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그럼 갈까요.
김노을이 차키를 꽂아넣고 시동을 건다. 차가 덜덜거리며 위아래로 크게 흔들리더니, 이윽고 천천히 주차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가만히 앉아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그 순간 정말 이상한 기분이 스물스물, 엉덩이부터 시작돼 몸 전체를 감싼다.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굳이 비슷한 단어를 찾자면, 안락. 그래, 안락하다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다. 안락하다니, 지금 이 상황이 어째서 안락해. 하지만 나는 이유를 알고 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누군가가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고 있어서다. 나를 이해하는,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 나를 지저분하지만 푹신한 의자에 앉혀놓고 오직 나만을 위해 차를 몰고 있어서다. 나는 무심코 유골함을 더 세게 끌어안는다. 그렇구나, 나는 이런 것에 약하구나. 누가 나를 알아주고 위해주는 것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구나. 그리고 이 치명적인 약점을 이제야 깨달은 건…… 내가 이런 경험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아서구나.
발판이라고 부르죠, 그거? 그 앞까지 데려다줄게요.
김노을이 말하며 자기 쪽 창문을 내린다. 차 안에 고여 있던 김밥 냄새가 빠지며 신선한 바람이 들어온다. 화장터 건물이 등뒤로 빠르게 멀어진다.
저, 그런데.
네에.
뭐 하시는 분…… 이세요?
마침 적신호다. 김노을의 차가 줄지어 서 있는 다른 차들 뒤로 부드럽게 달라붙으며 멈춰 선다. 김노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저물어가는 오후의 빛이 얼굴에 쏟아지고 있다. 나는 그 위에 흩어진 자잘한 주근깨들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린다. 이윽고, 김노을이 천천히 말한다.
저는 선생님을 도우러 온 사람이에요.
그러고는 씨익 웃는다. 정말로 정확하고 올바른 설명을 해냈다는 듯이. 그 웃음은 낯이 익다. 아니, 확실히 본 적이 있다. 아까 그가 자기 이름을 이야기한 뒤 항상 지는 이름이라는 말을 덧붙였을 때와 비슷한 웃음이다. 이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왔구나. 그리고 그것은 거의 항상 통했을 것이다. 도움을 주겠다는데 거절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이 깨달음이 나를 묘하게 차분하게 만든다.
어떻게 도와드릴지는 이제 함께 얘기해봐요, 차근차근.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끄덕이는 것 외에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처럼. 이윽고 신호가 바뀌고, 김노을이 여전히 미소 띤 얼굴로 앞유리를 응시하며 차를 출발시킨다. 나는 유골함을 끌어안은 채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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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구름을 먹는 영상이 아홉시 뉴스에 보도됐었다는 것을, 나는 김노을을 통해서 알게 된다. 정말 몰랐느냐며 눈을 동그랗게 뜬 김노을이 내게 휴대폰으로 그 뉴스를 보여준다. 하단에는 이런 자막이 떠 있다. 7세 아동, 인터넷 방송에서 구름 먹고 사망. 얼굴에 모자이크 처리가 된 동생이 밥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지나간다. 남자 아나운서가 심각한 얼굴로 말한다. 해당 아동은 곧 철거가 예정된 ○○동 상공 불법 건축물, 소위 말해 ‘구름’에 살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아동은 인터넷 방송을 시작하기 전, 철거 후 머물 주거지 마련을 위해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는데요. 참,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꺼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참담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해당 아동은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꿈 많고 천진난만했을 이 아이의 삶, 과연 누가 어떻게 책임져야 할까요. 우리가 함께 고민해보아야 할 일입니다.
나는 김노을에게 휴대폰을 돌려준다. 그것을 받아들며 김노을이 묻는다.
어떻게 생각해요?
뭘요?
이 뉴스요.
뉴스…… 그냥 뉴스구나, 싶은데요.
아휴, 착하네. 너무 착하다. 화도 안 나요?
김노을이 언성을 약간 높인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김노을이 사준 것이다. 우리는 발판 근처에 있는 카페에 앉아 있다. 잠시만 어디 앉아 이야기를 나누자는 말에 들어온 것인데, 자리에 앉고 나서야 김노을의 차에 유골함을 두고 온 것이 마음에 걸려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참이다.
왜 화가 나야 되는데요?
