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춘 여사에게 발판을 내려달라고 전화를 한 후 기다리며 서 있는데 저쪽에서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보인다. 영애 엄마다. 가슴에 띠를 둘러 영애를 안고선 양손에 불룩한 비닐봉지를 하나씩 들고 있다. 슈퍼에 다녀오는 모양이지. 생각만 할 뿐 인사는 하지 않는다. 영애 엄마 역시 분명 나를 알아봤겠지만 말을 걸어오진 않는다. 머뭇거리며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을 뿐이다. 나는 입을 비죽거리며 등을 돌린다. 보통 발판 근처에서 구름 사람을 만나는 경우, 먼저 올라간 쪽이 춘 여사에게 발판을 다시 내려보내라고 말해주는 게 보통이지만 이번에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춘 여사에게 전화하지 않는 걸 보니, 영애 엄마는 내가 그런 친절한 일을 해줄 거라고 생각하나보지. 울퉁불퉁한 마음으로 허공을 노려보고 서 있는데 영애 엄마가 모기만한 소리로 말한다.
저기.
나는 못 들은 척 운동화 앞코만 내려다본다. 영애 엄마가 봉지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몸을 뒤틀더니, 나를 다시 부른다.
저기, 하늘아, 있잖아.
아 왜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마지못해 돌아보니 이미 깜깜해진 밤, 흐린 가로등 불빛 아래 영애 엄마의 망설이는 얼굴이 보인다. 영애 엄마가 봉지를 내려놓더니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 그…… 소식 없니?
무슨 소식이요?
인공 강우제 말야. 언제 뿌린다거나 뭐…… 그런.
아니, 제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나는 울컥 짜증이 나서 쏘아붙인다. 그 서슬에 영애 엄마가 흠칫 놀라며 무심코 영애를 끌어안는다. 아랑곳 않고 노려보자 시선을 피하며 뭐라고 입을 오물거린다. 뭐 이딴 사람이 다 있지. 정말로 염치도 없는 사람이다.
아니 그냥…… 그 이후로 뭐 들은 게 있나 싶어서 그랬지.
아줌마, 데모는 하기 싫고 그건 또 궁금해요?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아유, 왜 그렇게 화가 났어 그래.
영애 엄마가 달래듯 말하며 한 걸음 다가선다. 입가에 떠올린 비굴한 미소를 보자, 마음속에서 증오가 끓어오른다. 나는 주먹을 꽉 쥐며 소리지른다.
애새끼 머리 다 쥐어뜯어놓기 전에 꺼져요. 나한테 말 걸지 말라고요.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머리 위 멀리서 끼익끼익, 발판이 내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양다리에 힘을 주어 버티고 서서 영애 엄마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본다. 그리고 증오심과는 별개로, 어떤 사실 하나를 깨닫는다. 영애 엄마는 내 생각보다 훨씬 젊으며, 어쩌면 나와 나이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러나 지금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영애 엄마가 참으로 뻔뻔스럽고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것뿐이다.
뭐요, 억울해요? 열받아요? 그럼 데모 하지 그랬어요?
쏘아붙인 말에 두들겨 맞은 사람처럼 영애 엄마가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곤 별안간 벼락같이 소리를 지른다.
그날은 애기가, 애기가 너무 더워하는데 어떻게 그래!
영애 엄마가 발치의 비닐봉지를 뒤지더니 뭔가를 쑥 끄집어낸다. 베이비파우더가 든 흰색 플라스틱병이다. 그것을 내 눈앞에 대고 미친 사람처럼 흔들어대며 악을 쓴다.
이거 봐! 안 그래도 애 온몸에 땀띠가 나서 이 비싼 파우더를 몇 통이나 처바르고 있는지 알아? 애가 밤마다 가려워서 죽으려고 해! 그런데 어떻게 그 땡볕 아래 애를 내버려둬? 응? 어떻게? 어떻게 그러냐고?
파우더 통이 날아와 퍽 소리를 내며 내 가슴께에 부딪힌다. 멍하니 서 있는 내 발치에서 통이 데구르르 굴러간다.
그래, 데모 못 해서 미안하다 미안해! 야, 근데 니가 뭐가 그렇게 잘났고 잘했어? 뭐, 애 머리채를 뜯어? 어디 뜯어봐! 어? 뜯으라고!
