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오민과 편경(2)

*

 

매일 이렇게 청소해놓고 살아?”

현관에 발을 들인 오민이의 시선이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갔다. 편경이는 신발장 앞에 넘어져 있는 박스들을 정리하며 그럴 리가, 너 오는 날이니까 치웠지, 대답했다. 두 명이 있을 공간을 만들어내려면 정리를 안 할 수 없다는 뜻이었는데 말해놓고 보니 다르게 들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신발장, 세탁기, 싱크대, 냉장고가 한 줄로 붙은 벽을 지나 오민이는 조심스럽게 위층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매트리스와 화장대, 철사 옷걸이에 걸린 옷들 앞에서 숨을 한 번 멈추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편경아, 나 어디에 있어야 할까?”

거기 계단에 앉아.”

발 디딜 곳이 없을 정도는 아닌데도 오민이는 우왕좌왕했다. 일층에 있기에도 이층에 있기에도 마땅치 않아 보이는 몸을 쭈그려 계단 꼭대기에 앉았다. 너 거기 앉으면 머리 박는다. 툭 던진 말에 일어나다가 쿵, 천장을 들이받는 모습이 영 시원치 않았다. 오민이는 히히 웃으며 정수리를 문지르고는 세 계단 밑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너랑 가까이 앉아도 돼?”

안 될 게 뭐야.”

방바닥에 무릎을 세우고 앉은 채 편경이는 오민이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바라보았다고 표현해도 될까? 쏘아본 게 아닐까? 순하고 흐린 눈이 당황하고 있다. 떨리는 뺨과 입매는 기대하고 있다. , , 뭘 해야 하지? 오디오가 비는 잠깐의 적막을 참지 못하고 오민이의 얼굴근육이 정처 없이 꿈틀거렸다. 그걸 지켜보다가 편경이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자살해.

죽어. 자살해.”

오민이가 멈칫했다가 파하하 웃었다. 너 여전하구나. 진짜 여전해. 그래도 그런 말은, 어우, , 그런 말은 쓰는 거 아니야. 편경이도 따라서 웃는 것을 선택했다. 공기의 긴장이 부드럽게 풀어지도록 내버려두었다.

편경이가 쉬는 날이면 오민이는 종종 그 집으로 찾아와 저녁을 먹고 갔다. 피자나 치킨, 족발과 보쌈 같은 배달음식 너머로 태블릿 PC를 세워두고 넷플릭스를 틀었다. 오민이의 일과와 편경이의 일상 사이에는 어떠한 교집합도 없었으므로 둘은 최선을 다해 공유할 것들을 찾았다. 같은 것을 입에 넣고 맛있다, 맛있지, 되뇌며 연애하고 싶은 사람 또는 이혼하고 싶은 사람이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았다. 화면 속 사람들 중 열에 아홉은 우스꽝스럽고 서툴고 못나고 기막힌 짓을 벌였다. 어떻게 저럴 수 있냐, 어떻게 저럴 수 있지, 둘은 한마음으로 웃거나 경악하기를 반복했다.

가끔 오민이는 벅차올라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편경이 네가 나한테 연락할 수가 있지, 인생에 크고 귀한 것이 나타났다는 듯이 미간을 활짝 펴고 눈꼬리를 늘어뜨리며 편경이를 대했다. 그런 표정은 오민이에게 드문 것이었다. 원래도 오민이는 무뚝뚝하고 거무죽죽한 인상이었는데 서른을 향해가는 지금은 그 느낌을 훨씬 짙게 풍기고 있었다. 그러나 편경이 앞에서라면 죽어가는 뇌에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양 어색한 활기를 부리고자 했다. 내내 붕 떠올랐고 안절부절못했다. 편경이의 경우는 정확히 그 반대였다. 일주일을 살면서 사람 면전에서 그렇게까지 얼굴 힘을 풀 수 있는 때는 없었다. 고객과 동료 앞에서 끈질기게 끌어올렸던 광대 근육을 내려놓는 행위, 싸늘한 무표정으로 누군가를 쳐다보는 행위는 기이한 쾌감과 안락함을 주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겨우 이런 것으로…… 타협할 수는 없다. 편경이는 만족할 수 없었다. 태블릿 PC를 끄고 오민이의 목 부근을 잡았다. 오민아, 내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줄 수 없을까?

