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반지하 단칸방이든 어디든

아휴 얘, 너 지금 여기 나와서 일할 때가 아닌 거 같애. 반지하 단칸방이든 어디든 비빌 곳 찾아서 동생이랑 짐부터 옮겨야지.

주방 이모가 수선을 떤다. 듣고 보니 그 말이 맞는 것도 같다.

너 돈은 있어?

있어요.

얼마나? 보증금 낼 정도는 돼?

모르겠어요. 얼마나 있어야 되는데요?

하아, 글쎄…… 이 동네가 근방에선 집값이 제일 싸긴 한데, 요즘엔 진짜 집세가 미친듯이 오른 판국이라.

대충 얼마쯤 필요할까요?

아유 모르겠네…… 그래도 칠팔백 정도는 있어야 되지 않을까?

헤엑, 나는 숨을 들이킨다. 칠팔백이라니. 우리집 전재산은 모두 방바닥에 뚫어놓은 구멍 속에 있다. 그 구멍을 돈으로 가득 채운다 해도 턱도 없을 거다. 얼마나 되더라. 세어본 지 오래되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오백만원도 안 될 것이 틀림없다.

, 모자라?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요. 어떡하죠?

주방 이모의 눈에 망설이는 기색이 스친다. 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할까봐 그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럴 생각은 없다. 갚을 수도 없을뿐더러, 이모한테 남에게 빌려줄 여윳돈이 없다는 것도 잘 아니까. 아무튼 이러고 있는다고 없던 돈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니다. 행동을 하려면 빨리 해야 할 텐데. 나는 선 채로 망설인다. 이모의 말대로 집으로 돌아가 어떻게든 이사할 방법을 강구해야 할까, 아니면 출근을 했으니 일단 앞치마를 걸치고 일을 시작해야 할까. 우물쭈물거리고 있는데 문이 열린다. 손님인가, 반사적으로 돌아서니 들어오는 것은 뚱한 얼굴을 한 사장이다. 마침 잘됐다는 듯 주방 이모가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가서 사정 얘기하고 월급 조금만 가불해달라고 해. 당장 달방이라도 얻어야 한다고.

늘 그렇지만, 사장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가게에 들어오자마자 직원들한테 인사도 없이 카운터 안쪽에 돌아앉아버린 그를 향해 나는 쭈뼛거리며 다가간다. 살이 두 겹으로 접힌 사장의 목덜미를 보며 부른다.

저기요. 사장님.

.

사장은 돌아보지도 않은 채 대답한다.

저기, 드릴 말씀이 좀 있는데요.

드려라.

다른 게 아니라…… 가불을 조금만 받을 수 있을까 해서……

……

다른 데 쓰려는 게 아니라 방을 얻어야 돼서요…… 언제 인공 강우제 뿌릴지 모른다고……

……

저 그래도 여기서 몇 년째 일 잘했잖아요…… 한 번도 결근한 적 없고……

……

사장님……

사장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바람에 나는 깜짝 놀라 뒤로 나동그라질 뻔한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던 주방 이모도 화들짝 놀란다. 거대한 덩치의 사장이 나를 내려다본다. 고기로 된 벽에 가로막힌 것 같다. 사장의 얼굴은 술에 취한 것처럼 새빨개져 있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넌 이게 안 보이냐.

……뭐가요?

새끼야, 가게 텅 빈 거 안 보이냐고. 지금 저녁 시간이 다 돼가는데 가게 안이고 요 앞 골목이고 간에 눈 씻고 찾아봐도 사람 새끼 하나 없는 거 좀 봐라. ? 이게 다 뭐 때문인 것 같애?

단춧구멍처럼 작은 사장의 눈이 나를 더할 나위 없이 원망스럽게 노려본다. 확실히 요즘 고깃집에는 손님이 없다. 그런데 그게 내 잘못인가, 왜 나한테 이러지. 생각하던 중에 갑자기 깨닫는다. 구름 때문이구나. 인공 강우제를 뿌린다고 하니 구름 아래 사는 사람들이 다 도망간 거구나.