영애 엄마가 소리치며 가슴을 내민다. 나는 멀거니 영애의 머리통을 내려다본다. 고운 머리카락이 보송보송 돋아 있는 아기의 둥근 머리통.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싶게, 제 어미가 이토록 소리를 지르고 있는 와중에도 영애는 잠들어 있다. 마치 엄청나게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온 사람처럼. 나는 입술을 앙다문다. 분명 분노와 증오가 마음속에서 용솟음치고 있는데 그것을 입으로 말할 방법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이건 아닌데. 공평하지 않은데. 나는 머릿속으로 말을 고른다. 너만 더웠냐, 우리도 다 더웠다, 다 같이 잘살자고 거기 나간 거 아니냐. 수많은 말들이 떠올랐다가 사그라든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내가 뱉은 말은 내 의도와는 전혀 다른 말이다.
그러게 애를, 애를 어디다 맡기고 왔어야지…… 왜 데려와서.
아닌데,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게 아닌데. 나는 애써 표정을 감추며 속으로 되뇐다. 영애 엄마가 혼자서 영애를 키우고 있다는 건 구름 사람들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아침이면 영애를 데리고 구름을 내려와 미싱 공장의 시다 일을 하러 간다는 것도, 애 업은 여자를 받아주는 곳이 거기밖에 없어 먼지와 실밥 부스러기 사이에서 콜록콜록 기침하는 영애에게 마스크를 씌워가며 버티고 있다는 것도. 나는 영애 엄마의 시선을 피해버린다. 차라리 욕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영애 엄마는 입을 굳게 닫은 채 그대로 서 있다. 그 순간 나는 영애 엄마의 생각을 정확히 읽어낼 수 있다. 설명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그저 내가 밉겠지. 진심으로, 내가 자기를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어쩌면 인공 강우제를 뿌리려는 사람들보다도 더.
끼익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진다. 발판이 거의 다 내려온 것이다.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 길게 내쉰다. 허리를 숙여 발치에 굴러다니고 있던 베이비파우더 통을 집어든다. 그것을 영애 엄마의 비닐봉지에 다시 넣어준다.
올라가서 발판 내려보내라고 얘기할 테니까 전화하지 마요.
영애 엄마는 대답하지 않는다. 움직이지도 않는다. 그저 작게 칭얼거리는 영애를 한 번 추슬러 안을 뿐이다. 그것을 대답이라고 여기고 나는 발판에 올라탄다.
이윽고 발판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영애 엄마의 모습이 점점 멀어진다. 어느새 손가락만하게 작아진 영애 엄마가 자리에 쭈그려앉는 게 보인다. 우는 것인지 그저 힘들어서 주저앉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엉망이다,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이다. 나는 입술을 짓씹다 말고 문득 코를 킁킁거린다. 어디선가 베이비파우더 향이 나는 것 같아서다.
36
한가로운 주말 오전, 아빠는 없고 동생마저 놀러 나가 빈집에 나 혼자뿐이다. 오랜만에 낮잠이라도 잘까 하고 누워 있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모르는 번호로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상대는 나와 친한 사이인 양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
―안녕 하늘~ 잘 지내? 오랜만에 연락하네!
무시할까 하다가 누구세요? 라고 답장하니 곧바로 또하나의 메시지가 온다.
―나 김연수인데 기억나? 고2 때 너랑 같은 반이었는데
기억을 더듬어볼 필요도 없다. 초중고를 통틀어 이름을 기억할 정도로 친했던 애는 단 한 명도 없으니까.
―아니
―아 그렇구나~ 갑자기 연락해서 미안...! 사실 부탁할 게 있어서 연락했어
―?
―음... 혹시 잠깐 만날래? 별건 아니고 내가 커피 한 잔 살게! 너 시간 되는 때 맞춰서 내가 근처로 가면 좋을 것 같아. 너 아직도 거기 살지?
이건 무슨 수작이지. 나는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곰곰이 생각한다. ‘거기’라면 구름을 말하는 것일 테지. 누구에게도 내가 여기 산다는 걸 말한 적이 없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두가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땅에 사는 애가 나한테 부탁할 일이 뭐가 있을까. 돈을 빌려달라는 걸까, 물건을 사달라는 걸까. 모두 구름 사람인 내게 부탁할 만한 일은 아닌 것 같다.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장한다.