애칭을 정하고 싶어.”

나란히 누워 있을 때 오민이는 말했다. 눈을 감고 속눈썹을 떨며 꿈꾸는 듯이. 편경이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왕지자 어때.”

무슨 뜻이야, 그 야시꾸리한 단어는?”

바로 왕동순 지지자라는 뜻이다. 이 왕동순 지지자야.”

편경이의 머릿속에서 상쾌한 드라이아이스 연기 같은 것이 피어올랐다. 오민이가 꿈에서 깬 듯 눈을 떴다.

 

기분이라는 것이 주식 그래프처럼 위아래로 요동치며 묘사될 수 있다면, 연애를 하는 편경이의 그래프는 고점과 저점을 촘촘하게 오갔다. 그건 마치 시들어가던 목숨이 급격히 살아날 때의 바이털 사인과 비슷했다. 기분이 고조된 시점에 일어난 일은 대체로 이런 식이었다.

왕동순 지지자는 머문 자리도 왕동순스럽습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이 충분히 들을 수 있을 음량으로 편경이는 중얼거렸다. 오민이가 화들짝 놀라 노약자석에서 일어나 섰다. 반 정도는 설계된 상황이었다. 오민이와 버스를 기다릴 때부터 편경이는 그가 노약자석에 앉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를 노약자석에 앉힐 수 있는 경우의수를 고려했다. 평일 오후 서울식물원으로 가는 버스는 자리가 넉넉한 편이었다. 버스에 올라타자마자 편경이는 일부러 노약자석 바로 뒤의 일인용 좌석으로 향했다. 더 뒤로 가서 같이 앉지, , 오민이가 옆에 서서 손잡이를 잡으며 칭얼거렸지만 편경이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오민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창밖만 봤다. 제발, 제발 앉아라. 노란색 커버가 씌워진 노약자석에. 입가로 새어나오려는 심술궂은 미소를 꾹 참으며 빌었다. 오민이가 자신의 바로 앞자리로 가서 앉을 때까지.

오민아, 왜 일어나. 앉아. 왕동순은 노란색 아냐?”

, , . , , . 남자라면 킹, , . 네 심장의 색깔은 노, , . 편경이는 스포츠 경기장에 온 것처럼 구호를 외웠다. 양쪽 어깨를 번갈아 만지고 오민이 쪽으로 팔을 펼치는 동작을 했다. 버스 맨 앞자리에 앉은 여자가 고개를 빼 뒤를 돌아봤다. 건너편에 앉은 중년 남자도 오민이의 뒤통수며 신발을 흘깃거렸다. 오민이는 숨어 있는 곳을 들킨 초식동물 같았다. 그만해, 편경아, 제발, 입술로 속삭이다가 하차 벨을 누르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다음 정류장에서 정말로 내려버렸다. 편경이는 따라가지 않았다.

안 내리는 거야? 진짜 안 내리는 거야? 창문 밖에서 오민이가 편경이를 응시했다. 편경이도 지지 않고 오민이를 응시했다. 감정이 고조되자 얼굴에 피가 모였다. 넌 여기 있어라. 나는 간다. 그렇게 버스가 출발했을 때, 편경이는 뇌가 얼얼할 정도의 짜릿함을 느꼈다.

꽃 피는 데 있어 제철은 예전만큼 뚜렷한 개념이 아니었다. , 여름, 가을 꽃이 한데 모인 식물원은 도무지 이 세상 같지 않았다. 아름답기도 했고 시간개념을 일부러 지워 표현한 천국도 같기도 했다. 꽃이 식물의 생식기라고 했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름다운 천국은 해괴망측하게 변했다. 편경이는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햇빛이 식물 테두리를 하얗게 뭉개는 장면을 건성건성 훑어보았다. 그러다가 노란 꽃이라도 발견하면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서 사진을 찍었다. 다음에 쏠 총알을 장전해두려는 것이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온다.

오민아, 장난이 너무 심했지. 우리집으로 와. 저녁 먹자.”