안 그래도 장사 안 돼서 고기가 냉장실에서 썩어나는데, ? 가불? , 넌 아무 생각이 없냐? 이렇게 텅텅 빈 가게에 편하게 퍼질러 앉아서 수다나 떨고 커피나 뽑아 처먹다가 월급 받아가는 주제에 양심의 가책도 없어?

사장이 한마디 한마디 씹어뱉는다. 단어들이 가래침처럼 내 얼굴에 날아와 척척 늘어지는 것 같다. 나는 나도 모르게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여 꾸중 듣는 어린이 같은 모습이 된다.

니 사정 다 알겠는데, 내 사정도 생각 좀 해라, ? 맘 같아선 이 씨발놈의 구름 새끼들 진짜 다 죽여버리고 싶은 심정인데 참고 있으니까.

이기죽거린 사장이 이만 꺼지라는 듯 손을 내젓는다. 힘없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돌아오자, 이모가 말없이 내 손등을 토닥여준다.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니 그제야 목 안쪽에서 뜨거운 덩어리 같은 것이 치밀어오른다. 저 새끼가…… 저 새끼가 감히 나한테 양심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그런데 나는 거기다 대고 한마디도 대들지 못했다. 사장이 무서워서였다면 이렇게 화가 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었던 건 돈 때문이다. 혹시 그렇게 말하다가도 돈을 줄까봐, 말은 그렇게 해도 못 이기는 척 가불을 해줄 생각일까봐. 나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런 비겁하고 치졸한 생각을 품고 있었던 나 스스로가 사장보다 훨씬 징그럽다.

그때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울린다.

황급히 꺼내 들여다본다. 아빠다. 잔뜩 긴장한 내 손가락이 자꾸만 통화 버튼을 빗나간다. 겨우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나는 묻는다.

아빠, 어디야?

……어어.

순간 등골이 오싹하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분명 목소리는 아빠가 맞는데, 수화기 너머가 이상하게 고요해서 이질감이 느껴진다. 완전히 끝나버린 세계의 저편에서 걸려온 전화처럼.

아빠, 지금 어디 있어?

……

여보세요? 아빠, 지금 어디냐고. 나 식당 출근해 있는데 당장 집에 가야 될 거 같아. 아빠도 집에 와야 돼.

……

아빠?

나는 휴대폰을 양손으로 꽉 쥐고 대답을 기다린다. 몇 년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뒤, 다 까라진 아빠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온다.

……아빠 집에 못 간다.

? 어딘데? ?

여기 경ㅊ……

말을 끝내기도 전에 전화기를 빼앗긴 듯,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여보세요, 따님 되시나요? 여기 ○○경찰서인데요, 아버님께서 지금 현행범으로 체포돼서 와 계시거든요.

……?

○○경찰서에 지금 아버님 체포돼서 와 계시다고요.

아빠가 체포돼요? 왜요?

내 말에 주방 이모는 물론 멀찍이 있던 사장까지 놀라는 기색인 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것은 지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손끝 발끝에서 피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휴대폰을 쥐고 조금 비틀거린다. 바닥이 핑그르르 따라서 돈다.

, 시청 건물에 방화하시려다 신고 받고 현행범으로 체포되셨어요. 범행은 미수로 그쳤는데, 그래도 이게 현주건조물 방화 예비죄라고 해서 무조건 처벌을 받긴 받는 거거든요.

……? 뭘 하려고 했다고요?

수화기 너머 남자는 답답하다는 듯 목소리를 한 톤 높인다.

방화요 방화. 불 지르는 거. 휘발유 말통이랑 라이터 들고 시청 건물 장애인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체포되셨어요. 본인도 지금 다 인정하셨고. 아무튼 따님분, 직계가족이시고 성인 맞으시죠? 자세한 건 좀 오셔서 이야길 하셔야…… 여보세요? 따님분?