당연히 화가 나야죠. 말하는 것 좀 봐요. 너무 무책임하지 않아요? 우리가 함께 고민해봐야 할 일이라니. 이미 죽은 사람을 되살려줄 것도 아니면서, 고민을 하긴 뭘 해? 그런다고 저 아나운서가 돈이라도 한 푼 쥐어준대요? 구름 철거 안 되게 해준대요?
그렇지 않느냐는 듯 김노을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런가.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지금 별로 화가 나지 않는 이유는 땅 사람들이 때로 내보이는 저 무책임한 자비에 이미 이골이 날 대로 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김노을은 자기도 바로 그렇다는 듯 고개를 내젓는다.
뉴스뿐만이 아니에요. 인터넷 안 하시는 것 같은데, 잘 모르시죠? 동생분 영상 인터넷에 퍼지고 나서 난리가 났어요. 도와줘야 된다고, 어린애가 너무 안타깝다고. 근데 그 사람들, 다 말뿐이에요.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떠들긴 엄청 떠들지만 다 입방정으로 끝난다구요.
그 사람들이 뭘 어쩌겠어요. 그냥 저는…… 별로 관심 같은 거 받고 싶지 않아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기보다는 그냥 이 화제를 끝내고 싶어서 한 말이다. 그런데 김노을이 갑자기 눈을 희번덕거리며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네에? 무슨 말이에요 그게?
네? 뭐가요?
관심을 받고 싶지 않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
당황하고 어안이 벙벙해 김노을의 입만 바라보는데 김노을이 몸을 앞으로 숙인다. 지금부터 아주 중요한 얘기를 할 테니 잘 들으라는 듯이.
자, 봐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게 뭐일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할까요? 뒤에서 떠든다고 달라질 것도 없는데.
네? 어…… 글쎄요.
내가 답을 알려줄게요. 그 사람들은 그냥 착한 척하고 싶은 거예요. 내가 이렇게 착하고 선하다, 내가 이렇게 공감 능력이 높고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다. 그렇게 말하면 왠지 그래 보이거든요. 어때요? 내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럴지도요.
그래서 내가 하려는 게 뭐냐면, 그 사람들이 조금 더 착한 척할 수 있게 판을 깔아주려는 거예요. 너희가 젇말 그렇게 측은지심을 갖고 있고, 공감한다면 말로만 떠들 게 아니라 여기 이 사람을 직접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어디 너희의 공감 능력을 한번 마음껏 뽐내봐라, 하고요.
이쯤 말하면 알아들었겠지, 하는 표정이다. 그러나 내가 아직까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건 이야기가 드디어 김노을이 의도했던 본론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저, 죄송한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자 김노을이 피식 웃으며 대꾸한다.
바보같긴. 잘 생각해봐요, 내가 어디서 나왔다고 했죠?
방송국, 이라고 무심코 대답하려다 나는 말을 삼킨다. 전부는 아니어도 대강은 알 것 같아서다.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그것으로 인해 내게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를.
시간 많이 안 내도 돼요. 딱 하루만 내줘요. 뭐 준비할 것도 따로 없어요. 그냥 평소 지내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오히려 더 좋아요. 촬영해주실 여자 촬영 감독님 한 명이랑 나만 갈 거니까 크게 불편하지도 않을 거예요.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끝낼게요. 어차피 시간도 많이 없어요. 이슈 가라앉기 전에 빨리 내보내야 좋으니까.
저기, 그러니까 지금 저를…… 찍겠다는 건가요?
맞아요.
이제야 말이 통한다는 듯 김노을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떠올라 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다큐멘터리예요. 하루 정도는 따라다니면서 일상 생활 하는 거 찍고, 중간중간 짧은 인터뷰 같은 거 삽입하고. 그리고 마지막엔 후원 계좌 만들어서 띄울 거고요. 걱정 마요, 진짜 기깔나게 찍어줄 테니까. 제가 이래봬도 다큐 쪽 꽤 오래 있었거든요.
그건…… 그건 구걸이잖아요.
말해놓고 나는 김노을의 눈치를 본다. 구걸이라는 단어가 그의 기분을 상하게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김노을은 딱 잘라 대꾸한다.
맞아요, 구걸이죠.
……
왜요, 구걸 좀 하면 안 돼요? 이왕 구걸할 거 전국적으로, 제대로 한번 해보자는 거예요. 그게 어때서요? 후원 계좌에 돈 보내는 사람들이 뭐 그 정도 돈 없다고 굶어 죽나? 어차피 커피 한 잔 값, 파스타 한 그릇 값 정도 보낼 건데.
