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여기가 보증금 삼백짜리 방이에요?
왜, 마음에 안 들어?
여자가 날카롭게 되묻는다.
아니, 그건 아닌데……
아가씨, 생각 잘 해. 요즘 땅 사람들도 방 없어서 난리야. 이 정도도 없어서 못 산다구. 이제 구름 헐리면 이 동네 땅값이며 집값이며 다 오를 거라는 거, 알지?
물론 내가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그렇구나. 구름이 없어지면 살기 좋아져서 땅의 값이 오르는구나. 나는 원이 오래전에 했던 말을 생각한다. 땅 사람들 입장에선 우리가 세균과도 같을 거라던 말.
오늘 지나면 이 방도 금방 나가버릴지도 몰라. 그리고 아가씨, 내가 우리 딸하고 비슷한 또래 같아서 말해주는 건데.
여자가 무슨 비밀이라도 전해주려는 듯 한 발짝 가까이 다가서더니, 이곳엔 나와 자기밖에 없는데도 입을 귀에 바짝 가져다 대고 소곤거린다.
집주인들이 구름 사람이라고 하면 싫어해. 공실로 놔두면 놔뒀지, 웬만하면 안 받으려고 한다니까. 나니까 알아봐주는 거지, 다른 부동산 가서 구름 사람이라고 말하면 방도 안 보여주는 중개사들도 많어. 그러니까 혹시라도 어디 딴 데 가서 물어볼 때는, 응? 구름 사람이라곤 하지 말란 말이야.
나는 눈을 내리깔고 가만히 그의 말을 듣는다. 그럴듯한 이야기다. 약점은 들키기 전까지 감추는 게 좋다는 건 당연한 상식이니까. 내가 또 너무 순진했나. 몰랐다. 구름 사람이라고 말하는 게 약점이 된다는 건. 하지만 이건 좀 억울하다. 그냥 태어나보니 구름 위였을 뿐인데, 내가 뭘 잘못해서 여기서 나고 자란 것도 아닌데 그걸 말하는 것만으로 약점이 된다니. 그러나 나는 여자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그저 좋은 충고를 들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어떻게, 여기로 정할 거야? 다른 물건은 없어.
……동생하고 상의 좀 해볼게요.
그래그래, 그렇게 해. 대신 오늘 안에 전화를 줘. 알았지?
나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여자의 번호를 저장해두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화면이 켜지지 않는다. 배터리가 나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제 충전해두는 걸 잊어버린 채 그대로 들고 나왔구나. 그제야 갑자기 더럭 겁이 난다. 혹시 그동안 주방 이모한테 전화가 왔으면 어쩌지.
저, 가볼게요. 연락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나는 꾸벅 인사하고, 여자가 대답하기도 전에 돌아서서 온 길을 되짚어 뛰어가기 시작한다. 아주 힘이 센 누군가가 심장을 꽉 잡고 쥐어짜는 것 같다. 제발, 아직 사장이 가게에 돌아오지 않았기를……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지만 지금 그런 것을 신경쓸 때가 아니다. 나는 골목을 가로지르고 코너를 돌아 부리나케 달린다. 이제 두어 블록만 더 가면 고깃집이 나타날 참이다. 사장이 돌아왔을까.
그때, 나는 멀찍이서 뛰어오고 있는 원을 발견한다.
나를 본 원이 내게 달려오기 시작한다. 이윽고 원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정수리에서 무언가 아주 차갑고 불길한 것이 흘러내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 나도 원을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가까워질수록 그 직감은 선명하고 또렷해진다. 땀에 젖은 원의 얼굴에 가득한 저것은 절망과 충격이다. 아아, 무슨 일일까. 무슨 일이 또 일어난 걸까.
너, 왜, 전화, 안 받아.
이윽고 마주친 원이 숨을 헉헉거리며 한 단어씩 띄어 말한다. 나도 숨을 몰아쉬며 전원이 꺼진 휴대폰을 꺼내 보인다.
핸드폰 꺼졌어. 무슨 일인데.
너 찾으러 왔어. 고깃집에서는 나갔다고 하고.
야, 안에 사장 있었어?