그렇게 전화하면 오민이는 또 온다. 그렇게 가버려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한다. 만나서는 편경이의 손을 꼭 붙잡고, 자신의 아버지 고향이 경상도인데 어머니 고향은 전라도라는 이야기를 또 할 것이다. 편을 가르는 논리보다 더 큰 자신의 마음을 봐줄 수 없겠냐는 말을 다시 할 것이다. 편경이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오민이에게 꽃 사진을 들이밀 만한 타이밍과 멘트를 궁리할 것이다. 이 꽃들을 보니 네가 그리워 눈물이 났다든가. 이것들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든가.

마침내 심경이 복잡해진 오민이가 제대로 된 인사 없이 편경이의 집을 떠날 때, 곤두박칠치기 직전의 고점은 바로 그때였다. 편경이는 후룸라이드의 가장 높은 능선을 통과하듯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자초한 기분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이렇게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오민이와 연애하고 있다는 사실을. 편경이는 이 감각이 자괴감이라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대로 오민이가 연락하지 않으면 어쩌지, 혹은 다 그만두자고 연락해오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고개를 들었다. 편경이는 오민이가 주고 있는 것과 줄 수 있는 것을 헤아려보았다. 이억원을 떠올리면 그나마 자괴감이 덜어졌다. 걱정 비슷한 자신의 기분이 합리적이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런데 오민이는 과연 결혼하고 싶어할까? 나 같은 여자와?

 

*

 

회장님 애 아니냐는 소문도 있었잖아.

, 그거 절대 아니래요. 진짜 그냥 로또였대요. 그때 수지씨 남편이 크게 오해했다가 코인 물린 거 복구해줘서 지금은 사이 좋다잖아요.

우리 쪽에도 한 명 있으니까 두고 보면 알겠지.

근데 매력이 없는 걸까. 어떻게 생각해? 자기, 자기는 남자니까 잘 알겠다.

편경씨 매력 있죠.

그럼 네가 사귀면 되겠다. 꼬셔. 결혼하자고 해.

조용히 말해. 목소리 너무 커.

아니, 그렇잖아. 답답해. 내가 답답해.

 

권대표의 노망이 기정사실화된 이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두 가지 생겼다. 하나는 사무실 동료들이 편경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신경을 기울이는 한편 그들끼리의 미묘한 연대를 형성한 것이었다. 탕비실에서 도시락 먹는 시간이라도 겹칠 때면 의뭉스러운 관심 또는 질문이 쏟아졌다. 그것들에 대처하는 동안 편경이는 고객용 단말기를 일일이 닦아 충전기에 꽂아두며 느끼는 기분을 다시 느꼈다. 성가시고 무료하고 도대체 언제 끝나나, 싶지만 긴장을 놓아서는 안 되는 그런 기분. 단말기들은 예민해서 기스도 고장도 잦았다. 기스가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컴플레인을 걸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걸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편경이는 누가 요주의 인물인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의 경력자는 되었다. 그런 사람에게는 친절의 정도를 세심하게 조절하는 수고가 필요했다.

다른 하나는 누구도 권대표를 걱정하거나 말리려 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매달 첫번째 월요일이 가까워오면 사무실에는 은은한 긴장과 활력이 감돌았다. 무슨 일이 일어날까, 혹시 이번에는 내가, 아니면 누가? 직원들은 내심 훈화를 기다리는 눈치였다. 잭팟이 두 번 다시 터지지 않는다 한들 훈화를 멈출 이유는 없어 보였다. 어느 직장 어떤 대표가 돈을 쥐여줘가며 설교를 하겠는가. 하긴 옛날에는 편경이도 신사임당 쇼를 좋아했다. 대표가 미향월드에 나타나는 날이면 주인을 본 강아지처럼 가슴이 들떴다. 어쩌면 이 사태는 충분한 전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우려도 불만도 티 내지 않는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권대표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사람들도, 어깨를 감싸며 친근하게 다가가는 사람들도 다만 웃으며 그를 대한다.

그러니 이것은 한없이 개인적인 의문일 뿐이다. 어리고 멍청한 사회인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유구하고 복잡한 속사정이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권대표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될 무서운 사람일지도 모른다. 편경이는 수년 전 그와 처음 단둘이 이야기했던 일을 떠올렸다. 노아의 방주에 자이언트 토끼를 처음 선보이던 날의 대화를.

토끼인데 엄청 커. 말도 안 되게 커.”

