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이윽고 모였을 때처럼 스르르 흩어진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이윽고 모였을 때처럼 스르르 흩어진다. 집에 가서 살림을 돌보고 아이를 챙기고 잠을 자야 하니까.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구름보다 당장 눈앞에 닥친 일이 먼저라는 사실에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나는 돌아서는 아빠를 따라 슬금슬금 집으로 향한다.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꼭뒤에 대고 묻는다.

아빠, 정말 불 지를 거예요?

아빠의 뒤통수는 대답이 없다. 못 들었나 싶어 아빠, 하며 가까이 다가서는데 아빠의 등에서 언제부터 올라 있었는지 모를 열기가 확 끼쳐온다. 그제야 나는 더럭 무서워진다. 그 후끈한 열기에서 직관적으로 순수한 악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아빠는 인공 강우제 살포를 막기 위해 불을 지르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냥 어디에든 불을 지르고 싶은 거다. 무언가 불타 내려앉고 철저히 망하는 꼴을 보고 싶은 것뿐이다.

아빠.

왜 자꾸 부르냐.

진짜 불 지를 거냐구요.

지르면 지르지, 그까짓 게 어렵냐.

돌아보는 아빠는 미소를 짓고 있다. 나는 그만 기가 질려 입을 다물고 만다. 차라리 분하거나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면. 아니, 그렇다고 해서 이런다고 엄마가 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말 따위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아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나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냥 아빠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간다. 상처투성이인 채로 웅크린 게딱지 같은 우리의 집으로. 들어오자마자 그냥 이불 위에 벌러덩 누워버린다.

사람은 왜 좌절했을 때 미소 지을까. 그런다고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면서.

잠에 빠져들며, 나는 인공 강우제에 녹아내릴 구름을 상상한다. 모든 것이 꿈속처럼 천천히 느릿느릿 떨어져 내리겠지. 이곳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들의 집과 거지같은 세간살이들이, 내가 숨겨놓은 쓰레기장의 인형들이. 그 낙하의 순간은 짜릿할까. 땅에 부딪히기 직전에 지면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순간의 기분은 어떨까. 그리하여 잠들기 직전, 내가 한 생각은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던데, 라는 것이었다.

 

 

 

16

 

엄마가 돌아오는 첫 주말이다. 나는 고깃집에서 숯불을 조심스럽게 나른다. 반찬을 담은 카트를 요리조리 밀어 좁은 테이블 사이를 지나 소주를 주문한 테이블에 정확히 가져다준다. 엄마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사람처럼. 오늘이 아무 날도 아닌 것처럼. 사실 그렇다. 오늘은 아무 날도 아니다. 그저 앞으로 매주 반복될 날들 중 하나일 뿐이다. 나는 뒷마당에 쪼그려앉아 빨갛게 달아오른 숯불을 내려다본다. 혹시 나는 엄마가 보고 싶었던 걸까. 그럴 나이는 이미 지난 지 오래다. 나는 그냥 있어야 할 것들이 제자리에, 올바르게 있었으면 하는 거다. 그뿐이다. 그러니까 예를 들면, 마음속으로 밤의 우리집을 그렸을 때 떠오르는 모습. 할아버지는 낡은 요 위에 누워 이 빠진 입을 벌린 채 코를 골고, 그 옆에 엎드린 동생의 휴대폰 불빛이 방구석을 환히 밝히고 있다. 아빠는 집에서 가장 밝은 전구 아래 웅크리고 앉아 딱, 딱 소리 내며 발톱을 깎는 중이다. 그리고 엄마가 벽에 기대앉아 말하고 있다. 오늘 일하면서 있었던 일들에 대한 불만, 이웃 여편네들의 험담, 날씨에 관한 불평들. 딱히 누구 들으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입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지만 눈은 그 누구도 쳐다보고 있지 않다는 게 그 증거다. 엄마는 허공과 열정적으로 대화한다. 마치 거기에 자신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투명인간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래, 나는 그 소리가 없어서 불안한 것뿐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배경음악처럼 들으며 자란 그 투덜거림이.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내 발걸음은 평소보다 빠르다. 끼익거리며 올라가는 발판이 오늘따라 느릿한 것 같다. 올라오자마자 나는 춘 여사에게 묻는다.

엄마 왔어요?

춘 여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는다. 어딘지 미묘한 그 미소가 평소와 다르게 느껴진다. 이미 우리집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구나. 하지만 그렇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나는 구름을 박차고 집으로 날듯이 달린다. 손잡이를 잡자마자 문을 열어젖힌다.

엄마는 잠들어 있다.

