내가 그렇게 말하기도 했고 또 어차피 그 자신도 그게 당연하다고 여겼으므로, 고향집의 정확한 주소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지만 중요한 건 그는 죽었고, 그가 나를 보았으며, 생의 마지막으로 눈앞에 나타난 사람에게 자신의 죽음을 써 보내야만 했다는 것이다. 그건 수신자에게 가닿으리라는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없는 자기-부고였다. 만약 가능했다면 그는 엽서가 아닌 전보를 치고 싶었을 거라고 했다. 그는 현기증과 구역질, 한없는 두통을 느꼈고 정신이 서서히 혼미해져갔다고 했다. 그는 한쪽 팔꿈치를 여관 로비의 작은 탁자 위에 올린 채 엽서를 썼다고 했다. 정신이 육체로부터 빠르게 유리되며 자신을 떠나는 것을 느끼면서, 무엇을 쓰는지 인식하지도 못하는 채로 계속해서 썼다고 했다. 그의 최후의 말들은 그를 넘어서서 저절로 발화되었다. 자신이 쓴 엽서를 다시 읽어보고 싶었으나 너무도 혼미한 머리 때문에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젖혀진 라마 가죽 사이로 광장의 섬광과도 같은 햇빛이 밀려들어왔고, 심지어 기다리다 지친 무덤 파는 인부들이 아직 그가 죽지도 않았는데 마을 공동묘지의 한 구역을 파기 시작한 것을 보았노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무덤 파는 일을 끝내기 전에 엽서를 완성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했다. 무덤이 완성되면, 그들이 올 것이다. 그를 데려가기 위해서. 그는 서둘렀고, 마침내 엽서의 마지막 줄에 자신의 이름을 쓰는 단계에 이르러서는 뜨겁고 건조한 실신 상태로 휩쓸리듯 빠져들어가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그의 정신이 빠르게 휘발되고 있었고 그는 숨을 가쁘게 헐떡였다. 그는 아무도 없는 여관 로비의 작은 탁자에서, 왼쪽 팔꿈치를 탁자 위에 올리고 오른손에는 펜을 쥔 채로, 이제 곧 자신이 의식을 잃으리라는 것을 예감하면서, 무덤 파는 인부들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듣고 있었노라고 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더이상 살아 있지 않다! 이것이 그가 기억하는 마지막 문장이었다고 했다. 그의 머리는 탁자 위로 무너지듯 내려앉았다. 그리고 완전히 눈을 감기 전, 그는 자신의 엽서를 받아서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미래가 선취되었다. 이렇게 많은 내용이 이 작은 한 장의 엽서에 들어 있다니 나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엽서를 읽는 동안 내 머리 위 하늘에서는 태양만큼이나 커다란 별들이 빠르게 회전하며 흘러갔다. 나는 생애 최초로, 마치 누군가의 꿈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꿈속에서 내게 엽서를 썼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엽서의 내용을 미친듯이 살펴보면서, 혹시 그가 자신이 묻힌 장소를 밝혔는지 알아내보려고 했다. 오직 단 하나의 소망은, 그가 묻힌 장소를 알고 싶다는 간절함, 그게 전부였다. 아무리 먼 나라일지라도 나는 그곳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것은 내 최초의 여행일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진정한 의미에서 단 한 번도 먼 여행을 한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모든 것을 잊었지만,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던 뜨거운 간절함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고 피부에 화상처럼 남았다. 나는 모든 것을 잊었지만, 어느 날 감춰진 내 살갗의 화상 흔적을 물끄러미 들여다볼 것이다. 엽서를 손에 든 나는 엽서가 떠나온 곳으로부터 너무도 아득히 멀리 있었다. 이것은 내가 받은 최초이자 최후의 부고였다. 단지 한 가지 바람은, 우리는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때 나는 푸에블라의 대학 건물을 헤매며 다니다가 ‘권력 없이 세계를 변화시키기’라는 세미나가 열리는 강의실로 우연히 들어서게 된다. 나는 그의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는다. 체룹. 그때 우리의 육체는 지금과 다르지만, 마치 예언과도 같은 우리의 이름은 그대로 간직될 것이며 우리는 그 이름을 기억해낼 것이다. 체룹. 다시 엽서로: 자신은 죽었지만,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무덤 파는 남자들이 자신의 몸을 오렌지색 담요로 둘둘 말아 죽은 라마와 함께 관도 없이 흙속에 파묻었지만, 그리고 그 위에 임시로 투박한 나무 십자가를 꽂았지만, 그건 특별한 종교적 의미가 아니라 그 나라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무덤과 죽음에 대한 문화적인 표상일 뿐이며, 그런 이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느낌과 감정과 같은 비육체적인 성분은 놀랍게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그는 엽서에 계속해서 썼다고 했다. 죽기 전에는 결코 몰랐던 사실이라고 했다. 언젠가 나를 만나게 된다면 이 모든 것에 대해서 내게 말해주리라고, 자신의 여행에 대해서, 한마디도 이해할 수 없었던 세미나에 대해서, 멀고도 아득하기만 한 세계에 대해서(“세계는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게 아니었다.”), 육체와 고통에 대해서, 장티푸스에 대해서, 임시 나무 십자가를 꽂아둔 무덤에 대해서(“아무리 먼 나라일지라도 나는 그곳을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것은 내 최초의 여행일 것이다.”). 그 순간 마치 내가 그의 최후의 여행에 동행하듯이 느꼈다고, 그는 말했다. 그는 희박해져가는 의식 속에 있었다. 모래 냄새 나는 산들바람이 불어왔고, 내가 그와 함께 여관 이층 발코니에 앉아 오렌지차를 마시고 있었노라고, 이 순간 마치 내가 그의 여행에 동행하는 것처럼 느꼈노라고, 그렇게 말해주리라 생각했다고, 말해주리라고, 마침내 고통이 사라진다는 큰 기쁨과 함께 찾아온, 환하고 고독했던 죽음에 대해서, 마치 섬광과 같은 최후의 순간, 그렇게 엽서에 썼다고 했다. 우리는 곧 거기서 만나게 되겠지, 어쩌면 우리는 머지않은 미래에, 어쩌면 바로 오늘 저녁, 투박한 임시 나무 십자가가 있는 무덤이 내려다보이는 자리, 그곳에 앉아 있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그는 엽서에 썼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