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년 전, 아니 구 년 전이었던가, 쳄발로를 가져가겠느냐고 마야가 물었다.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악기를 둘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아눅으로부터 남은 유일한 물건인데 아눅을 전혀 알지 못하는 낯선 사람 손에 들어가는 것보다 네가 갖고 있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은데, 하고 그녀는 말했다. 나는 쳄발로를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들의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마야는 나를 위로하려 들지 않았고, 그것이 내게 위로가 되었다,
나는 아눅의 쳄발로에 대해서는 그 어떤 생각도 한 적이 없는데, 그 정도로 나는 그의 방에서 사는 동안 쳄발로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마야에게서 쳄발로를 가져가겠느냐는 질문을 처음 받았을 때, 나는 마치 쳄발로가 거기 있는 걸 예전에는 알지 못했던 사람처럼 놀라고 말았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에게도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많은 장소에서 살았다. 하나의 임시 주소지는 또다른 임시 주소지로 이어졌다. 그건 딱히 자신의 집이라고 부를 만한 고정된 장소가 없는 사람에게 부여되는 삶의 양식인데, 나 역시 그랬다. 그 양식이 나를 아눅과 만나게 만들었다.
아눅은 마야의 집에 하나의 방을 갖고 있었다. 겨울에만 도시에 머무는 아눅의 사정을 아는 마야는 저렴한 방세로 그에게 방을 임대했다. 그들은 오랜 친구였다. 마야는 많은 음악가 친구들이 있었다. 그 방은 아눅이 산에서 내려오는 겨울 한철을 제외하고는 대개 비어 있었다. 아눅은 그곳에 자신의 책과 서류와 기록물과 원고 들을 보관했다. 하지만 그의 짐이라고 할 만한 물건들은 많지 않아서, 그의 방은 항상 절반쯤 비었다는 인상을 주었다. 나는 글을 쓰고 번역 작업을 할 공간이 급하게 필요했고, 그걸 마야로부터 전해들은 아눅은 자신의 비어 있는 방에 내가 머물 수 있게 해주었다. 당시 나는 아눅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당연히 그를 모르고 있었으며 그 역시 나를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언제라도 작업할 공간이 필요하다면 그 방을 사용해도 좋다고 마야로부터 전해들었다. 게다가 방세도 따로 낼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방은 꽤 큰 편이고 커다란 창이 있었다. 책장에는 책들이 있었고 흰 천을 씌운 가구 몇 개와 거울, 편안하고 쾌적한 침대, 구형 라디오, 글을 쓸 수 있는 책상, 창밖으로는 도시의 지붕들 저 너머로 멀리 구시가지 가톨릭교회의 뾰쪽 탑이 보였다. 처음에 나는 체룹의 집에 주로 머물면서 낮에 작업하기 위한 공간으로 아눅의 방을 활용했지만, 곧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시간이 흘렀고 이내 겨울이 되었다. 방에는 아눅의 사진은 하나도 없었지만 손바닥만한 크기의 목탄 초상화가 한 점 벽에 걸려 있었다. 얼굴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기보다는 극단적으로 간소한 선 몇 개로 이루어진 스케치에 가까웠다. 나는 책장에 있던 작은 앨범 속에서 아마도 젊은 시절의 그의 모습을 찾아낼 수 있었다. 첫 서리가 내린 아침, 나는 오늘 아눅이 올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는 오지 않았다. 마야는 그저 어깨를 들썩이며, 그가 정확히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산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산 아래 농부의 집에서 뒷정리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번역을 마친 「Ja(그래요)」를 검토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소설은 마지막에 페르시아 여자가 그래요, 라고 말하면서 끝난다. 나는 책상 서랍에서 꺼낸 마가린과 차가운 빵, 그리고 부엌에서 따뜻한 차를 가져와 저녁을 먹었다. 밤에 문득 잠에서 깨었다. 유리창 밖에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 듯했다. 그는 아눅일까. 그러나 커튼을 젖히자 창밖은 비가 내리는 밤이었다. 차가운 낙엽이 유리창에 달라붙어 있었다. 라디오를 켜자 시벨리우스가 흘러나왔다. 사람의 모습은 전혀 없는, 겨울 풍경화 속과 같았다.