오전 조로 일하고 온 동료가 흥분해서 목격담을 늘어놓았다. 휴게 시간에 편경이는 밥을 먹거나 엎드려 자는 대신 노아의 방주로 향했다. 회색과 검정색과 갈색 털이 섞인 토끼 두 마리가 건초를 씹고 있었다. 귀가 길고 동공이 작은 서양 토끼를 초등학생만하게 키워놓은 듯한 그것들은 신기하다기보다 괴이하게 느껴졌다. 비명을 지르면서 우는 아이로 인해 주위가 어수선해질 무렵 편경이는 팔짱을 끼고 서 있던 권대표를 발견했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왔다. 권대표는 토끼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편경이 방향으로 몸을 조금 옮겨왔다.

근사하지? 내 작품이에요.”

……

호주에 있을 때 토끼 사냥을 자주 했었지. 거기서 토끼는 생태 교란종이거든. 어느 날은 정말 큰 토끼를 봤어. 집채만한 토끼였지. 그때 나는 정신없이 도망쳤어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달려서 친구들한테 갔지. 가니까 이놈들이 안 믿는 거야. 그런 토끼가 있을 리 없대. 내가 가보자고, 같이 가자고, 그놈들을 재촉해서 토끼 있는 자리로 갔는데, 그사이 사라지고 없었어. 얼마나 놀림을 받았는지.”

편경이는 사육장 앞에 세워진 팻말로 눈을 돌렸다. 팻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안녕?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토끼. 플레미시 자이언트 토끼야. 아르헨티나에서 왔단다.

두고두고 후회해. 그때 도망치지 말았어야 했는데…… 총을 빵, 쐈어야 했는데. 나를 놀리는 녀석들에게 내 말을 믿게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는데 말이야. 나는 아직도 증명하지 못한 게 한이야. 내 말은 진짜다. 나는 겁쟁이가 아니다. , 총을 쐈어야 했는데……

이만 도망가고 싶다고 편경이는 생각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여기서 그만둔다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잘 생각하자.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말자. 그렇게 생각할수록 바보가 되는 기분이었지만, 모쪼록 편경이에게 오민이는 최선처럼 보였다. 휴대전화 연락망을 신중히 뒤져 찾은 비상구라고나 할까.

 

어느 날의 편경이는 조바심을 이기지 못하고 권대표와 수지씨, 이억원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오민이는 놀라워하고 황당해하다가 재미있어하더니 은근한 눈초리로 편경이에게 말했다. 알겠어, 편경이 네 마음 잘 알아들었어. 네 말이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은 진짜인 거 알겠어.

그날 편경이는 알 수 없는 치욕스러움에 눈물을 흘리며 잠에 들었다. 왜지. 왜 자존심이 상하는 거지. 안 그래도 상하는 자존심이 오민이 때문에 더 상하고 있다니.

상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지막지한 힘이 필요했다. 그러니까 권력 같은 게 필요했다. 그것을 만들어줄 만한 사람, 인간적인 존엄을 회복시켜줄 수 있는 사람은 다시 오민이였다. 오민이에게라면 얼마든지 무자비해져도 상관없었다. 더 거칠게 말하면 오민이는 무슨 일을 당해도 싼 사람이었다. 편경이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고 또 사랑을 주는 사람이니까.

미향월드가 성수기라서 힘들었겠구나, 혹은 오늘 먹은 밥이 맛이 없어 기분이 나빴겠구나, 그것도 아니면 그날이 다 되어서 예민했겠구나……

날카로운 말과 행동에 해명을 더하지 않아도 오민이는 어떻게든 이해할 구석을 찾아내주었다. 뒤돌아섰다가도 먼저 메시지를 보내고 네 평짜리 오피스텔의 문을 두드려주었다. 편경이는 그런 오민이가 우스운 동시에 무섭고 징그러웠다. 의대며 약대 출신이라는 남자들이 맨베스트에 쓰던 글들을 떠올리면 오민이의 현재와 미래 중 하나는 터무니없는 가짜여야 했다.

 

*

 

그러면 저 마차에 탄 사람들은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걸 요구하면 어떻게 해?”

글쎄, 말도 안 되는 게 뭐 있었더라. 취급하고 있지 않은 고급 생수를 주문하는 정도는 흔했고, 어린 자식을 데리고 와 단말기에 쌍욕을 쓰는 사람도 있었는데…… 편경이는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분명 뭐가 많았는데, 미향월드에 최적화된 뇌는 나쁜 기억을 순순히 살려두지 않았다.