그래도, 그건……
잘 생각해요. 분하지 않아요? 방금 뉴스도 그렇고, 사람들은 그냥 동생분 얘기를 가십으로 소비하면서 불쌍하다, 안됐다 하고 입 싹 닦으면 끝이잖아요. 까놓고 말해서 그런 사람들이 해준 거 있어요? 오히려 뜯어가려고 하면 했지, 도와준 적 있냐고요. 이젠 우리가 그 사람들 이용하자는 거예요. 그게 나빠요? 어디가 왜, 어떻게 나쁜데요?
아까부터 치켜올라가 있던 김노을의 눈썹이 이젠 거의 앞이마 중간까지 갈 지경이다. 나는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비슬비슬 웃으며 김노을의 시선을 피한다. 하지만 사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깨닫고 있다, 김노을의 말이 옳다는 것을. 그들의 동정에 경멸이 섞여 있다는 사실이야 당연히 알고 있다. 내 사정이 안됐다고 말하면서 그 사정을 자기들 입맛대로 이용하는 사람들, 자기들에게 조금이라도 뭔가 요구하는 것 같으면 금세 태도를 바꿔 네 주제를 알라며 호통치는 사람들을 나는 수도 없이 만났다. 김노을의 말대로 그들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건 꽤나 통쾌한 일일 것이다. 얼굴이야 팔릴 테고 자존심도 좀 상할지 모르지만 어차피 크게 상관은 없다. 그런 건 전혀 귀한 것이 아니다. 그걸 지킨다고 밥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그런 말들을 속으로 궁굴리는 나를 김노을이 흘끗 본다.
그 후원이라는 게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될지 몰라도 모이면 생각보다 커져요. 뭐 구체적인 액수는 찍어봐야 알겠지만, 땅에 혼자 살 집 정도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뭐 집뿐인가, 대학 등록금이나 일자리를 내주겠다는 사람도 거의 항상 나타나는 편이고.
헤엑, 나는 나도 모르게 숨 들이키는 소리를 낸다. 김노을이 말하는 것들이 상상한 것보다 훨씬 거창해서다. 김노을이 웃으며 덧붙인다.
그러니까 이거 완전히 윈윈이에요. 저는 좋은 영상 찍어서 좋고, 그 사람들은 마음껏 착한 척해서 좋고, 그리고… …
유창하게 지껄이던 김노을이 말을 멈춘다. 그리고는 갑자기 무척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묻는다.
내 정신 좀 봐, 지금까지 이름도 안 물었네. 저기, 이름이 뭐죠?
나는 나도 모르게 아주 공손한 말투로 대답한다. 하늘, 오하늘이요. 그러고는 얼른 덧붙인다. 평생 구름에 살 팔자인 이름이죠.
나는 김노을이 박장대소하며 내 팔뚝을 찰싹찰싹 치도록 내버려둔다. 사실은 평생 한 번도 내 이름에 대해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서.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마치 미리 준비라도 해둔 것처럼. 하지만 꽤나 그럴듯하다. 어쨌든 틀린 말은 아니니까. 실컷 웃은 김노을이 눈꼬리를 눌러 눈물을 닦는 것을 보며 나도 웃는다. 이상한 일이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함께 웃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미 공범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건. 김노을도 그런 듯 웃음기 남은 얼굴로 내게 말한다.
잘해봐요, 우리.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차에 두고 온 동생의 유골함에 대한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44
촬영이 별거 아닐 거라고 했던 김노을의 말은 옳았다. 아침 일찍 발판에서 만나 함께 구름으로 올라온 김노을과, 그가 데리고 온 키가 껑충하니 큰 여자 촬영 기사는 그저 하루종일 나를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을 뿐 내게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뭔가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건 나다. 나는 그들을 데리고 구름을 한 바퀴 돌며 여기저기를 구경시켜준다. 사람들이 사는 곳, 무슨 일이 있을 때 모여들곤 하는 발판 앞 공터와 물을 떠와서 보관해두는 곳, 쓰레기장과 언젠가 고양이가 뛰어내렸던 구름의 끄트머리까지 전부. 이윽고 쓰레기장을 통과해 되돌아가던 중, 나는 폐지 더미 앞에 멈춰 선다. 그것을 들춰내고 내가 모은 인형들을 꺼내 보여준다.