나중에 아눅은 자신은 오래전 탑에서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탑에서 사는 것이 한때의 꿈이었다고 했다. 탑에는 출입구가 없지만 빛이 들어오는 창이 있어야 한다. 아마도 그건 조이스, 아니 횔덜린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꿈을 꾸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단 한 번도 탑에서 살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 자신에게 단 하나 사치스러운 꿈이 있다면, 그건 죽은 뒤에 아무도 모르는 곳에 매장되는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그야말로 꿈에 불과하다는 걸 그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높은 확률로 가난한 자들을 위한 집단 구역에 묻힐 것이고 그 역시 현실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어차피 그곳 역시 이름도 비석도 없는 익명의 무덤일 테니까.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자신이 한때 알던 사람들의, 혹은 실제로는 한 번도 만난 일이 없지만 이름만 아는 이들의 무덤을 찾아다녔다. 그의 주된 직업은 희곡작가이자 양치기였지만, 그와 별개로 경제적인 보상을 바라지 않고 열성적으로 행하는 또다른 업은 묘석 청소부였다. 그가 찾아다니는 무덤은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으므로 그는 간혹 산에서 내려온 겨울 동안 무덤을 찾아가 묘석을 청소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 무덤의 주인들은 목동이나 사냥꾼 혹은 음악가나 연극배우, 그리고 대개 무명으로 죽은 작가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무덤을 돌봐줄 가족이 없다는 것이다. 묻힌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그들의 무덤은 예외 없이 무성한 풀과 진흙에 덮이고 묘석에는 이끼가 가득 자라나 새겨진 이름을 찾아내기도 쉽지 않다고, 나중에 아눅으로부터 들었다. 기차에서 내린 아눅은 묘지를 찾아간다. 묘지 한구석 방치된 무덤을 발견한다. 풀을 베고 진흙과 잡초를 걷어내고 묘석을 솔로 문질러 이끼를 닦아냈다. 마지막으로 묘석 위를 물로 깨끗이 씻어내어 이끼와 진흙에 묻혀 있던 이름이 드러나게 한다. 그리고 떠난다. 그는 그렇게 전국을 여행했다. 집으로 돌아온 밤에 그는 글을 썼다.
마야의 집은 평범한 낡은 공동주택이었고, 아눅의 방은 현관문을 열자마자 바로 마주 보이는 자리에 있었다. 그래서 내가 아눅의 방에서 살 때, 집을 드나들면서 마야와 마주칠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아눅의 방으로 이사한 후 처음 이 주일 동안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그래요」를 번역했다. 페르시아 여자가 나오는 짧은 소설이다. 베른하르트의 소설에 여자가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그래요」는 내 기억에 강하게 남았다. 마지막 문장을 번역하면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그래요, 라고 스스로에게 소리 내어 말했다. 내 말은 마치 아눅을 향한 어떤 대답처럼 들렸다. 제기되지 않은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그래요」를 번역하던 이 주일은 내가 아직 모르며,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아눅을 기다리며 보낸 이 주일이기도 했다. 가을이 깊어지고 있었다. 겨울이 되기 전에 아눅은 산에서 내려올 거라고 들었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나는 그것을 항상 생각했습니다.”) 나는 페르시아 여자였던가?