나는 대답하려고 입을 연다. 그런데 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떨어지며 구멍이 만들어지긴 했는데, 그 구멍에서는 쌕쌕 거친 숨만 새어나올 뿐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다. 갑자기 목에 뭐가 턱 걸린 것처럼 숨이,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나는 휴대폰을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는 양손으로 주먹을 쥐고 가슴을 쾅쾅 소리가 나도록 세게 내려친다. 얘가 왜 이래! 주방 이모가 소리치며 일어선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주방 이모를 향해, 나는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내젓는다. 지금 이게 문제가 아니다, 빨리 대답을 해야만 한다. 혹시 전화가 끊어지기라도 하면 다시 걸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만은 정말 피하고 싶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목소리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나는 가슴을 쥐어짜며 신음한다. 왜 이러지. 왜 이럴까. 아아, 왜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거야. 씨발, 대체 왜…… ……

 

 

38

 

아빠 오늘도 안 와?

아빠 안 온대. 나한테 문자했어.

동생은 흐응, 하고 대답도 뭣도 아닌 소릴 내더니 다시 휴대폰 삼매경에 빠져든다.

밤이 깊었다. 전구가 작은 원을 그리며 흔들리자 물건들의 그림자가 따라서 춤을 춘다. 나는 똑바로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그 그림자들이 내 몸을 아무렇게나 밟고 지나다니게 내버려둔다. 지금쯤 아빠는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빠가 있는 곳에도 저런 전구가 있을까. 거기도 이렇게 바람이 불까.

아빠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고개를 푹 수그리고 앉은 아빠를 보자마자 제일 먼저 그렇게 물었다. 왜 그랬느냐고. 아빠는 옆에 선 경찰이 시간이 없다 을러대는데도 아랑곳없이 땅바닥만 보고 있었다. 성질 같아서야 두들겨 패서라도 입을 열게 만들고 싶었지만 경찰서에서 그럴 수도 없어 마음만 졸이며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야 아빠는 머리를 숙인 채로 이렇게 말했다. 하도 열이 받아서, 분해서 그랬다. 나는 입술을 안으로 단단히 말며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 대답을 듣고 나자 사실 내가 진짜로 알고 싶었던 게 무엇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가 궁금한 건 왜 불을 지르려고 했는지가 아니다.

내가 듣고 싶었던 건 왜 불을 지르지 못했는지다.

그렇다, 이유에 대해서다. 자식들이 집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나앉게 생겼는데도 돈 한 푼 소리 한번 질러주지 못하고 저렇게 감옥에나 들어앉을 거면, 포승줄에 꽁꽁 묶인 채 손발 하나 까딱 못 하고 맥없이 고개나 수그리고 있을 거면, 그럴 거면 차라리 불이나 시원하게 질러버리지 왜 그것조차 못 했나.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인공 강우제 살포를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살 집을 구해달라고도 하는 것도 아닌데. 기름을 뿌리고 불붙이는 일, 고작 그거 하나도 제대로 속 시원히 못 해서 아빠는 이 모양 이 꼴로 여기 잡혀 와 있다. 그것이 한심해서, 정말 칼로 푹 찔러주고 싶을 만큼 한심해서 나는 아빠를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바닥에.

아빠가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방바닥에 구멍이 있다. 그 안에 돈이 좀 있어. 그걸로 일단 어떻게든 해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구멍에 들어 있던 돈은 직전에 이미 다 세어본 참이었다. 삼백칠십이만 오천원이 있었다. 온갖 지폐가 잡다하게 섞인 탓에 빵빵하게 부풀어올라 굉장히 많아 보였지만, 실상 땅에서는 두 평짜리 반지하 셋방도 구할 수 없는 돈이다. 자식 둘을 내버려두고 감옥에 들어가는 아빠가 믿고 있었던 구멍,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듯 알려주는 그 구멍에는 고작 그 정도의 돈이 들어 있었다.

……어른이 필요하면 뒷집 아저씨한테 부탁하고. 내 걱정은 마라.

뒷집 아저씨래.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아직도 누군가를 믿고 있다는 사실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어떻게 하는 말마다, 생각하는 것마다 저렇게 바보 같을까. 내내 다리를 떨며 서 있던 경찰이 이윽고 아빠를 일으킬 때까지, 아빠가 겁먹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안쪽의 다른 방으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입을 열지 않았다. 해야 할 말도, 하고 싶은 말도 더이상 없었으니까.