이건 언제부터 모은 거예요?
김노을이 카메라에 잘 보이도록 인형들을 하나하나 펼쳐 늘어놓으며 묻는다. 나는 자랑스레 대답한다.
아주 옛날부터요. 남자친구가 사준 것들이에요.
남자친구가 있어요?
어어, 네……
어머 부끄러움 타나봐, 하고 김노을과 촬영 기사가 빙그레 웃는다. 하지만 그래서가 아니다. 내가 말끝을 흐린 것은 방금 이상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여기서 그와 섹스를 했다고, 바로 저기 고물이 쌓여 있는 곳 앞에서였다고 말하고 싶다는 생각. 손가락을 뻗어 정확히 그곳을 가리켜 보이고 싶다. 덧붙여 그 섹스가 얼마나 최악이었는지까지 구구절절 떠들고 싶다. 배기던 등허리와 하늘에 총총하던 별들과 원이 내 귀에 내뿜었던 뜨끈한 숨결까지도. 왜지. 왜 묻지도 않은 얘기를 자꾸자꾸 하고 싶어지는 거지. 나는 혹시나 내가 진짜 그렇게 할까봐 혀끝을 꼭 깨문다.
이윽고 해가 저물고, 마지막으로 집에서 짧게 인터뷰를 한 뒤 그들은 돌아간다. 나는 그들이 발판을 타고 내려가는 것을 본다. 오늘 수고했어요, 연락 줄게요. 김노을이 손을 흔들며 말한다. 네, 수고하셨어요. 나도 마주 손을 흔들어준다.
그들의 머리 꼭지가 흔들리며 눈 앞에서 사라지고 난 뒤, 춘 여사가 묻는다.
친구들이니?
아니요.
그럼 저 사람들은 누구니?
모르겠어요. 저를 도와주러 온 사람들이래요.
어떻게, 하고 되물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춘 여사는 더 말하지 않는다. 그저 입을 오물거리며 나를 바라볼 뿐이다. 나는 돌아서서 천천히 집을 향해 걸어간다. 뒤통수에 시선이 느껴진다. 거기에 섞여 있는 질타도. 나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뭘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요 그럼.
45
인터뷰어: (화면 밖에서) 여기가 하늘씨 집이에요?
하늘: 네. 거기 아무데나 앉으시면 돼요.
(카메라가 집안을 천천히 한 바퀴 돌며 비춘 뒤 하늘의 상반신으로 돌아온다.)
인터뷰어: 컴퓨터나 텔레비전 같은 건 없네요?
하늘: 태양광 발전으로 전기를 만드는데 양이 적고 그걸 온 마을 사람들이 나눠 써서…… 부피 큰 기계를 돌리면 민폐에요. 불 켜거나 핸드폰 충전하는 정도만 해야죠.
인터뷰어: 그럼 구름 위에 티비 있는 집이 하나도 없어요?
하늘: 네. 냉장고도 없는데요 뭐.
(카메라가 방 한편에 놓인 아이스박스를 비춘다.)
인터뷰어: 그럼 평소에 집에 있을 때는 뭐 하세요?
하늘: 어…… 잠자고…… (어색한 웃음) 어차피 일하느라 집에 많이 있지는 않아요. 주말에는 그냥 자고요.
인터뷰어: 아, 화장실은요? 화장실도 없어요?
하늘: 화장실……
(또다시 어색한 웃음, 문 옆에 걸려 있는 녹슨 모종삽을 가리킨다.)
인터뷰어: 저게 뭐예요?
하늘: 화장실 가고 싶으면 저거 들고 좀 멀리 가서, 구름 파내고 싼 다음에 다시 묻어요.
인터뷰어: 안 불편해요?
하늘: 평소엔 일하는 데에서 싸고 오니까.
인터뷰어: 아, 무슨 일 해요?
하늘: 고깃집 알바요. 지금은 안 해요. 잘렸어요.
인터뷰어: 왜요?
(하늘, 대답하지 않고 우물쭈물한다. 여성 나레이터의 목소리가 깔린다. ‘하늘씨가 동생의 죽음을 알게 된 것은 식당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하늘씨는 가게에 알릴 틈도 없이 병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다음날 출근한 하늘씨에게 돌아온 것은 싸늘한 해고 통보였다.’)
인터뷰어: 다른 가족들은 안 계세요?