고등학교에서 역사와 프랑스어 교사로 일했으며 은퇴 후에는 합창단에서 노래를 부르는 마야는 교회가 비는 평일 저녁에 합창 연습을 위해 교회로 갔다. 집에 있을 때 그녀는 침실 곁에 딸린 창고만큼 작은 서재에서 편지를 쓰거나 책을 읽었다. 그녀의 오랜 파트너이며 마야가 늘 M이라고 부르는 마르쿠스는 근처의 다른 집에서 따로 살았고 매일 저녁 그녀를 방문했다. 그리고 함께 합창 연습을 가거나 연습이 없는 날은 극장이나 오페라, 음악회나 공연 등을 보러 가는 것이 그들의 저녁 일상이었다. 저녁의 외출이 없는 삶이란 그들에게 생소했다. 내가 머물던 시기 마야는 가족의 역사를 기록해 책으로 출간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족은 폴란드 포젠으로 이주한 독일인이었는데 패전 후 독일인들이 추방될 때 집과 토지와 가축 등 모든 소유물을 그곳에 놓아두고 맨몸으로 독일로 돌아왔다고 했다. 마을 이장이던 아버지는 전범으로 폴란드 감옥에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여덟이었다. 그중 가장 막내인 마야는 아직 어머니의 뱃속에 있었다고 한다. 마야의 어머니와 손위 자매들은 포젠에서 소수 독일계 이주민으로서 농장을 운영하며 살았던 시절, 그리고 전후 돈 한푼 없는 피란민으로 패전국인 고국에 돌아와 수용소를 거쳐 낯선 땅에서 새로이 정착해야 했던 생활상에 대해 구술했고 마야는 그 내용을 이미 오래전에 많은 분량의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해두었다. 어머니와 자매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 일을 완수할 수 있어서 마야는 기쁘다고 했다. 그녀는 녹음 내용을 인터뷰 형식으로 출판할 계획을 갖고 원고를 다듬는 중이었다. 작은 서재 문 뒤에서 희미하게 들려오던 녹음된 목소리. 마야의 말에 의하면 80년대에 그녀의 어머니와 가장 나이 많은 자매는 함께 폴란드로 여행을 갔다. 어머니가 죽기 전에 오래전 가족들이 함께 살던 폴란드 집을 찾아보기를 소망했기 때문이다. 집은 모양이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으며, 그 집에 살고 있는 폴란드 가족들은 집 앞에 물끄러미 서 있는 낯선 이방인 여자들을 보자 하던 일을 멈추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대해 차를 대접했다고 한다. 서로 언어는 통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좋은 분위기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함께 테라스에 앉아 차를 마셨다. 물론 마야의 어머니와 자매는 자신들이 전쟁이 끝나기 전까지 바로 그 집에서 살았다는 사실을 굳이 밝힐 생각은 없었다고 했다. 혹시나 아무것도 모르고 그 집에 살게 된 폴란드 가족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득 마야의 자매는, 자신들이 누구인지 이 폴란드 가족이 이미 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아마 그들과 마찬가지로 추방당한 사람들이나 그 가족들이 최근 들어 종종 자신들의 옛집을 보기 위해서 찾아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들은 감옥에서 죽은 아버지의 무덤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폴란드 가족은 떠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오래오래 지켜보며 손을 흔들었다고 했다. 그들은 고향을 이해하는 사람들이었다. 간혹 마야가 주방에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숲으로 갔다네, 그러나 돌아온 건 한 사람뿐” 하고 되풀이되던 노래를 나는 기억한다.
아눅이 실종된 후 어느 날, 내가 할말이 있다고 하자 체룹은 당장은 시간이 없지만 저녁에 내게, 마야의 집에 들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저녁이 다 지나고 자정이 될 때까지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다음날 그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는 받지 않았다. 나는 체룹의 집을 찾아갔지만 집 역시 비어 있었다. 책상 위 타이프라이터 곁에 연락을 바란다는 메모를 써두고 나왔다. 소나기가 쏟아진 날이었다. 갑자기 날이 어두워지며 폭탄이 떨어지듯이 번개가 쳤다. 공기는 미지근한 소금물처럼 끈적였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체룹을 발견했다고 생각한 내가 뒤에서 그를 불렀다. 체룹! 그는 뒤돌아보았다. 그러나 뒤돌아본 건 그가 아니었다. 그가 걸었고, 그가 지하철 어두컴컴한 구석자리에서 책을 펼쳐들었다. 그러나 걷는 것도, 책을 펼쳐든 것도 체룹이 아니었다. 자정에 나는 체룹의 집을 다시 찾아갔다. 책상에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내가 들어서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맹렬한 기세로 타이프라이터를 치고 있었고, 그래서 문을 열기도 전 복도에서부터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문안으로 들어가자 그는 일순간 타이프라이터 치기를 멈추었으나, 잠시 뒤 여전히 되돌아보지는 않은 채 다시 무서운 힘으로 키를 치기 시작했다. 그는 타이프라이터 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의 집에서 살던 시절 나는 항상 그의 타이프라이터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을 찾아다녔으나 지금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행여 내 목소리가 타이프라이터의 소음에 묻혀버린다 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내 의무를 다할 뿐이다. 그는 온 힘을 다해 활자 하나하나를 마치 망치로 부수듯 내리치고 있었다. 막 외출에서 돌아온 듯 두터운 모직 양말에 외출용 흰 셔츠, 모직 바지에 재킷, 목에는 붉은 사냥꾼 스카프까지 메고 있었다. 그가 사냥꾼의 물건에 집착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 사냥꾼의 언어에 흥미를 느끼는 탓이라고 했다. 심지어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딱히 필요도 없는 사냥꾼 자격증을 얻으려고도 했다. 그는 시험 준비를 진지하게 했었지만 최종 시험을 앞두고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아마도 최후까지 그를 머뭇거리게 만든 건 진짜 총으로 치러지는 사격 시험이었을 것이다. 물론 총으로 정말로 뭔가를 죽여야 하는 건 아니었고 단지 과녁을 맞히는 시험이었지만,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마비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화가인 그의 형제가 사냥꾼이 되었다고 들었다.
