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부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내게 한 통의 부고 문자가 도착한다.
오후에 온 문자였으나 나는 밤이 늦어서야 그것을 본다. 저녁 손님이 막 몰아치고 난 뒤라 휴대폰을 보기는커녕 화장실도 가기 힘들 만큼 바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고작해야 동네 작은 백반집 주제에 뭐가 그리 바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이젠 홀서빙 아르바이트생 한 명으로 버티기가 슬슬 버거워지기 시작한 참이다.
문자를 읽은 뒤, 나는 가게 뒤편으로 돌아 나간다. 에어컨 실외기 위에 놓아두었던 담뱃갑을 집어든다. 저녁에 나갔던 그릇들의 애벌 설거지까지 끝낸 지금이 유일하게 담배를 피울 짬이 나는 시간이다. 불을 붙인 뒤 깊게 빨아들이며 문자를 다시 한번 읽는다.
김노을의 모친 고 김순희 님께서
20××년 ×월 ×일 별세하였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상주 김노을, 사위 장한석.
빈소 □□병원 장례식장 ×호실 장지 ○○.
이 부고가 왜 나한테까지 오게 되었는지 나는 모른다. 우리는 모친상을 알릴 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니니까. 김노을을 만난 건 그날 방송국 일층의 카페에서가 마지막이었고 그 뒤로는 어떤 연락도 주고받은 적이 없다. 상을 당해 경황이 없는 와중 단순히 전화번호부에 있는 모든 번호로 한꺼번에 전송한 문자일 수도 있고, 나와 이름이 같은 누군가에게 보내려던 것이 잘못 온 것일 수도 있다. 아무튼 내가 기억하는 김노을은 그다지 꼼꼼한 편은 아닌 것 같았으니까. 그러나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 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 이것이 내게 온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김노을의 어머니가 지금 돌아가셨다면 나는 그 사실을 꼭 알아야 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이므로.
잠시 망설이다, 나는 부고 문자 하단에 쓰인 계좌번호에 십만원을 송금한다. 내 이름은 김노을의 계좌에 영영 남을 것이다. 언젠가 김노을이 그것을 본다면 떠올릴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자신이 감쪽같이 속여넘겼던 가난한 여자아이를.
그러나 그렇지 않더라도.
밑반찬거리와 채소들이 곧 배달되어 올 것이다. 그것들을 정신없이 손질하고 다듬다보면 곧 밤이 깊을 것이고, 여느 날처럼 나는 집에 돌아가자마자 푹 쓰러져 잠들 것이다. 그 거짓말에서 시작된 많은 것들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온전히 나의 것인지 재어볼 틈도 없이 깊고 깊게.
그리고 다음날 아침 눈을 뜨면 나는 이미 그 모든 것을 잊은 뒤일 것이다. 내가 더이상 나를 떠난 이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내가 버린 것들을 떠올리지 않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