―지금 괜찮아
기다렸다는 듯 좋다는 답이 돌아온다. 두 시간 뒤, 번화가 골목의 모 카페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뒤 휴대폰을 내려놓자 괜히 가슴이 뛴다. 무슨 얘기를 하려는 걸까. 혹시…… 엄마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닐까. 우리 엄마를 어디서 봤다든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든가 하는.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라는 건 안다. 정말로 그걸 기대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하지만.
약속한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해 문을 밀고 어색하게 들어가니, 멀찍이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발딱 일어나며 내게 손짓한다.
여기야!
나는 좀 당황한다. 전혀 기억나지 않는 얼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를 김연수라고 소개한 저 아이는 마치 나와 한때 절친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나는 김연수의 모습을 슬쩍 뜯어본다. 매끈매끈 윤이 나는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깔끔한 원피스에 샌들을 신은 김연수. 가ᄁᆞ이 다가가자 몸에서 꽃향기 비슷한 것이 풍긴다. 그 모든 게 좋아 보인다.
일단 주문부터 하자. 뭐 마실래? 내가 살게.
난 아무거나 좋아.
대답하고 나서야 궁색한 소리를 했나 싶어 후회한다. 한 번도 이런 곳에 와본 적이 없다는 걸 들켰으려나. 하지만 김연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곤 카운터로 걸어간다. 나는 자리에 앉아 무언가를 주문하는 그의 뒷모습을 쳐다본다. 아무래도 낯설다. 정말로 내가 저애랑 같은 반이었던 적이 있나. 주문을 마친 김연수가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묻는다.
근데 왜 보자고 한 거야?
음, 부탁할 게 좀 있어서.
김연수가 눈을 반달 모양으로 접으며 웃더니, 옆으로 몸을 숙여 가방에서 뭔가를 꺼낸다. 이윽고 커다란 노트북이 테이블 위에 펼쳐진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김연수가 콘센트에 노트북 전원을 꽂는 것을 지켜본다. 나와 동갑인데 저런 걸 가지고 있다니, 굉장한 부자구나. 아니면 어디서 빌려온 걸까. 이윽고 전원이 켜진 노트북 화면의 흰 불빛에 그의 얼굴이 환해진다.
음, 설명부터 할게. 나 이번에 학교에서 ‘근현대생활사’라는 교양 수업을 듣게 됐거든.
……
근데 이번 학기 중간고사 대체 과제가 삼십 장짜리 자유 리포트를 써오는 건데, 뭘 주제로 삼을까 하다가 구름 생각이 나더라고. 요즘에 인공 강우제 때문에 완전 난리잖아. 뉴스에도 나오고. 그래서 구름 사람들의 생활상을 조사해볼까 했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났지 뭐야.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그저 눈을 크게 뜬 채 듣고만 있다. 김연수의 말을 전부 이해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내게서 뭘 원하는지 정도는 알 것 같다. 너무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는데, 정말 악 소리를 지르고 싶을 만큼 황당한데 너무 황당해서 오히려 내가 황당해해도 되는 게 맞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내 낯빛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김연수가 황급히 말을 잇는다.
어려운 거 아니야. 사진 같은 것도 안 찍을 거고. 그냥 내가 묻는 질문에만 대답해주면 돼. 리포트에 인터뷰 내용을 싣긴 할 건데, 절대로 네 이름이나 신상 정보는 안 넣을게. 한 십 분 정도면 끝날 거야.
카운터에서 주문하신 아이스 바닐라라떼 두 잔 나왔습니다,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김연수가 잽싸게 일어나 커피를 가지러 간 사이, 나는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노트북을 노려본다. 겉면에 귀여운 토끼 스티커가 붙어 있다. 쟁반을 받쳐들고 돌아온 김연수가 내 앞에 커피를 밀어놓는다.
부탁 좀 할게. 나 진짜 이번 학기 성적 중요하거든. 장학금이 걸려 있어서. 나 이거 못 받으면 다음 학기는 휴학 때려야 될지도 몰라. 밥이든 뭐든 다 살 테니까 제발 한 번만, 응?
김연수가 양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한다. 가느다란 손목에서 금팔찌가 찰랑거린다. 나는 대답하기 전에 커피를 쭉 들이켠다. 아빠와 종종 마시곤 하는 믹스 커피나 고깃집 문 앞의 커피 머신으로 뽑아먹는 아메리카노와는 다른 맛이다.