하늘: 어…… 네. 지금은 저만 있어요.
인터뷰어: 왜요?
하늘: (고개를 약간 숙이고 말없이 옷소매를 잡아 뜯는다.)
인터뷰어: 가족 얘기 조금 해줄 수 있어요?
하늘: 아…… 꼭 해야 돼요? 좀 그런데.
인터뷰어: 왜 좀 그래요?
하늘: 좋은 얘기도 아니고…… (의미 없이 머리를 풀었다 묶었다 하며) 아무튼.
인터뷰어: 그럼 하늘씨 하고 싶은 얘기 해줄 수 있어요?
하늘: ……그냥 가족 얘기 할게요. 음…… 원래는 할아버지, 아빠, 엄마, 저, 그리고 동생 이렇게 다섯 명이 살았는데요.
인터뷰어: 이 집에서요?
하늘: 네. 근데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원래 좀 아팠는데 어느 날 보니까 갑자기.
인터뷰어: 여기서요? 하늘씨가 발견한 거예요?
하늘: 네. 저기 누워서. (하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구석을 카메라가 따라가 비춘다. 지저분한 이불이 구겨져 있다.) 자고 일어났더니 돌아가셨더라고요.
인터뷰어: 아.
하늘: 그리고 엄마는…… 엄마는 지금 연락이 안 돼요. 땅 사람 집에서 입주 가정부 하고 있었는데. 그냥 갑자기 사라졌어요.
인터뷰어: 엄마 찾으려고 해봤어요?
하늘: 나름대로요. 근데 못 찾았어요.
인터뷰어: 무슨 일이 생기신 건가요?
하늘: (씁쓸하게 웃고 고개를 숙이며) 도망간 거죠 뭐.
인터뷰어: 아빠는요?
하늘: 아빠는…… 지금 구치소에 있어요. 아빠랑도 뭐, 연락 안 돼요.
인터뷰어: 구치소요? 왜요?
하늘: 어 설명하자면 긴데…… 불 지르려고 하다가 잡혔어요. 시청에다.
인터뷰어: 시청에 불을 왜 질러요?
하늘: 아마 많이 모르실 텐데 저희가 저번에 작게 데모를 했었거든요. 구름 철거하지 말라고. 근데 그게 잘 안됐어요. 그러고 나서 아빠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자기 혼자서 억하심정이 있었나 봐요.
인터뷰어: 하늘씨는 아버님이 그런 생각이신 거 알고 있었어요?
하늘: 아뇨. 몰랐어요. 알았으면 말렸겠죠.
인터뷰어: 아무튼 그래서 할아버지, 아빠, 엄마랑 다……
하늘: 네. 동생이랑 둘이 지냈어요.
인터뷰어: 동생은…… 어떤 아이였어요?
하늘: 아, 걔는……
(나레이터의 목소리. ‘하늘씨는 동생 얘기가 나오자 말을 잇지 못한다. 오늘 낮에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던 하늘씨의 모습은 금세 온데간데없어진다. 고개를 숙여버린 하늘씨.’)
인터뷰어: 동생이 평소에 인터넷 방송에 관심이 많았어요?
하늘: 네. 맨날 봤어요. 그래서 제가 그런 것 좀 보지 말라고 맨날 그랬는데…… 자기가 커서 그걸로 돈 벌겠다고, 잘 될 수 있다고 맨날 그랬거든요. 그래서 제가…… (갑자기 입술을 일자로 힘주어 다물었다가 떼어내며) 해보라고 했어요. 꿈이 있는 건 좋은 거라고……
(카메라, 갑자기 훌쩍 일어나 성큼성큼 방 한쪽으로 걸어가는 하늘의 뒷모습을 잡는다. 하늘은 벽에 걸려 있던 달력을 떼어내고 빈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하늘: 이것 보세요. 걔가…… 동생이 여기다 돈을 숨겨놨더라고요. 사천원. 꼬깃꼬깃 접어서. (카메라가 벽을 확대한다. 갈라진 틈에 접힌 천 원짜리 몇 장이 끼어 있다.)
인터뷰어: 동생이 숨겨놓은 거예요?
하늘: 네. 어떻게 모았는지는 모르겠어요. 아마 어디서 훔쳤겠죠.
인터뷰어: 돈을 왜 모았을까요?