체룹은 내가 온 것을 알았지만 일어서지도, 내게 인사를 건네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등뒤에 선 채로 입을 열었고 모든 것을 말했다. 그는 내가 말을 하는 중에도, 여전히 일어서지도 뒤돌아보지도 않은 자세 그대로, 계속해서 타이프라이터를 두드렸다. 어느 대목에서 그가 유난히 타이프라이터를 크게 두드릴 때도 나는 목소리 톤이 올라가지 않도록 했다. 타이프라이터 소리가 시끄러워서 그가 내 말을 제대로 알아들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그래도 나는 마지막까지 차분하게 전부 말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에게 알려야 할 내용을. 말을 마친 뒤 잠시 기다렸다. 어쩌면 체룹이 내게 할 말이 있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마침내 체룹이 타이프라이터의 키를 거의 산산조각 내버릴 듯이 거칠게 쾅하고 내리쳤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머리 위로 번개가 떨어진 것 같았다.
그가 여전히 자세를 바꾸지 않은 채로 나를 보지 않으면서 말했다. 마침내 원고를 완성했어, 지난 몇 달간 이 연작시를 마치지 못해서 괴로워하던 중이었거든. 정말 멋진 마무리가 지금 막 떠올랐지 뭐야. 이걸 멕시코로 가져가야겠어. 존의 의견을 물어보고, 일부를 잡지에 실을 수도 있겠지. 어때 한번 들어보겠어? 네가 뭐라도 좋으니 한마디만 코멘트해준다면 좋을 텐데. 아니 지금은 그러고 싶지 않다고? 오 그래, 알겠어. 피곤하다니 이해해. 자정이 넘었으니 당연하지. 그런데 내가 이걸 쓰는 동안 네가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던데, 너도 알겠지만 난 쓰고 있을 때는 다른 일에 전혀 신경을 쓸 수가 없어. 쓰기를 중단할 수는 당연히 없고. 그러니 미안하지만 중요한 내용이었다면 다시 한 번만 더 말해줄 수 있을까? 아니 그러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내가 이해했든 그러지 못했든 그건 네가 도울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지금 말한 거야? 그래, 좀 냉담하게 들리지만 네가 원하지 않는 일을 아무도 너에게 강요할 수는 없겠지. 뭐라고, 지금 가겠다고? 차도 한잔 마시지 않고 벌써 가겠다는 거야? 내가 쓰는 데만 열중해서 차도 대접해주지 않았다고 화난 건 설마 아니겠지?
그는 안경을 벗었다. 책상 맞은편 유리창에 그의 눈동자가 비쳤다. 잠시 뒤 그는 아마도 다음주나 그 즈음해서 나를 만나러 마야의 집으로 오겠다고 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나는 말했다, 나는 조만간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그러고 싶다고, 그러다보니 짐을 싸야 하고 준비할 일이 많으니 그를 위해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니, 우리는 함께 대화를 나누게 될 거야, 하고 체룹은 그다지 고집스럽지 않은 온화한, 그러나 바위처럼 변함없는 톤으로 말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마야의 집에서 나와 새로운 작업 공간을 필요로 한다면, 그리고 예전처럼 자신의 집에서는 쓰는 일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면, 새로운 작업 공간을 찾는 데 자신이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사실은 이미 적당한 방을 보아둔 곳이 있고, 다른 도시로 이사간 친구의 집인데 적어도 몇 달 동안은 내가 머물러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체룹,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 내 생각에 넌 나를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이 순간 내 눈은 고향을 가진 자의 그것처럼 변했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유리창을 통해 미소 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그리고 나는 떠났고 체룹은 책상에서 일어서지 않았다.