……물어볼 게 뭔데?
내가 다 준비해 왔어. 진짜 몇 개 안 돼.
김연수가 반색하며 노트북 위에 손을 올려놓는다. 나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모르는 채로 빨대 끝을 잘근잘근 씹는다.
어, 질문 시작할게. 첫번째, 구름에는 어떻게 살게 되었나요?
나는 김연수를 쏘아본다. 이년이 진짜 미쳤나 싶어서다. 하지만 김연수는 아랑곳없이 눈을 반짝이며 그저 대답만 기다리고 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다.
……그냥 태어나보니 여기였는데.
그래? 그럼 부모님이 구름 사람이었던 거야?
고개를 끄덕이자 김연수의 손가락이 부지런히 키보드 위를 왔다갔다한다. 타닥타닥, 경쾌한 소리.
그럼 두번째, 구름에서 살면서 제일 힘든 건 뭔가요? 구름 사람으로서 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나요?
나는 잠시 고민한다. 물론 있지 너 같은 애들한테, 라고 대답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왠지 그러기는 싫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인정하는 것 같기 때문이다. 너는 나를 차별할 수 있는 사람, 나는 네게 차별을 당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나는 목 끝까지 치미는 말 대신 다른 말을 한다.
별로 없어.
그래? 아주 작은 거라도?
김연수가 재차 캐묻는다. 나는 정말로 그렇다는 듯 어깨를 들썩해 보인다. 내 대답이 마음에 안 들겠지. 괴롭고 힘들다고 말해야 더 그럴듯해 보일 테니까. 하지만 나는 김연수의 뜻대로 놀아나줄 마음이 없다.
그럼 세번째.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인공 강우제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뭘 어떻게 생각해, 존나 좆같다고 생각하지.
어…… 그러니까 나쁘게 생각한다는 거지?
키보드를 두드리던 김연수의 손이 뚝 멈춘다. 하긴, 과제물에 ‘좆같다’는 말을 쓸 수는 없겠지. 아니면, 귀하신 땅 사람님 앞에서 감히 욕을 해서 깜짝 놀라셨나? 나는 속으로 웃는다.
존나 나쁘게 생각하지. 너 같으면 니네 집 무너뜨린다는데 존나 좆같지, 그럼 안 좆같겠냐? 그런 씨발 새끼들은 다 잡아다가 거꾸로 매단 담에 걔네 집부터 부숴버려야 돼.
큰 소리로 말하자 옆 테이블에 앉은 커플이 우리를 흘끔거린다. 김연수도 그 시선을 의식했는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다.
야, 안 그래? 씨발 너 같으면 어떨 것 같냐? 가뜩이나 좆도 없는 살림살이며 집이며 다 부신다는데, 집에 씨발 거동 못 하는 노인네가 있건 애새끼가 있건 상관없이 강우제 뿌려서 다 조지겠다는데 너 같으면 어떨 거 같냐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말해.
김연수가 애원하듯 속삭인다. 하하, 저 표정 좀 보라지. 이제 카페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카운터 너머의 아르바이트생도 험악한 얼굴로 이쪽을 흘긋댄다. 하지만 나는 목소리를 낮출 생각이 없다.
진짜 땅 새끼들은 생각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어. 구름 부수면 그거 다 니네 머리 위로 떨어진다? 아, 상관없나? 어차피 땅에서도 존나 가난한 애들만 구름 밑에 사니까, 그치? 우리 몸뚱어리랑 걔네 대가리가 부딪쳐서 박살나면 참 재밌겠다, 땅 거지랑 구름 거지랑, 그치? 아하하하.
나는 크게 웃는다. 아르바이트생이 더이상 못 참겠다는 듯 결연한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가 채 우리 테이블에 도착하기도 전에, 김연수는 노트북을 탁 소리 나게 덮고는 짐을 챙기기 시작한다. 뺨이라도 한 대 맞은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져 있다.
왜, 벌써 가게? 질문 아직 안 끝나지 않았어?
나는 정말 의아해 죽겠다는 듯한 말투로 묻는다. 김연수는 아랑곳없이 노트북을 가방에 욱여넣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한다.
야, 내가 인공 강우제 뿌리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래?