오민이는 미향월드가 처음이라고 했다. 수험표 할인에 직원 할인까지 더해서 받을 수 있으니 너무너무 좋다고 했다. 눈동자에 생기를 잃은 편경이와 턱이 거뭇한 오민이는 아무래도 십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여느 커플처럼 교복을 대여해 입었다. 놀랍게도 교복은 오민이에게 잘 어울렸다. 어쩌면 오민이의 시간이 거기서 멈춰 있는 탓일까. 대입 하나만을 인생의 숙제로 끌어안던 그때 그 시절을 여전히 살고 있기 때문일까. 편경이는 안쓰러움과 한심스러움 중 어느 것 하나 감추지 못하는 태도로 오민이의 손을 잡았다.

마냥 어리지 않은 오민이의 흥미를 끄는 건 놀이기구나 퍼레이드가 아니었다. 나귀 마차에 올라타 가이드의 호위를 받는 프리미엄 투어 이용객들이었다. 그들이 지불하는 금액을 듣고 오민이는 나자빠질 것 같은 소리를 냈다.

말도 안 된다.”

맞아, 말도 안 되는 거야. 그래도 많이들 타.”

하긴, 멋있잖아. 나도 죽기 전에 한 번은 타보고 싶다.”

방금 전에 낸 소리가 무색하도록 오민이는 눈동자를 빛냈다. 보통의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쯤 높은 곳에서 반쯤 누워 이동하는 투어 이용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입은 옷, 신은 신발, 손에 쥔 단말기를 뜯어보며 편경이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들이 뭘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가능성에 대한 것들을. 그러고 나서 잠시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다가 비장하게 입을 뗐다.

나중에 성공해서 꼭 저거 태워줄게.”

편경이는 떨떠름하게 오민이를 바라보다가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점점 더 커졌다.

오민아, 내가 제일 웃겨하는 게 바로 너 같은 사람들이야. 그 돈을 써가며 할 수 있는 게 뭐일 것 같아? 너 같은 사람들이 올려다보면서 부러워하는 시선을 사는 거야. 내 밑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구나, 저 가이드는 내가 원하면 다 해주는구나, 느끼는 기분을 사는 거야. 그 돈 있으면 미향월드 올 생각 하지 말고 어디 해외여행이나 가. 미국이나 영국 가서 노숙하면서 배낭여행을 해. 인종차별도 당해보고.”

인종차별을 당해보라니, 무슨 말을 또 그렇게 해? 내가 인종차별 당했으면 좋겠어?”

정색하며 되묻는 오민이는 진심으로 속상한 것처럼 보였고 딱 그만큼 편경이의 속은 유쾌해졌다. 이럴 때 오민이는 더할 나위 없이 사랑스러웠다. 오민이라는 사람이 왜 자신에게 왔는지, 그의 존재 의의를 알 것만 같았다. 편경이는 오민이의 속이 계속 긁혔으면 했다. 그것은 순리 또는 사랑의 증명으로 느껴졌다.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당해봐. 속죄 비슷한 걸 해봐. 그렇게 억울한 표정 짓고 서 있지 말고.

정말로 나 사랑해?”

정작 그 물음을 입밖으로 꺼낸 건 오민이였다. 편경이는 오민이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언성을 높였다.

그럼 내가 미쳤다고 쉬는 날 여기 오니? 넌 반성해야 돼. 날 직장으로 불러낸 것에 대해서.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뭔데?”

쏘아붙이고 나서 마법의 성으로 앞장서는 편경이가 실은 뺨이 떨릴 정도로 웃음을 참고 있다는 사실을, 오민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미안해, 미안해, 편경아. 다급하게 따라 들어간 성의 내부는 온통 거울이었다. 처음 발을 디뎌본 미로에서 오민이는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편경아, 어디 있어? 편경아.

여기가 어디게? 나에게는 지옥이지만 너에게는 천국인 곳이야.”

어둠 속에서 희열에 찬 목소리가 말을 이어갔다.

왕동순 지지자에게 둘러싸인 기분이 어때? 나는 아주 거지같애.”