며칠 후 체룹은 마야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고, 나를 찾아오겠다고, 이번에는 자신이 내게 할말이 있다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번역할 일거리가 많다고, 게다가 고향으로 돌아갈 준비도 서둘러야 한다고, 그의 방문을 거절했다. 그래도 체룹은 포기하지 않았다. 나는 커다란 창가, 아눅의 책상 위에 걸터앉아 해가 지는 회색빛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책상 서랍에 빵과 마가린을 넣어두고 마가린을 바른 빵 한 조각과 사과 한 알로 대부분의 식사를 해결했다. 거기에 따뜻한 차 한잔을 곁들일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아주 간혹 근처 중국 식당에서 파와 유부가 들어간 국수를 사 먹었다. 나는 체룹에게, 생계를 위해서 번역을 잠시도 멈출 수 없다는 핑계를 댔다. (“나는 토마스 베른하르트의 모든 작품을 번역하고 싶어, 그러나 아마도 그건 불가능하겠지.”) 나는 끝내 체룹에게 확답을 주지 않은 채로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어느 날 마침내 아래층의 초인종이 울렸고, 마야가 문을 열었다. 아아, 체룹이 왔다.
그사이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으므로 혹시 내가 아예 독일을 떠났을까봐 걱정이 되었다고 체룹은 말했다. (“너는 항상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말했으니까. 너는 자주 집을 이야기했어. 영영 집이 없다거나 혹은 마지막 순간에 집을 발견했다는 서로 상반된, 그러나 기묘하게도 항상 한 가지 결론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네 얼굴에 생각에 잠긴 표정이 떠오르면, 그건 이제 네가 집을 이야기할 거라는 의미였지. 그 집은 처음에는 네 고향집이었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추상적인 집이 되어간다는 느낌이 들었어. 그러다보면 언젠가, 우리가 함께 거주하는 공간이 곧 너에게도 집이 될 거라고, 아니 어쩌면 이미 그렇게 되었을 거라고 난 생각했지, 그러니 당연하게도, 너는 집으로 돌아올 거라고, 하지만 이제 그동안의 내 생각이 완전한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그의 짐작과는 반대로 나는 더이상 집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으나, 체룹에게 굳이 그 사실을 털어놓지는 않았던 것이다. 잘 생각해보면 체룹을 만나기 이전에도 나는 한 번도 집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정확히는 집을 위한 언어를 어느 순간 상실했던 것이다. 나의 집-없음이란 상태는 어떤 형태로든 체룹과 관련이 있는데, 내 부재하는 집은 체룹을 만나서 비로소 완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집은 내가 알지 못하는 풍경과 울타리를 얻었으며, 기둥과 서까래와 지붕 그리고 입구 없는 탑을 세워올렸고, 부피도 입체도 없는 구조와 공간을 획득했고, 줄거리 없는 한 권의 책처럼, 그 안에서 나 홀로 고독한 추상의 거주가 이루어지고, 마침내 그에 합당한 새로운 언어를 얻었다는 느낌이다. 심지어 나는 그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영원히 알아볼 일이 없는 티벳 개처럼 친근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는 그래서 체룹에게 말하곤 했다, 집으로 돌아갈 거라고. 왜냐하면 체룹으로 인해 나는 집의 부재를 몸으로 인식하게 되었으므로. 그로 인해 부재하는 집을 비로소 얻게 되었기에. 집이 없으며 집에 없는 나는 집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 생각이 충분하다면, 어딘가에 그 집은 정말로 있다. 그러나 내가 체룹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있다. 나는 집을 느끼고 그려볼 수는 있으나, 집으로 가겠다고 선언할 수는 있으나,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하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영원히 부재하는 집일 뿐이다.