춤추는 그림자를 눈으로 좇으며, 나는 경찰서에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 하나를 마음속으로 궁굴린다.

아빠가 감옥에 간 사이에 구름이 철거되면 아빠는 우리를 찾을 수 없다.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새로이 머물게 될 집 주소를 알려주지 않으면 된다. 아빠가 얼마나 살다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짧지는 않을 것이다. 도망치기엔 충분한 시간이다. 출소한 아빠가 우리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면 된다. 이 넓은 땅에 나와 동생 둘이서 몰래 숨어들 만한 곳 하나 없을까. 찾으면 있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건 굉장히 합당하고 옳은 일이다.

아빠가 이렇게 아빠 노릇을 못 하잖아. 변변히 할 줄 아는 것도 없어서 그 나이 먹고도 노가다판이나 쏘다니고, 집에는 돈도 별로 못 가져오면서 툭하면 자식들을 복날 개새끼 패듯 패잖아. 데모 하자고 딸자식 앞세워놓고 자기는 뒤로 쏙 숨었으면서 비통한 척은 혼자 다 하잖아. 집은 헐리고 자식새끼들은 쫓겨나게 생겼는데 고작 한다는 게 제 분풀이로 불을 지르고, 아니, 그마저도 못 하고 잡혀갔잖아. 그게 무슨 아빠야. 그런 아빠는 필요 없다.

누나.

누구든 그렇다고 할 것이다. 그러니 도망칠 것이다. 아빠를 버리는 것이다. 설령 동생과 길거리에 나란히 누워 새우잠을 자게 된다고 해도, 그게 어느 동네의 무슨 골목인지 아빠는 이제 앞으로 평생 알 수 없을 것이다.

……누나.

어어.

생각에 빠졌던 나는 동생이 부르는 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대꾸한다. 동생은 여전히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우리 구름 철거돼?

누가 알려주디?

애들이 다 그러던데. 땅으로 도망가야 된다고.

어느 집 애들이 그래?

아 그냥 다 그래. 땅에 집 얻어야 된다고.

맞아. 우리도 이사가야 돼.

우리 돈 있어?

돈 있지. 아까 같이 세어봤잖아.

그걸로 모자라잖아.

아 내가 모아놓은 거 또 있어.

말하면서도, 이런 말로 대강 얼버무려질 것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동생은 더이상 묻지 않는다. 내 속이 시끄럽다는 걸 알아차린 걸까. 고마운 일이다. 나는 눈을 꼭 감았다가 뜬다.

야 있잖아.

?

너는 만약에…… 세상에 너랑 나만 남는다면 어떨 거 같아?

세상에? 어떤 세상?

몰라, 대충 생각해봐. 엄마 아빠 다 없고 너랑 나만 있다면.

, 지금처럼?

, 지금처럼.

동생은 왼쪽 위를 살짝 흘기며 생각에 잠긴다. 그러다가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지만 누나가 나 지켜줘. 내가 초등학생 되면 누나 지켜줄게.

의외의 대답에 나는 피식 웃는다. 동생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려다가 그만둔다. 머리카락이 두껍게 뭉쳐 떡이 져 있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들어가면 어떻게 지켜줄 건데?

나한테 다 계획이 있거든. 돈 많이 벌고 키도 엄청 클 거야.

돈은 그렇다치고 키는 어떻게 크냐.

고기 많이 먹으면 큰대.

그러냐.

알량한 안도감이 내 마음속을 기웃거린다. 동생도 약속한 거다. 아빠가 없다고 슬퍼하거나 떼를 쓰지 않을 거라고. 어쨌든 이 아이도 구름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돌봐주면 그 이후로는 충분히 제 앞가림을 할 것이다. 그래, 그렇게 둘이 살아가면 된다. 자리를 잡기 전까지 조금만, 정말 조금만 고생하면. 그러면 언젠간 땅에 집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전까지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온갖 고민들이 섞인 머릿속이 끈적끈적하게 녹아내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당장 내일부터 지낼 곳을 찾기 시작해야 할 텐데, 고깃집 일은 일대로 나가야 한다. 퇴근할 때쯤에는 부동산도 문을 닫을 것이다. 그러나 설령 부동산을 간대도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다. 돈이 없으니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돈이 없으면 어디서도 상대해주지 않는다.