아빠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동생도 없다. 할아버지만이 항상 누워 있는 곳에 누워 있고, 엄마는 그 옆에서 자고 있다. 베개도 없이 자기 팔을 베고 옆으로 웅크린 채로. 나는 문간에 서서 엄마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여러 가지 이야기, 하지만 막상 하려고 하면 입 밖으로 나오기 어려운 그런 이야기들을 오늘은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엄마는 너무나 곤하게 자고 있다. 이토록 조용하고 편안한 곳에 처음 와본 사람처럼, 꼭 감은 두 눈을 평생 뜨지 않을 사람처럼. 나는 소리 나지 않게 문을 닫은 뒤 엄마의 옆에 앉아 양 무릎을 끌어안는다. 엄마에게서 낯선 냄새가 난다. 그 집에서 사용하는 비누 냄새일 것이다. 입을 다문 채 조용히 잠든 엄마는 내가 기억하는 엄마와 영 딴판이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다.

엄마는 고른 숨을 내쉬고 있다. 조금 야윈 듯한 얼굴이 피곤해 보인다. 전쟁터에서 잠시 돌아와 집에 들른 군인 같다. 방금 생각해낸 이 비유가 나는 마음에 든다. 그 남자의 집에 전쟁처럼 힘들고 더러운 일이 가득했으면 좋겠다. 말 상대도 없는 작은 집안에서 빽빽 울어대는 아기와 함께 끔찍한 시간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엄마가 눈을 뜰 때까지 나는 엄마의 얼굴을 내려다본다.

고개를 약간 떨며 잠에서 깨어난 엄마가 천천히 나와 눈을 마주친다. 나는 어색하게 웃어 보인다. 그러나 엄마는 마주 웃어주지 않는다. 대신 코로 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일은?

끝나고 왔지.

그래.

엄마는 눈을 감은 채 더 말이 없다. 그 모습에서 나는 많은 것을 알아차린다. 아무래도 엄마는 아빠와 다툰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아빠는 집에 없는 것이고 그 다툼을 견디지 못한 동생도 어딘가로 나가버린 거겠지. 왜 이 사실을 이제야 눈치챘을까. 나는 끌어안은 무릎에 턱을 비빈다.

엄마.

왜.

일은 어때?

일이 일이지.

그게 끝이야?

엄마는 대답 없아 돌아누워버린다. 더이상 말하기 싫다는 듯한 태도다. 저런 모습의 엄마는 생전 본 적이 없다. 새집에 대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줄 알았는데. 무슨 말이든 들어주려고 했는데. 엄마의 좁은 등을 바라보며 들리지 않는 대답을 기다리다 나는 와락 울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이 되고 만다. 나는 벌떡 일어난다. 집을 나가면서 등뒤로 느낀다. 엄마가 내가 나가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씨발.

나는 입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린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동생을 발견한다. 동생은 집 뒤쪽 벽에 기대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내가 온 줄 모르는 눈치다. 나는 동생을 걷어찬다. 동생이 억 소리 내며 나동그라진다.

누나 벌써 왔어?

뭘 벌써야, 일 끝나고 왔는데.

엄마 뭐 해?

자던데.

나는 동생 옆에 쪼그려앉는다.

야. 엄마 아빠 싸웠냐?

어엉.

왜?

몰라. 그냥 엄마 오자마자 싸우던데.

뭐 갖고 싸우든?

모른다니까. 방송 보느라 안 들었어.

아 쓸모없는 새끼 진짜. 나는 동생을 다시 한번 세게 찬다. 동생이 반대쪽으로 힘없이 쓰러지는 바람에 휴대폰이 바닥에 구른다. 저놈의 휴대폰을 가져다주는 게 아니었는데. 갑자기 뒷목에 열이 확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나는 동생보다 빨리 휴대폰을 집어든다.

아! 안 돼, 줘!

너 이거 너무 많이 봐. 압수야.

아! 뭐 하냐고! 내놔!

동생이 소리치지만 어림없다. 절대로 돌려주지 않을 거니까. 구름 밑으로 집어던져버려야지, 산산조각나 다시는 찾을 수 없도록. 그런 생각을 하며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는데 동생이 와락 달려든다. 다음 순간 팔목이 따끔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며 물러선다. 씨익씨익 거친 숨을 내쉬는 동생이 입가를 문지른다. 팔목을 들어 살펴보니 동그란 이빨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다. 문 건가 나를. 저놈이 나를 깨문 건가.

내놔! 내놓으라고!

얼굴이 시뻘게진 동생이 외친다. 물렸다는 사실보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미친 사람 같은 악다구니에 나는 좀 당황하고 만다.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동생이 다시 한번 달려든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이번에는 내가 뒤로 나동그라진다. 손에서 빠져나가 멀리 떨어진 휴대폰을 동생이 전속력으로 달려가 주워 든다. 잠시 비틀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줄행랑친다. 쫓아갈 기운도 없다.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나는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버린다.