나는 당황한다. 김연수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우는 거지? 울어야 될 쪽은 나 아닌가? 대체 자기가 뭐가 슬프고 억울해서 우는 거지? 이유를 채 묻기도 전에 김연수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 떨어진다. 다음 순간, 김연수는 휙 바람 소리 나게 돌아서더니 카페를 나가버린다. 자리에는 어리둥절한 얼굴을 한 나와 커피잔 두 개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괜히 머쓱해진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이쪽을 쳐다보던 사람들이 황급히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한다. 여기서 더 구경거리가 될 필요는 없다. 컵 바닥에 조금 남은 커피를 쭉 빨아 마신 뒤 카페를 나온다.
집으로 걷기 시작한다. 뭔가 꼴이 우습게 된 것 같아 입맛이 쓰다. 그 얄미운 애를 실컷 쪽팔리게 해주면 속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어쨌든 김연수의 과제는 잘 마무리될 것이다. ‘구름 사람들은 인공 강우제에 관해 이야기하면 극도로 폭력적인 태도를 보인다. 그들은 땅 사람들에 대한 증오를 숨기지 않으며,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는 등의 남부끄러운 행동을 거리낌없이 한다’ 같은 문장을 쓴다면. 거기에 오늘 제가 겪은 일까지 곁들이면 꽤나 진정성 있는 멋진 글이 될 것이다. 장학금은 보나마나 따놓은 당상이다. 그러니 김연수는 다음 학기에 휴학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대학을 계속 다니고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집을 사고 차를 사겠지. 그런데 걔는 도대체 왜 울었을까.
눈물에 대해 생각하자 문득 잊고 있었던 사실이 하나 떠오른다. 김연수를 만나러 나오기 전, 혹시 김연수가 엄마에 대해 알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일이다. 왜 그런 멍청한 상상을 했을까. 나는 이번에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비참해진다. 하지만 이런 일로 울 수는 없다. 더구나 길거리에서는 더더욱. 나는 목을 움츠리고 터벅터벅 걷는다.
37
일하러 가려고 발판을 내려왔는데 앞에 웬 남자 두 명이 서 있다. 내가 땅에 발을 딛자마자 그중 하나가 종이 한 장을 건네준다. 엉겁결에 받아들고 보니 맨 위에 빨간 글씨로 ‘계고장’이라고 쓰여 있다.
이게 뭐예요?
계고장입니다.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남자의 얼굴을 노려보지만 남자는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마주볼 뿐이다.
그러니까 계고장이 뭐냐고요.
밑에 읽어보시면 될 거 같아요.
옆에 서 있던 남자가 대신 말한다. 나는 시키는 대로 ‘계고장’ 아랫부분을 소리내어 읽는다.
……수신자 ○○동 상공 구름의 불법건축물 거주민 귀하, △△년 △월 △일 ○○동 상공 구름을 방문하여 무단으로 건축한 가택을 철거 및 퇴거하도록 촉구하였으나 현재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구름을 방치하면 ○○동 거주민들의 일조권과 재산권에 큰 침해를 입히는 바, 근시일 내 인공 강우제를 살포하여 구름을 제거할 예정이며 이로 인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없도록 즉시 철거 및 퇴거할 것을 행정대집행법 제2조 및 동법 제3조 1항의 규정에 의거하여 계고하는 바입니다.
두 남자는 마치 시 낭송이라도 듣는 듯이 멍하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내가 글을 다 읽고 난 뒤에야 정신이 번쩍 든 듯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거예요?
방금 읽으셨잖아요. 철거 후 퇴거하시라고.
어디로 가라고요?
그렇게 묻자 두 남자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눈을 피한다. 나는 다시 묻는다.
어디로 가라는 말이냐고요?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나는 그들을 똑바로 노려보다가 손에 쥔 종이를 눈으로 다시 살핀다. 이들이 방문했다는 △△년 △월 △일이 언제지, 생각하다 그만 헛웃음이 터진다. 기억났기 때문이다. 지난번에 웬 남자가 꾸역꾸역 구름으로 기어올라왔다가 시뻘건 토사물만 한 바가지 남기고 갔던 일이. 하지만 그게 어떻게 ‘무단으로 건축한 가택을 철거 및 퇴거하도록 촉구’한 것이 될 수가 있나.
이게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두 남자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다. 당황해서가 아니라 더워서다. 공무원이 틀림없을 그들은 둘 다 어려 보인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누구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떠맡았겠지. 땡볕 아래 서서 거지같은 구름 사람들한테 욕이나 얻어먹는 일을. 그들이 지친 얼굴로 묻는다.