어떡하지. 어떡하면 좋지.

큰 바람이 분다. 전구가 긴 호를 그리며 천장을 휘젓는다. 마치 빛으로 글씨를 쓰는 것 같다. 뭐라고 쓰는 걸까. 눈을 떴다 꾹 눌러 감는다. 눈꺼풀 안쪽에 초록빛으로 남은 전구의 잔상을 읽어보려고 하지만 영 알 수가 없다. 뭐야, 뭐라고 하는 거야. 나는 눈을 세게 비벼댄다. 이대로 눈알이 뽑혀나가도 별 상관이 없을 것 같다.

 

 

39

 

출근길에 보는 골목은 스산하다. 가뜩이나 나다니는 사람이 없는 판에 날씨까지 우중충하니 가게들은 거의 다 개점휴업 상태다. 두리번거리며 걷다보니, 언제 설치한 것인지 건물 꼭대기마다 이상한 것이 붙어 있다. 옥상의 네 귀퉁이에 쇠로 된 긴 막대가 하나씩 튀어나와 있고, 거기에 강철로 된 철망이 연결되어 늘어뜨려진 것이 보인다. 꼭 출항 직전의 배가 사려둔 그물 같다. 저게 뭐지, 여러 번 생각하고 나서야 알아차린다. 인공 강우제를 살포한 뒤 구름에서 떨어져내리는 물건들을 받아내기 위한 거로구나. 여기 사는 사람들도 짜증나겠다, 생각한 뒤 나는 어깨를 움츠리고 종종걸음친다. 저것이 아직 펼쳐진 모양은 아니라는 점이 그나마 고무적인 사실이라고나 할까. 저거 얼마나 튼튼할까. 사람도 받아낼 수 있을까. 나는 나와 동생과 우리집의 허섭스레기 같은 살림살이들이 빗방울처럼 저 그물 위로 떨어지는 상상을 한다. 저기 떨어지면 아마 면 뽑는 기계에 넣은 밀가루 반죽처럼 그물코 모양으로 쭉 뽑혀 나오지 않을까. 고기 면이 되기 전에 어서 거처를 구해야 할 것이다. 방법만 찾는다면.

고깃집에 도착하자마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나왔지만, 손님은 있을 리 없다. 텅 빈 홀에 앉아 있던 주방 이모가 눈인사를 보낸다. 사장은? 입 모양으로 묻자 역시 입 모양으로 안 왔어, 하는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어색하게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쉰다.

집은 알아봤어?

알아볼 시간이 없었어요. 돈도 없고.

아버지는? 뵙고 왔어?

.

어떻게 된대? 징역 사셔야 된대?

모르겠어요.

아휴, 변호사 사는 것도 다 돈인데. , 나라에서 해주는 변호사 있을 텐데?

국선 변호사 선임 청구서인지 뭔지를 내래요. 모르겠으면 법률구조공단에 전화해보라고.

아휴 참, 남의 집 아빠라 욕을 할 수도 없고 답답해 죽겠네.

주방 이모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젓더니, 갑자기 문득 좋은 생각이라도 난 듯 속닥인다.

, 너 이러고 있지 말고 나가서 부동산 갔다 와.

지금요? 사장 오면 어떡해요.

내가 바로 전화를 하든지 문자를 하든지 할 테니까. 잠깐 화장실 갔다고 하면 되잖아. 손님도 없는데, ? 지금 여기서 이럴 때가 아니야. 내일이라도 당장 강우제 뿌린다고 뉴스에서 난리인데.

이모가 내 어깨를 잡아 일으킨다. 그 등쌀에 못 이기는 척 일어나긴 했지만 여전히 마음은 그래도 되나, 싶은 심정이다. 설령 부동산에 간다고 해도 이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있을까. 혹시나 싶어 집에 있던 돈을 전부 가져오긴 했지만, 이걸 부동산 중개사 앞에 내밀 용기가 내게 있는지조차 확신이 없다. 비웃음을 당하면 어쩌지. 어린애라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그 돈으로 어떻게 땅에 집을 구하려 드느냐고 내쫓기면.