아니. 근데 지금 그게…… 그게 중요한 게 아냐. 하……
원이 손바닥으로 땀에 젖은 얼굴을 문지른다. 볼이며 목 언저리가 새빨간데, 뛰어왔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원의 입술을 바라본다.
말해. 무슨 일이야? 지금 구름 철거한대? 우리 나가래?
아니. 그게…… 일단 가자. 가면서 얘기하자.
가다니 어딜?
원은 대답 없이 내 손목을 잡는다. 그대로 성큼성큼 뛰듯이 걸어 큰길로 나가더니 마침 오는 택시를 잡는다. 엉겁결에 문을 열어주는 대로 타긴 탔지만 영문을 모르겠는 건 여전하다. 뒷좌석에 따라서 탄 원이 택시 기사에게 일러주는 목적지를 들으니 더더욱 그렇다.
○○병원으로 가주세요.
병원? 야, 병원엘 왜 가?
질문에 아랑곳없이 택시가 출발한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느라 원의 목젖이 크게 꿀렁거리는 것을 본다. 원은 난감한 얼굴로 내 어깨 뒤쪽을 보고 있다. 무슨 말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이윽고 원이 낮게 말한다.
니 동생이…… 걔가 많이 아파.
응? 걔가? 왜? 갑자기? 무슨 말이야, 그게?
나는 달려들듯 묻는다. 동생이 아프다니.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함께 컵라면을 끓여먹고 나왔는데. 평소처럼 쭉 찢은 신김치 얹어서 국물까지 짭짭 전부 마신 그애가 아프다니. 그럴 리가 없다. 어디서 까불며 놀다가 이마라도 깨졌나. 아님 다리라도 부러졌나.
내 동생들한테 전화 받고 니네 집 갔는데…… 애가 엎어져 있더라고. 데리고 내려가서 119 태워 보내고 나서야 들었는데……
들었는데?
……걔가 구름을 먹었대. 인터넷 방송인지 뭔지 켜놓고.
나는 원의 입만 멍하니 바라본다. 뭐를 어쨌다고? 분명 제대로 듣긴 들었는데 내용이 한 번에 얼른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장이 머릿속에서 단어와 글자로 산산조각나 둥실둥실 떠다니는 것 같다. 구름, 먹었대, 방송. 그것들은 지금 도저히 내게 어떤 의미로도 해석되지 않는다.
일단 위세척 한다고 했는데, 구름 자체가 워낙 유독하기도 하고…… 영상 보니까 또 먹기도 엄청 많이 먹었더라고. 그래서 경과가 어떨지 잘 모르겠대. 일단 애가 정신을 차리는 게 먼저인데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서.
영상…… 이 있어?
나는 힘없이 묻는다. 잠시 망설이던 원이 자기 휴대폰을 내민다. 나는 한쪽 귀퉁이에 금이 간 원의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본다. 영상에 나오는 배경은 우리집이다. 동생은 아침에 함께 컵라면을 끓여먹었던 그 밥상 앞에 앉아 있다. 아마 원의 동생들 중 하나가 찍고 있는 듯, 화면 너머에서 그애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밥상 위에는 진한 분홍색 구름이 가득 담긴 국그릇이 덩그러니 놓여 있다. 화면 속 동생이 말한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지금부터 제가 이걸 먹어볼 건데요 이게 뭐냐면 바로바로 짜잔 구름입니다. 아하하 딸기맛 솜사탕처럼 생겼죠 아닙니다 구름입니다. 동생의 얼굴을 찍던 카메라가 국그릇 속을 잠깐 비췄다가, 약간 긴장한 기색의 동생 얼굴로 돌아온다. 지금까지 구름을 먹은 분은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제가 한번 먹어보려고 합니다 여러분 좋아요랑 구독 많이 해주세요 후원도 감사하고요 그럼 지금부터 먹겠습니다. 동생이 비장한 동작으로 숟가락을 드는 것과 동시에 나는 아아, 소리 내며 휴대폰 화면을 꺼버린다.
얘가 이걸…… 이 그릇에 있는 걸 다 먹었어?