집에 어른 없어요?
제가 어른인데요.
어려 보이는데.
돈 벌고 애 키우면 그게 어른 아니에요?
두 남자는 못 당하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나도 알고 있다. 이들은 더이상 내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 여기서 계속 붙잡고 입씨름해보아야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이다. 출근만 늦어질 뿐. 나는 종이를 구기다시피 접어 옆구리에 끼고 그들을 떠난다. 종종걸음쳐 골목을 지나, 한 번 방향을 꺾어 다른 길로 접어들고 나서 휴대폰을 꺼낸다. 아빠에게 전화를 건다.
받아라.
제발 받아라.
신호 대기음이 길어진다. 아빠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제 밤이다. 새벽이 다 되어 엉망으로 술에 취한 채로 들어왔다. 발판은 어떻게 올라온 것인지,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비틀거리다 그대로 문 앞에 쓰러졌다. 담배는 많이 피워도 이렇게 술을 마시는 건 드문 사람인데, 어쩐 일일까. 어쨌든 잘 거면 편하게 자라고 팔을 끌어 방 중앙으로 데려다놓는데, 아빠가 끙끙 신음소리를 내며 중얼거렸다.
어떻게 그래, 어떻게 어떻게 응, 어떻게 그래.
뭘 어떻게 그래.
무심코 대답했지만 아빠는 그대로 입을 벌리고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어나보니 보이지 않고 동생만 곤히 자고 있었다. 일을 하러 갔겠거니 생각했지만, 보낸 문자에 내내 답장이 없었다. 그러니 전화도 받지 않을 확률이 높다. 아니나다를까, 신호 대기음이 툭 끊어지더니 음성 사서함으로 연결하겠냐는 안내가 이어진다. 나는 전화를 끊고 다시 걸기를 서너 번 반복하고 나서야 포기한다. 대신 문자를 남긴다.
아빠 구름 철거한대 우리 나가래 어디로 가야 돼?
하지만 아빠라고 그걸 알 리가 없다. 만일 아빠가 우리가 살 만한 곳을, 그래도 되는 곳을 찾았다면 진작에 그리로 데려갔을 테니까. 나는 휴대폰을 꼭 쥔 채 고깃집으로 걷기 시작한다. 이대로 아빠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원도 이 계고장을 받았을까. 새벽에 출근하는 원은 아마 퇴근길에야 공무원들을 마주칠 테니 아직 모르고 있을 것이 틀림없다. 원에게 이야기하고 같이 대책을 세우는 게 좋을까. 하지만 만일 구름에서 쫓겨나게 된다면 원은 춘 여사와 동생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나까지 원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다.
그런 생각을 하며 고깃집에 들어가니 먼저 와 앉아 있던 주방 이모가 내 안색을 살핀다.
무슨 일 있어?
왜요?
표정이 꼭 어디서 매라도 맞고 온 사람 같잖아.
나는 말없이 손에 쥔 종이를 내보인다. 주방 이모가 목을 쭉 빼고 종이에 쓰인 글을 읽더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머, 이게 뭐야? 이거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몰라요. 나가라는데.
아이고, 어떡하니. 어떻게 해야 돼. 갈 데는 있어?
없죠.
이거 뉴스에서 떠들던데 우리 동네도 결국 하는구나. 저 밑에 지방에, 열 집 정도 사는 작은 사이즈 구름들은 이미 다 철거를 했다고 하데? 정말로 인공 강우제 뿌려서 녹인다나봐. 밑에다 천막 같은 거 펼쳐놓고.
벌써 뿌린 곳도 있다고요?
그렇다나봐. 사람들이 하도 철거해라, 철거해라 민원을 넣어서……
말하다 말고 주방 이모는 찔끔하며 입을 다문다. 그러나 나는 딴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지, 다른 지역에도 구름들이 있었지. 이미 인공 강우제가 뿌려졌다니 그럼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 어디로 갔을까. 몸은 괜찮을까. 그들도…… 저항하려고 했을까. 만약에 이 나라의 모든 구름 사람들이 한데 뭉쳤다면, 누구의 불만이나 반대도 없이 모두가 한목소리를 내어 이 얼토당토않은 일에 맞서 싸웠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확실히 지금과는 달랐을까. 하지만 나는 그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이제는 안다. 그래, 그건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