 

11월이 되면 미향월드 직원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추어 내부 구조물을 변경하고 이벤트를 기획하는 것도 모자라 제휴를 맺은 호텔과도 협업해야 했다. 크리스마스 또는 연말의 분위기란 으레 그렇게 흘러가는 법이었다. 특별한 무엇을 찾아 헤메는 사람들이 놀이공원에 오고, 유명한 호텔에서 자고.

일박에 수십만원을 내는 사람들이 얻고 싶어하는 건 무엇일까. 도심 한복판의 불빛을 내려다보고, 거품을 띄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하얗고 푹신한 침구 속에서 연인 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고, 마시고 싶은 걸 마음대로 마시는 걸 행복이라고 부른다면 편경이도 올해는 행복해져야 하는데, 드디어 행복해지기 좋은 구실이 다가온 셈인데, 연말이 가까워올수록 편경이의 가슴은 돌에 짓눌리는 것처럼 무거워졌다. 이십대가 줄어들고 있었다. 권대표의 심상치 않은 언행도 계속되고 있었다. 오민이는 시험을 어떻게 보았는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조만간 이야기해주겠다며 쓸쓸하게 웃는 오민이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인지 자신의 미래가 걱정되는 것인지 편경이는 분별할 수 없었다.

결별을 통보받는 미래는 의외로 두렵지 않았다. 어쩌면 은근히 그것을 원하고 있는 건 아닐까? 차마 행복이라고는 이름 붙일 수 없는 엉성한 젠가를 누군가 무너뜨린다면 차라리 후련하겠다고, 다만 그 누군가가 나 자신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편경이는 소심하게 빌었다. 더는 후회할 자신이 없었다.

미향월드에서 호텔까지 걸어가는 동안 오민이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비용을 계산했다. 입장권에, 밥에, 간식에, 교복에, 사진 촬영에, 이게 다 얼마야? 미향월드에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네. 편경이에게는 놀라울 것도 없는 이야기였다.

체류 사업이라는 게 그런 거야. 시간을 쓸수록 돈이 나가게 되어 있는 구조지. 우리는 여기에서 잠까지 자니까 가장 큰 사치를 하는 거야.”

우리가 만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아도 될 사치를 말이야.

우리가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이 땅에 체류하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큰 사치를 예방할 수 있었던 걸까?

 

더블 침대. 생크림 케이크처럼 흰 이불. 야경이 번쩍이는 통창. 따뜻한 색감의 마루와 조명.

좋은 것인지 아닌지를 가격표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와인.

깨끗한 글라스 두 개.

 

오민이는 와인 오프너를 쥐고 한참을 끙끙거렸다. 이리저리 흠집을 먹인 코르크를 빼낸 뒤 따른 액체에는 불쾌한 부스러기들이 떠다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날따라 유난하게 사과하는 오민이 앞에서 편경이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정말로 사과받고 싶은 무엇에 대해 오민이가 사과한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그게 애초에 사과가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이기는 한가? 잘살고 싶어해서 미안합니다. 잘산다는 표현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해서 미안합니다. 바라는 세상이 달라서 미안합니다. 타고나길 다른 입장이라 미안합니다. 여자보다 남자를 이해하고 남자처럼 생각하는 남자라 미안합니다. 여자보다 남자를 생각한다는 정치인에게 남성으로서 투표해서 미안합니다. 그래놓고 여자와 연애하고 싶어해서 미안합니다. 이런 남자와 연애하게 해서 미안합니다?

대신에, 오민이는 온갖 사소한 것에 대해서 미안하다고 말해왔다. 그리고 편경이를 아이처럼 달랬다. 편경아, 내가 왕동순을 뽑은 건 정말 안타깝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잖아. 어쩔 수가 없는 일이잖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은 채.

할말이 있어.”

편경이가 혀 위에서 까끌거리는 코르크 부스러기를 휴지에 뱉는 동안 오민이는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올해 수능은 불수능보다 무서운 물수능이었다는 이야기, 퇴직을 앞둔 아버지가 도와줄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는 이야기, 긴 도전을 마무리할 생각으로 마음을 정리하고 있다는 이야기, 집안 기둥을 하나 뽑아먹은 것이나 마찬가지지만 부모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 그래도 올해가 뜻깊고 좋았는데 그 이유는 편경이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까지.

……그래서 일단은 전자공학과에 지원해볼까 해.”