원은 대답하지 않고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린다. 나는 무언가 더 묻기 위해 입을 벌리지만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는다. 잠시 후 원이 들릴락 말락 한 소리로 중얼거린다.
왜……
……
왜 너한테는 이렇게 좆같은 일만 생기냐……
……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니가 제일 열심히 사는데…… 제일 착한 것도 넌데…… 왜 너한테는 이런 씨발 개같은 일만 생기는 거냐고……
신호에 걸려 잠시 멈추었던 택시가 다시 출발하고, 고개를 돌린 원의 옆모습 너머로 차창 밖의 풍경이 빠르게 지나간다. 나는 멍하니 그것을 바라본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아니, 생각을 할 힘조차 없다. 온몸의 에너지가 순식간에 다 빠져나가 빈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그러게,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원아. 왜일까 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원은 한쪽 손을 들어 제 턱을 세게 감싸 쥐고 문지른다. 얼굴이 날아갈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처럼.
……나 때문이야.
잔뜩 쉬어버린 목소리, 이게 내 목소리가 맞나. 말하면서도 낯설다. 누군가 내 입을 빌려 대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걔가 비제이인지 뭔지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내가 해보라고 했어…… 뭐든지 해보라고, 꿈이 있는 건 좋은 거라고……
말이 입속에서 뱅뱅 돌다가 사라진다. 원이 내 어깨를 감싸 안고 토닥이지만 그의 팔이 닿은 곳에 아무런 느낌이 없다. 우리가 앉아 있는 이 택시가 섰다 달렸다 하는 것만이 아주 희미하게 감각될 뿐이다. 나는 입을 약간 벌린 채 택시 앞유리 너머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말하고 나니 알 것 같다고. 이건 정말로 내 잘못이라고. 참으로 그렇다. 할아버지가 죽은 일, 엄마가 도망간 일, 데모가 실패로 돌아간 일, 아빠가 잡혀간 일까지,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불운은 내 탓이 아니었다. 내가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멀리서 제멋대로 시작된 폭풍이 점점 몸집을 키우며 다가와 결국 내게 부딪친 것에 가까웠달까, 그렇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막을 수 있었다.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아니, 심지어 내가 이렇게 되도록 만든 것이나 다름없다. 동생에게 휴대폰을 구해준 것도, 볼 거면 조용히 보라고 이어폰까지 사다준 것도 나다. 돈이 없다고 다 들리게 투덜거린 것도 나고 꿈을 이루라며 격려한 것도 나다. 아주 죽으라고 고사를 지냈구나. 누나가 돼서 코흘리개 하나 제대로 돌보지 못해 이 지경이 됐다. 이제 곧 초등학교에 들어갈 거였는데. 초등학교 갈 때까지만 자기를 지켜달라고 했는데.
지킨다, 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갑자기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재빨리 고개를 숙이지만 소용없다. 미지근한 눈물이 순식간에 온 얼굴을 적시고 옷 앞섶으로 뚝뚝 떨어진다. 끄으으 하는 소리가 꽉 다문 잇새로 새어 나온다. 뭘 잘했다고 울어 울기를, 니가 울 자격이나 있냐.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눈물을 그치려고 애써보지만 잘 되지 않는다. 어깨가 위아래로 크게 들먹인다. 이대로 영원히 울 수도 있을 것만 같다.
그러나 택시가 병원 정문에 미끄러지듯 들어서자마자 울음은 저절로 뚝 멎는다. 나는 원을 따라 택시에서 내린다. 얼굴을 마구 문질러 닦은 뒤, 빠르게 걷는 원의 뒤에서 종종걸음치기 시작한다.
40
동생은 밤이 늦도록 눈을 뜨지 못한다.