아이고, 망설이지 말고 빨리 가. 이럴 시간 없어.

이모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나는 힘없이 가게 바깥까지 밀려난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그렇다면, 정말 괜찮다면. 나는 사방을 한 번 둘러보곤 이모에게 고개를 꾸벅한 뒤, 앞치마를 머리 위로 벗으며 골목을 빠르게 벗어난다. 부동산이 어디 있더라. 평소에 오며 가며 봐둔 곳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찾으려니 눈에 띄지 않는다. 마침내 겨우 문을 연 곳 한 군데를 발견한 것은 등허리며 목까지 온통 땀에 젖은 뒤다. 나는 쭈뼛거리며 들어선다.

저기요.

집 보러 오셨어요?

나이든 여자가 책상 너머에서 일어난다. 언뜻 보기에도 꼬장꼬장하고 약삭빨라 보이는 인상이다. 나는 티 나지 않게 침을 꿀꺽 삼킨다. 주눅들지 말아야지. 시세만 물어보고 영 안 되겠으면 그냥 나오면 되니까.

…… 방을 좀 보려고 하는데요.

네네, 방이요. 혼자 사시려고요? 대학생?

아니요, 동생하고 둘이 살 건데요. 학생…… 은 아니고요.

그래요? 예산이 어느 정도 있는데요?

나는 조금 당황한다. 이렇게 갑자기 본론부터 시작할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오히려 잘 됐다. 쓸데없는 얘기를 주고받지 않아도 되니까.

삼백만원 정도……

보증금 삼백? 아이고, 그걸로 둘이 살 집을?

나이든 여자가 놀라는 척하며 외친다. 딱 벌어진 여자의 입안에서 금니가 번쩍거린다. 나는 고개를 돌리고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군다.

아이고, 삼백…… 삼백이라……

여자는 일어선 자세 그대로 책상 위에 놓인 장부 같은 것을 집어들어 이리저리 넘겨보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묻는다.

저기 혹시,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고. 아가씨 구름 사람이에요?

.

즉답했지만 여자는 들은 건지 아닌 건지 반응이 없다. 들여다보고 있는 장부에 몰두한 채로 흐음, 흠 콧소리를 내더니 블라우스 앞주머니에서 볼펜을 꺼내 종이에 크게 동그라미를 치고 뭐라고 메모한다.

그럼 지금 사정이 좀 급하겠네, 그치?

, 급해요. 많이.

여자가 갑자기 반말을 쓰기 시작한 것은 신경쓰이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건 여자의 말에서 풍기는 일말의 가능성, 혹시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듯한 저 뉘앙스다. 과연 여자는 동그라미를 친 장부를 한참 더 들여다보더니 갑자기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네네 여사님, 혹시 그 방 아직도 내놨나 해서요. 네네. . 네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의 표정을 지켜본다. 관자놀이에서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지금 방이 있다는 건가? 보증금 삼백만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아이고, 다행이다. 아직 안 나갔다네.

전화를 끊은 여자가 나를 바라본다. 다리가 탁 풀려서 주저앉을 것만 같다. 세상에,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린다니.

어떻게, 지금 가서 볼래? 비어 있다는데.

, . 갈래요. 갈게요.

그래 그럼. 여기 바로 앞이니까, 조금만 걸어가면 돼.

휴대폰과 열쇠를 챙긴 여자가 부동산을 나와 문을 잠근다. 그러고는 앞서 걷기 시작한다. 나는 종종걸음으로 여자를 따라간다. 가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이렇게 금방 해결될 일이었으면 진작에 부동산을 와볼걸, 지금까지 왜 그렇게 걱정만 했을까. 바보 같으니라고. 아니, 그전에 땅에도 이 정도 돈으로 구할 수 있는 집이 있었으면 우리 식구들은 그동안 왜 구름에 살았던 거야. 별별 생각을 다 하며 걷는다. 땅을 디디는 발에 용수철이 달린 것처럼 방방 뜨는 기분이다.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던 여자가 웬 초록 대문 앞에 멈춰 선 것은 십 분 정도 걸었을 무렵이다. 가타부타 말도 없이, 여자는 쇠로 된 문을 망설이지 않고 밀어젖힌다. 끼이이익 하고 녹슨 쇠 부딪는 소리가 귀부터 뱃속까지 쩌렁쩌렁 울린다. 영차, 하고 높은 대문턱을 넘어가는 여자를 따라 나도 대문을 넘는다.