하늘: 구름 곧 철거된다 하니까…… 자기도 살 집이 필요하다는 걸 알았나봐요. (씁쓸한 웃음) 제가 평소에 돈 타령을 많이 하기도 했고. 어른들도 다 돈 타령하고.
(하늘, 돈을 그대로 둔 채 다시 달력을 건다.)
인터뷰어: 왜 안 꺼내세요?
하늘: 모르겠어요. 찾기는 예전에 찾았는데 얼만지만 세보고 그냥 다시 넣어놨어요. 이걸…… 이걸 제가 어떻게 꺼내서 쓰겠어요.
(처연한 분위기의 음악 흐른다. 소매 끝을 계속 잡아 뜯으며 고개를 숙이는 하늘.)
인터뷰어: 구름 철거되면 하늘씨는 갈 데 있어요?
하늘: 없죠. 저만 없는 거 아니고 여기 사람들 다 마찬가지예요.
인터뷰어: 그럼 어떻게 하시게요?
하늘: ……몰라요.
(나레이터의 목소리. ‘하늘씨는 동생이 죽기 며칠 전 종이 한 장을 받았다. 불법 건축물로 지정된 구름을 곧 철거할 테니 퇴거하라는 내용이 담긴 계고장이었다. 거기엔 어디로 가라는 것인지, 며칠까지 나가라는 것인지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카메라,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돌린 하늘을 비추다 하늘 뒤쪽으로 포커스를 옮긴다. 좌식 밥상 위에 하늘 동생의 유골함이 동그마니 놓여 있다.)
(화면, 하늘 동생의 구름 먹방 영상으로 전환된다. 동생이 분수처럼 토사물을 뿜어내며 쓰러지는 마지막 장면까지 송출한 뒤, 이어 동생의 생전 사진 몇 장을 연이어 보여준다. 목이 늘어난 러닝셔츠를 입은 모습, 사지를 뻗고 잠들어 있는 모습, 앞니가 두 개 빠진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양손으로 브이 자를 그린 모습. 화면 하단에 ‘사진: 오하늘씨 제공’이라고 쓰여 있다.)
(나레이터의 목소리. ‘누나가 사다주는 초콜릿에 기뻐 날뛰던 어린아이, 커서 키 크고 힘 센 사람이 되어 누나를 지켜주겠다던 아이가 밥그릇 하나 가득 구름을 퍼먹고 누나 곁을 떠나기까지, 하늘씨에게는 너무나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더 많은 일이 일어날 차례일 겁니다. 이미 많은 것을 잃은 하늘씨는 무엇을 또 잃게 될까요.’)
인터뷰어: 하늘씨가 지금 하고 싶은 건 뭐예요?
하늘: 하고 싶은 거요? (입을 다물고 옷소매를 뜯다가) 진짜 솔직히 말해도 돼요?
인터뷰어: 네.
하늘: 잠자고 싶어요. (스스로도 우스운 말을 했다는 듯 웃는다.)
인터뷰어: 잠이요?
하늘: 네. 그냥 아무도 저 안 깨우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고 그냥 계속 잠만 자고 싶어요.
인터뷰어: 무슨 꿈 꾸면서요?
하늘: 꿈…… 아니요. 꿈 안 꾸고. 아무 꿈도 꾸고 싶지 않은데요.
(먼 곳을 응시하는 하늘. 나레이터의 목소리. ‘꿈 많을 나이 스무 살, 하늘씨가 바라는 것은 그저 현실을 외면하고 도망치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런다고 하늘씨에게 다가올 것들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하늘씨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구슬픈 단조의 배경음악이 깔린다. 화면에 오하늘 명의의 후원금 계좌번호가 나타난다. 자막. ‘보내주신 후원금은 오하늘 양의 새 거처 마련과 중단된 학업을 이어가는 데 소중하게 쓰입니다.’ 이윽고 검게 처리된 화면 오른쪽에서 제작진들의 이름이 적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화면 왼쪽으로 하늘의 영상이 이어진다. 하늘은 동생의 유골함을 끌어안고 있다. 인터뷰어가 묻는다. “그건 왜 안고 있어요?” 하늘이 대답한다. “생전에 많이 못 안아준 게 마음에 걸려서…… 이거 딱 동생 머리통 느낌이랑 비슷해요. 딱딱하고 맨들맨들한 게.” 카메라는 유골함을 안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하늘의 뒷모습을 줌아웃한다. 엔딩 크레딧이 전부 올라가고 난 뒤, 프로그램이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