좀 전에 다녀간 의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상한 일이라고 말했다. 즉시 위세척을 했으므로 먹은 것은 거의 나왔을 텐데, 왜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인지 모르겠다면서. 그리고 덧붙였다. 구름에는 중금속뿐만 아니라 수많은 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고 그중에는 아직 기본적인 연구조차 되지 않은 낯선 유해물질도 있으며, 그것이 신경계에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예측할 수 없다고. 나는 동생이 누운 침대 옆에 앉아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를 귀담아들으려고 애썼다. 구름이 얼마나 유독한지에 대해선 할아버지와 병원에 다니던 시절에 이미 여러 번 들은 적이 있다. 그 의사도 같은 말을 했었다. 구름이 가진 아직 연구되지 않은 독성 물질 어쩌고저쩌고. 나는 돌아가는 의사의 뒷모습을 쏘아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왜 그걸 연구하지 않는 건데. 너희들이 하는 일이 그거잖아. 뭔가를 연구해서 알아내는 거. 왜 구름은 그렇게 하지 않는 건데. 그렇지, 구름은 거지들이나 아프게 하는 거니까. 더 멋진 것, 더 돈이 되는 것을 연구하느라 바쁘실 테니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증오가 끓어오른다. 다 때려 부수고 엉망으로 망가뜨려주고 싶다. 불, 그래 불을 지르고 싶다. 흔적도 없이 다 타버리도록. 나는 아빠처럼 허접하게 망설이다 붙잡히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불을 내서…… 모두 죽일 것이다.
그러나 눈을 감고 누운 동생의 얼굴은 얼마나 평화로운가.
그 얼굴을 내려다본다. 새까맣게 탄 피부, 입술엔 핏기가 하나도 없다. 긴 속눈썹이 돋은 눈꺼풀에 비치는 파란 실핏줄들. 입가에는 토사물이 말라붙은 듯 엷은 분홍빛 흔적이 남아 있다. 볼수록, 그냥 잠들어 있는 것만 같다.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고 실컷 놀다가 기분좋게 지쳐서. 물론 이건 상상에 불과하다. 나는 그런 동생의 모습을 실제로는 본 적이 없다.
마지막으로 동생의 손을 한번 잡아본 뒤, 나는 중환자실을 나온다.
병원 복도를 터벅터벅 걸으며 아까 원무과에서 들었던 말을 생각한다. 원무과 직원은 내게 동생을 계속 중환자실에 둘 거냐고 물었다. 의식이 없는 상태라 일단은 중환자실에 넣었지만, 원한다면 내일이라도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다고 했다. 입원비 때문이다. 중환자실의 입원비는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다. 물론 가장 싼 육인실로 옮긴다고 해도 만만한 금액은 아니겠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지금 가진 돈을 모두 병원비로 쓴다고 쳐도, 버틸 수 있는 건 고작 한 달이다. 물론 오로지 입원비만 계산한 것이다. 동생이 깨어나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약값이나 수술비가 더 들어갈지도 모른다.
혹시 이대로 영영 깨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병원을 나온다. 중환자실 면회는 아침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가능하다고 했으니, 내일 출근하기 전에 병원에 들를 수 있을 것이다. 출근 생각을 하자 마음 한편이 슬그머니 무거워진다. 충전할 곳이 마땅치 않았던 터라 휴대폰은 아직도 배터리가 나간 상태다. 주방 이모에게라도 알려뒀어야 하는데. 상황을 모르는 고깃집에선 내가 제멋대로 사라졌다고 생각할 것이다. 동생의 상태를 얘기해도 아마 거짓말이라고 생각하겠지. 아르바이트를 잘리게 될지도 모른다. 아직 문을 닫지 않았다면 차라리 지금 고깃집으로 돌아가는 편이 좋으려나. 그러고 보니 지금이 몇 시인지도 알 수가 없다. 병원 입구 앞 풀숲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 하나를 붙잡고 시간을 묻자, 열두시 사십오분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가게는 한창 마감 준비를 하고 있을 시간이다. 지금 가봤자 이미 늦었다. 나는 고개를 꾸벅하고 다시 걷기 시작한다. 집까지 걸어갈 작정이다. 아직 운행중인 버스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어디서 몇 번 버스를 타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택시를 타기엔 돈이 아깝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 발판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무릎 아래쪽부터 내 몸이 아닌 것만 같다.