할 수만 있다면 체룹은 오늘 오전에 전보를 보냈을 거라고 말했다. 그는 사람들이 전보를 보내서 급하게 결정된 방문을 알리던 시절을 기억하고 있노라고 했다. 오늘저녁일곱시방문예정체룹, 이런 식으로. 마치 아득한 과거에 흘러가버린 역사의 한 장면같이 들리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간혹 전보를 필요로 하는 이들이 정말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믿지 않겠지만, 하고 그는 덧붙였다. 방에는 의자 이외에도 작은 소파가 하나 있었으나 체룹은 방 한구석 흰 천을 씌운 가구에 기대어 섰다. 지금 생각해보니 우리가 탁자나 그 비슷한 가구라고 생각해왔던 그것이 바로 아눅의 쳄발로였다. 그러나 당시 우리는 아무도 쳄발로에는 관심이 없었다. 체룹과 나는 다른 문제에 사로잡혀 있었다. 쳄발로는 처음부터 흰 천을 씌운, 사용이 정지된 주인 없는 가구의 상태로 거기 있었을 뿐이다. 쳄발로 위에는 책 몇 권과 꽃이 없는 화병, 금이 간 사발, 사용하지 않는 쿠션, 사진첩과 연필과 엽서 등 소속이 불분명한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흩어져 있어서, 우리는 그것이 악기가 아니라 단순한 탁자나 책상과 비슷한 가구라고만 여겼다. 쳄발로에 기대선 체룹은 우리가 대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나는 지금 당장은 아무런 할말이 없으며, 단지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 시간이. 나는 거의 애원하듯이 말했다. 내게 말을 강요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지금처럼 말을 혐오한 적은 없었다고. 그러나 그는 초조해 보였다. 우리는 뭐라도 좋으니 대화를 나누어야만 한다, 할말이 없는 지금이야말로, 너를 괴롭히려는 건 결코 아니지만, 이런 때일수록 더더욱 우리는 대화를 나누어야만 한다,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네가 언급하고 싶지 않아하는 바로 그 문제에 대해서 깊이 파고들어가야 한다고, 할말이 없다고 느껴지거나 피하고 싶어질수록, 그건 정말로 심각한 징후일 테니까. 그러나 나는 체룹이 원하는 대화를 위한 그 어떤 단어도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마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느낀다고 말했다. 아니 어쩌면, 이제 조만간 정말로 내 기억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최소한 기억과 상상을 분간하기 힘들 만큼 희미해질 것은 확실하다, 나는 그것을 안다. 어쩌면 지금, 나는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를 잠시만 가만히 놓아달라고 나는 애원했다. 모든 결정은 네게 맡기겠다고, 네가 앞으로 어떤 결정을 내리더라도 나는 아무런 이의 없이 그대로 따르겠다고, 그러니 제발, 나를 가만히 놓아달라,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어달라, 지금 너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칼이 되어 나를 찌르는 것만 같다고. 그래 아아, 차라리 나를 찔러달라, 차라리 나를 비난하고 저주해달라, 그러나 말은, 내게 어떤 특정한 말을 강요하지는 말아달라. 저절로 흘러나오는 비명, 오직 그것만이 가능한 내 입에서.
체룹은 입을 다물었는데, 굳은 표정에도 불구하고 나를 향한 그 어떤 비난의 말도 꺼내지 않았고, 나는 차츰 진정되었다. 그러나 체룹은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나는 알았다. 체룹은 나무처럼 단단하면서 고요한 성향을 가졌지만 동시에 시간이 아무리 걸리더라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이 있었는데, 그건 그의 장점일 수도 있겠지만 때때로 완전한 망각이나 즉흥적인 변환을 간절히 원하는 내게는 가슴에 얹힌 바위처럼 다가오곤 했다. 체룹은 내가 잘못을 빌기를 원하는 건 아니라고 했다. 나를 추궁하고 몰아붙이려는 것도 아니다, 제발 부탁인데, 자신이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을 생각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강요할 생각도 없고, 또 그것이 지금 상황에서 올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당연하게도 자신 또한 완벽한 인간이 아니며, 완벽하게 도덕적으로 살아오지도 않았다고 했다. 고백하자면 단 한 번도 그런 종류의 엄격함을 스스로에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젊은 시절 특별한 이유나 계기도 없이 당시의 여자친구를 배신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다. 물론 여자친구에게도 마찬가지로 배타적인 관계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도덕이나 비도덕이 지금 우리의 화제는 아니며 그에 관해 토론할 생각도 없다고 했다. 그건 한 번도 자신의 관심사가 아니었다고 체룹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