눈에 보이는 것은 아주 낡아 보이는 작은 주택이다. 바닥에 시멘트가 발린 작은 마당에는 쓴 지 오래되어 보이는 수돗가가 있고 비슬비슬한 나무 몇 그루도 보인다. 더러운 창문에는 지저분한 스티커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분명 사람이 살았던 것 같은데, 사람의 온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집이다. 멸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문명의 유적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겁에 질린 채로 주변을 둘러본다. 이 여자가 뭔가 착각한 것이 분명하다. 물론 엄청나게 좋아 보이는 건 아니지만, 이만한 크기의 집 보증금이 고작 삼백만원일 리가 없다. 그때 여자가 어디론가 씩씩하게 걸어가더니 손짓한다.

이쪽으로.

여자를 따라 집을 반 바퀴 돌았을 무렵이다. 별안간 멈춰 선 여자가 벽을 가리킨다.

여기쯤인가. 그래, 여기다 여기.

나는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서 있다. 그가 가리킨 곳은 그냥 붉은 벽돌로 된 벽일 뿐이니까. 그런데 여자가 갑자기 허리를 숙이더니, 마치 무슨 질긴 식물 뿌리라도 캐내려고 애쓰는 사람처럼 뭔가를 쥐고 힘껏 잡아당기기 시작한다. 깜짝 놀라 쳐다보니 그것은 녹이 슨 둥근 고리로 된 손잡이다. 이게 뭐지. 벽에 왜 손잡이가 돋아 있지. 더 자세히 생각하기도 전에 퍼석, 하는 소리와 함께 벽인 줄 알았던 곳에서 웬 문이 벌컥 열린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여자가 열어놓은 공간을 바라본다. 눈앞에 어둑어둑한 굴 같은 것이 펼쳐져 있다.

아휴, 오랫동안 안 썼나보네. 청소 한번 하긴 해야겠다.

여자가 안을 들여다보며 말한다. 나는 허리를 구부려 들어서려다 컥 하고 숨을 참는다. 먼지도 먼지지만, 그보다는 마치 코를 찌르는 듯한 시큼한 냄새가 확 풍겨왔기 때문이다.

원래는 김장독이랑 젓갈 같은 거 놔두던 데라 그래. 문 좀 열어놓으면 냄새는 금방 빠져. 안에 창문도 있고.

코를 움켜잡은 나를 보며 여자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한다. 창문이 있다고?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신 뒤 멈추고, 허리를 잔뜩 숙인 채 안으로 크게 한 발을 들여놓는다. 다행히 안쪽의 높이는 허리를 쭉 펼 수 있을 만큼은 된다. 나는 몸을 어색하게 펴고 조심히 숨을 쉬려고 애쓰면서 방안을 둘러본다. 그리고 한눈에 깨닫는다. 이곳은 애초부터 사람이 지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정말로 좁다. 세간을 놓기는커녕, 나와 동생이 발을 엇갈려 누우면 서로 옴짝달싹할 여유도 없이 꼭 들어맞을 것만 같다. 게다가 여자가 말한 창문이라는 것은 한쪽 벽에 나 있는 손바닥 두 개만한 구멍이 전부다. 그 구멍 위에 옹색하게도 먼지투성이의 체크무늬 천조각이 압정으로 고정되어 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바닥에 깔린 누런 비닐 장판 위, 무거운 장독을 놓아두었던 듯 둥글게 눌린 자국마다 시꺼멓고 냄새나는 액체가 찐득하게 고여 있다. 생 시멘트가 그대로 드러난 벽에도 악취가 배어 있는 것 같다. 나는 거칠거칠한 벽에 손톱을 비벼본다. 손톱 끝이 갈리며 새하얀 가루가 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