나는 머릿속을 비우고 걷는 일에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발이 아니라 무거운 추가 달린 듯, 안간힘을 쓰지 않으면 걸음을 올바른 위치에 옮겨놓을 수가 없다. 아니, 다리뿐만이 아니다. 온몸이 피곤에 촘촘히 절여져 어느 한구석도 편안하지가 않다. 갑자기 몸의 모든 조임쇠가 풀어지며 산산이 분해될 것만 같다. 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차라리 그렇게 된다면 좋겠다. 이 낯선 길 위에서. 차들이 쌩쌩 달리며 내 옆을 지나간다. 그 바람에 머리카락이 푸르르 날리며, 세상이 갑자기 깜박거리고 희미해지다 천천히 되돌아온다. 그 순간 나는 애써 외면해왔던 한 가지 사실이 더이상 피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워졌음을, 그래서 그것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 외에는 아무런 방법이 없음을 깨닫는다.
나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혼자.
완전히 혼자.
이 두렵고 불쾌하고 유해한 것으로 가득한 세상에.
나는 길가에 비틀거리며 멈춰 선다. 아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아직 동생이 죽은 것도 아닌데. 그럴 리가 없다. 어린데다 원체 건강해서 감기 한번 걸려본 적이 없는 아이다. 곧 언제 그랬냐는 듯 깨어날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호되게 혼내면 된다. 핸드폰 따위 빼앗아버리고 공부, 그래. 허튼짓 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해야지. 쓸데없이 불길한 생각은 하지 말자. 나는 찻길과 인도 사이에 놓인 울타리를 붙들고 천천히 심호흡한다.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집에 가서 휴대폰을 충전해야 한다. 혹시 병원에서 연락이 올지도 모르니까. 발판까지만 가면 된다. 발판 옆에 구름 사람들이 돌려 쓰는 휴대폰 충전기가 하나 놓여 있으니까. 하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발이 떼어지지 않는다. 불행이, 끔찍한 불행이 내 양 어깨 위에 버티고 서서 나를 바닥으로 내리누르고 있는 것만 같다. 나는 내 어깨를 밟은 불행의 새까만 맨발을 느낄 수 있다.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만 골라 달라붙는 이 비겁한 새끼, 찍소리도 내지 못할 걸 알기에 더 독하게 구는 개같은 새끼의 말랑말랑한 발바닥. 나는 몸서리를 치며 그것을 털어내려고 하지만 소용없다. 그것은 나와 연결되어 있다. 아주 오래전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아니 태어나기도 전부터 불행은 나와 한몸이다. 분리하려야 분리할 수 없는 이 단단한 결합.
그리고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그 불행과 단둘이 밤을 보내야만 한다.
나는 이를 악문다. 그것만은 정말로 피하고 싶다. 천장의 흔들리는 전구를 바라보며 괴로운 일들을 곱씹는 그 짓거리만큼은. 아무도 없는 집에 누워 이곳이 가족들로 북적거리던 때를 추억하는 일 따위는.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달리 갈 곳도 없다. 돌아가야만 한다. 틀림없이 어둠으로 돌아가도록 되어 있는 그림자처럼. 나는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힘을 짜내어 다리로 보낸다. 발을 떼어놓을 수 있도록.
마침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두시가 한참 넘은 시각이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휴대폰부터 충전기에 꽂아둔다. 입이 깔깔하여 생수병을 낚아채 물을 들이키고 나니 오늘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하지만 전혀 배가 고프지 않다. 나는 아무렇게나 옷을 벗어두고 집안을 둘러본다. 아까 영상에서 봤던 밥상이며 그릇이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문드러지는 것 같지만 손댈 기운조차 없다. 그대로 놔두고 바닥에 벌렁 드러눕는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적막이 두꺼운 이불처럼 내 몸 위로 덮쳐든다.
나는 눈을 감고 가슴 위로 손을 모은다. 어서 잠들자.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잠의 세계로 도망가자. 이 고요함을 의식하지 말자. 잊자. 생각하지 말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곳으로 가자. 정수리부터 시작해 이마, 볼, 턱, 목, 쇄골 순서대로 의식적으로 힘을 푼다.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상상을 하며 부지런히 잠을 불러모은다. 어서 잠들자. 어서.