그 말을 꺼내면서 저렇게까지 눈치를 봐야 할 리는 없을 텐데, 생각하던 찰나에 오민이는 한마디를 더했다.

대신에, 결혼하자.”

대신에?

무엇 대신에?

정말로 이억을 받을 수 있다면 기회를 날리지 말자. 지금이 거의 마지막 타이밍인 거 알고 있어? 신혼부부 대출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서울에 몇 군데 남아 있는데, 거기가 어디냐면.”

그러니까 무엇 대신에?

다 구축이긴 하지만 지금 편경이 사는 집보다는 훨씬 나을 거야. 괜찮으면 더 늦기 전에 임장 가봐도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

전문직이 되는 대신에 서울 아파트 주인이 되겠다, 그 얘기구나. 정말이라면 야무지다. 나도 너처럼 살고 싶다, 오민아. 냉소를 참지 못하고 편경이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오민이가 꿈꾸는 미래로 향하는 최선의 경로, 차선의 비상구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도 같았다. 로맨틱한 분위기를 첨가해야겠다는 자각이 들었는지 오민이는 프러포즈하는 거야, 덧붙이고 애교 있게 웃었다.

정말로 나 사랑해?”

편경이가 묻자 오민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차라리 아니라고 해라. 나를 이렇게 무시하고 있으면서, 존재를 부정하고 있으면서, 무슨 염치로 사랑을 확신해?

대신에.”

편경이는 오민이의 목 부근을 잡았다.

오민아, 내 기분을 더 좋게 만들어줄 수 없을까?”

 

더블 침대. 구겨진 흰 이불. 야경이 번쩍이는 통창. 마룻바닥에 나뒹구는 두 사람.

좋은 것인지 아닌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 와인.

떨어져서 이가 나간 글라스들.

 

주먹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는 퍽, 보다 첩, 에 가까웠다. 힘을 실어 내지르는 편경이의 팔다리가 그리 위협적이지도 못해서, 오민이는 방어할 의지조차 갖지 못한 채로 맞고 또 맞았다. 그러나 중심을 잃고 쓰러진 오민이 위에서 편경이가 와인 병을 치켜들었을 때는 오민이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대치해야만 했다. 편경이의 손목을 움켜쥔 오민이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편경아, 이제 그만하자.”

그럴 수 없어.”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는데 병원 가자. 같이 가줄게. 편경아, 나는 너를 사랑해. 제발.”

편경이는 몸에 들어간 힘이 서서히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병원이라니, 오민아. 정신과 말하는 거야? 그 비싼 델 왜 가, 네가 있는데. 너 의사 되고 싶다며? 네가 내 의사야. 나만을 위한 주치의라고. 너 나 사랑한다며. 내가 누군지 정말 몰라?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야? 왕동순 뽑은 거 나한테 제대로 빚진 거야. 갚으려면 아직이라고.

오늘 미향월드에서 너는 한 번도 가이드에 대해 질문하지 않았지. 가이드가 어떤 옷을 입는지, 어떤 신발을 신는지, 화장은 어떻게 하고 있고 단말기를 얼마나 자주 확인해가며 사람들을 상대하고 경로를 만드는지, 상냥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야 하는지 너에겐 중요하지 않았지. 넌 내가 누구인지 관심이 없잖아.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내가 어디에서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지 넌 모르고 알아볼 생각도 없잖아.

그런데 사랑을 이야기해?

편경이는 순순히 팔을 내렸다. 그리고 와인 병의 입구를 틀어막은 코르크, 부서지기 직전의 코르크를 빼내고 터질 것처럼 붉어진 오민이의 얼굴로 병을 기울였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오민이가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편경이를 밀치고, 붉은 액체로 물든 자신의 얼굴을 감싸쥐고 포효하듯이 울었다. 주먹으로 바닥을 쿵쿵 때리고 무릎으로 침대를 걷어차면서 폭발적으로 울었다.

울면 끝인가?

편경이도 맞받아치듯이 소리를 질렀다. 몸안의 소음으로 바깥의 소음을 밀어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술에는 술. 고통에는 고통. 노력에는 노력. 멸시에는 멸시. 비명에는 비명. 사랑에는 사랑.

울면 안 돼. 울면 안 돼. 산타 할아버지는 우는 애들에겐 선물을 안 주신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