그리고 잠깐 의식의 끈을 놓쳤다고 생각한 순간, 별안간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나는 갑자기 귓방망이라도 후려맞은 듯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번쩍 뜬다. 전화벨 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며 고요를 갈기갈기 찢는다. 휴대폰 화면이 하얗게 발광하며 어두운 방 안에 빛을 뿌리고 있다. 허겁지겁 충전기를 꽂아놓은 쪽으로 가는 내 발이 자꾸만 꼬인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부터 온 전화. 시간은 새벽 네시가 넘었다.
통화 버튼에 손을 가져가기 전,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 누구일까. 받기 전까지 상상 속에서 상대방은 그 누구라도 될 수 있고, 용건은 어떤 것이라도 될 수 있다. 예를 들면 곧 돌아가겠다고 말하는 엄마가 될 수도 있고 운 좋게 집행유예 판결을 받아낸 아빠가 될 수도 있다. 청소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가 그냥 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어본 원일지도 모르고, 나를 저주하고 싶은 김연수나 고깃집 사장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늘 인공 강우제를 뿌릴 작정이니 대피하라는 전화이거나, 그 밖에도 고깃집 이모, 부동산 여자, 영애 엄마, 어쩌면 저승에서 할아버지가 걸어온 전화일 수도 있겠지. 그 모든 가능성을 고르게 믿으려 애쓰며 나는 전화를 받는다.
그리고 아득히 먼 허공에다 대고 여보세요, 라고 말한다.
41
동생은 내가 병원에 도착하고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죽었다.
끝내 의식을 되찾지 못한 채였으므로 유언 같은 것은 없었다.
예전 할아버지를 화장했던 그 화장터에서 화장했다.
백옥처럼 새하얀 유골함을 고르면서도 울지 않았다.
낯선 누군가가 내 앞을 막아선 것은, 갓 죽은 생물처럼 미지근한 그것을 품에 안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42
여자는 자신의 이름을 김노을이라고 소개하고는 이렇게 덧붙인다. 항상 지는 이름이에요. 마치 그 문장까지 자기 이름에 포함되어 있다는 듯 능숙한 말투다. 멍한 머리로 그 말을 두어 번 곱씹고서야 뜻을 이해한다. 아 노을이라서, 노을이라서 진다고.
그런데 그 말을 지금 여기서 나한테 왜.
나는 동생의 유골함을 더 단단히 끌어안는다. 본능적으로 알 것 같아서다. 이 여자는 잡상인도, 종교인도 아니며, 내게서 무언가를 빼앗아갈 작정으로 말을 붙였다는 것을. 그렇다면 그건 지금 내가 가진 이것, 동생의 유골뿐이다.
아 참, 소개가 늦었네. 저는 이런 사람이에요.
여자가 손에 쥐고 있던 명함을 내민다. 나는 그것을 쳐다만 보고 받아들지는 않는다. 대신 묻는다.
누구시죠?
방송국에서 나왔어요. 실례지만…… 비제이 ‘구름 거지’ 누나분 맞으시죠?
뭐요?
김노을은 대답 대신 나를 빤히 바라본다. 그의 눈빛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냐며 나를 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 다 알고 왔는데 왜 숨기느냐고 따지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둘 다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눈을 잠시 마주보다가 고개를 모로 돌린다. 그게 뭐든지 간에 나와는 상관없으니까. 유골함을 안고 다시 빠르게 걷기 시작하는 나를 김노을이 막아서며 팔을 가볍게 잡는다.
잠시만, 잠시만 얘기 좀 나눠요 우리.
그쪽이랑 무슨 얘기를 왜 나눠요 제가.
그러지 마시고 잠시만. 잠시만요. 시간 오래 뺏지 않을게요.
김노을이 빠르게 말하며 옆걸음으로 재게 따라온다.
버스 타고 가세요? 택시? 제가 구름 밑까지 모셔다 드릴게요. 차 가지고 왔어요.
됐어요.
아유, 그러지 마시고 잠시만. 여기서 엄청 먼데 어떻게 가시려고요? 피곤하실 텐데 차로 편하게 가면서, 잠시만 이야기 나눠요 우리. 저 나쁜 사람 아니에요.
나는 머뭇거린다. 제 입으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 없다는 것 정도는 나도 안다, 고 쏘아붙이기에는 너무 피곤하다. 사실 김노을의 말대로다. 나는 지칠 대로 지쳤고 끌어안은 유골함은 몇 걸음 걷지도 않았는데 벌써 너무나도 무겁게 느껴진다.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으니까. 이대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한 게 사실이다. 결국 나는 못 이기는 척 발걸음을 늦추고 만다. 김노을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내 팔을 잡아끈다.
차는 저기 주차장에 있어요. 같이 가요.
김노을의 빨간색 경차 앞유리에 방송국 로고가 붙어 있다. 나는 유골함을 끌어안은 채 앞좌석에 깊숙이 앉는다. 차 안에서 무슨 음식 냄새가 난다. 따라서 탄 김노을이 코를 킁킁대더니 민망한 얼굴을 한다.
어휴, 냄새 나죠. 죄송해요. 방금까지 차에서 김밥 먹었거든요. 이런 일 하다 보면 제때 밥 먹기가 뭐해서.
……
맞다, 김밥 좀 드실래요? 오늘 아침에 집에서 싸 갖고 나온 건데요. 맛은 그냥저냥이긴 한데, 배고프실 것 같아서요.
거절할 틈도 없이 김노을이 차 뒷좌석으로 손을 뻗는다. 그가 검은 비닐에서 밀폐 용기를 꺼내 운전석과 조수석 사이에 펼치자, 겉이 반드르르한 김밥이 나타난다. 순간 갑자기 뱃속에서 뭔가가 꼬이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것이 극심한 허기라는 것을 자각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드세요, 저는 많이 먹었어요.
김노을이 새로 뜯은 나무젓가락을 파삭 소리 나게 갈라 건네준다. 나는 그것을 받아든 채 밀폐 용기 속을 들여다본다. 분명 먹음직스러워 보이는데,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손이 얼른 움직이지 않는다. 가지런히 놓인 김밥이 마치 처음 보는 물건처럼 생경하다. 이것을 입에 집어넣는다는 것이, 씹어서 꿀꺽 삼킨다는 것이, 그런 일을 바로 며칠 전까지는 아무렇지 않게 해냈다는 것이 모두 이상하기 짝이 없다. 배는 고픈데, 입에 침이 고여 뚝뚝 흘러내릴 것 같은데 동시에 구토가 치밀 것 같다. 왜 이럴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를 보던 김노을이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못 먹겠죠? 하긴…… 힘들 거예요. 당분간은 뭐든.
김노을이 밀폐 용기 뚜껑을 닫는다. 그러나 차 안에는 계속해서 김밥 냄새가 망령처럼 떠돌고 있다.
저도 그랬어요. 엄마 돌아가셨을 때…… 뭔가 먹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야 살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음식만 보면 역하고 속이 뒤집어지더라고요. 엄마는 죽었는데 내가 살겠다고 이걸 먹는 게 맞나. 내가 나 살겠다고. 그쵸.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좀 놀라고 있다. 방금 만난, 뭐 하는 사람인지도 모르는 이 여자가 내 마음을 정확히 읽은데다 명확한 언어로 정리까지 해주었다는 사실에. 정말로 그렇다. 동생의 유골함을 끌어안은 채 음식을 입에 처넣는다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먹게 되더라고요. 흔하고 뻔한 말 같지만, 시간이 약이에요. 봐요, 저도 엄마 생각나서 남의 장례식 얘기만 들어도 울곤 했는데 지금은 일한답시고 이렇게 화장터까지 찾아다니고 있잖아요.
김노을이 내 손에서 젓가락을 가져가더니 밀폐 용기를 닫고 비닐봉지에 집어넣는다. 그러고는 읏차, 소리 내며 그것을 아무렇게나 뒷좌석으로 내던진다.
먹고 싶어지면 다시 말해요. 더 맛있는 거 사줄게요.
나는 뒷좌석을 흘끔 본다. 뭔지 모를 쓰레기와 빈 플라스틱 컵, 음료수 캔 따위가 널브러져 난장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