언제 저렇게 컸나, 제 누나를 깨물다니. 내가 저를 어떻게 키웠는데. 말 그대로 업어 키웠다. 물론 돈도 없는 집구석에서 애를 낳다니 개같고 좆같다고 염불을 실컷 외긴 했지만, 어쨌든 내가 없었으면 저 녀석은 핏덩이였을 때 진작 죽었을 것이다. 때마다 입에 젖병을 물리고 엉덩이를 닦아준 게 누군데 저게 나를 깨물어. 나는 물린 팔목을 다른 쪽 손으로 붙잡고 분한 숨을 내쉰다. 그러나 한참 씩씩대고 나자, 내 마음은 서서히 다른 쪽으로 기울기 시작한다. 그래, 뺏긴 걸 되찾는 데는 깨무는 게 최고지. 이빨은 그러라고 있는 거다. 밥 처먹을 때만 쓰는 게 아니다.

새까만 하늘에 드문드문 별이 보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뜬다. 이따 집에서 만나면 동생을 두들겨패야 할까, 아니면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야 할까. 모르겠다. 아마 나는 둘 다 하지 않을 것이다.

 

 

17

 

고깃집 뒤편에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다.

남은 숯불의 잔불을 쬐러 모이던 무리 중 하나였는데, 다른 고양이들이 이곳을 떠나고 나서도 남아 있는다 싶더니 기어이 낳은 것이다, 세 마리의 새끼를. 나는 사장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마련해준다. 고기가 들어 있던 스티로폼 박스를 잘라 안에다 신문지를 깔았을 뿐이지만. 제집인 줄 어떻게 알았는지 요리조리 드나들기에 기분이 좋았다. 삐약삐약대는 새끼들을 돌보느라 수척해진 어미 고양이에게 비계 붙은 고기 조각을 챙겨주곤 했는데, 어느 날 어미와 새끼 두 마리가 사라졌다. 떠난 것인지 해코지를 당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아무튼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가장 약하고 작은 놈 한 마리만 스티로폼 집 안에 남아 빽빽 울고 있다는 사실을, 주방 이모가 내게 알려줬다. 주방 이모와 함께 뒤편으로 가서 스티로폼 집 뚜껑을 들춰보니 정말로 그렇다. 검은색과 흰색이 보기 좋게 섞인, 그야말로 주먹만한 털 뭉치. 내가 무심코 손을 뻗자 이모가 만류한다.

함부로 만지지 마라. 손 탄다.

손을 타면 어떻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일단 잽싸게 손을 거둔다. 이모는 혀를 쯧 차고는 자리를 뜬다. 혼자 남은 나는 어찌할 줄 몰라 털 뭉치를 들여다보다, 이모의 뒤를 따른다. 일단 일을 해야 하니까. 그러나 고기를 나르면서도, 불판을 갈면서도 머릿속엔 검고 흰 털 뭉치가 아른거린다. 데려갔을까. 지금쯤 어미가 나타났을까. 어떻게 너를 두고 가겠냐며 야옹야옹 울고는 한입에 물어 갔을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다 스티로폼 상자의 뚜껑을 들춰보았는데 털 뭉치가 그대로 있어서 나는 안심한다. 캬악캬악 울며 발톱을 드러내는 털 뭉치를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만진다. 손끝에 닿은 보드라운 목덜미가 따뜻하다못해 뜨겁다. 이 작은 것이 이렇게나 열을 내는구나. 저도 살아 있다고.

아이고, 기어이 만졌구나.

언제 나타났는지 주방 이모가 등뒤에 서 있다.

만지면 왜 안 돼요?

사람 냄새가 배면 어미가 안 데려간다니까.

냄새가 벌써 배요? 저 진짜 잠깐 만졌는데.

잠깐이고 자시고 아무튼 만지면 그렇다니까. 너 이제 큰일났다.

왜요?

저거 굶어죽으면 네 잘못이니까.

이모가 빙글빙글 웃는다. 놀리는 거라는 생각은 들지만, 나는 그래도 탐탁잖은 마음으로 고양이를 내려다본다. 이제 보니 고양이의 한쪽 얼굴에 눈곱인지 침인지 모를 끈적한 액체가 흥건하다. 그냥 두면 스스로는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모양새다.

결국 퇴근하는 길, 발판 쪽으로 걷던 나는 돌연 발길을 돌려 고깃집으로 되돌아간다. 스티로폼 박스를 통째로 집어들어 품에 안는다. 상자 안에서 고양이가 미약하게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진다. 뭘 어쩌겠다는 생각도 없다. 상자를 꽉 끌어안은 채 발판을 타고 올라가면서도 혼란스럽다. 나는 이 고양이를 어쩌고 싶은 걸까. 키우고 싶은 걸까. 집안에 가둬놓고 음식과 물을 먹이면서 나만을 위해 애교 부리는 생명체로 살아가게 하기, 그러니까 땅 사람들이 하는 그런 일들을 이 고양이에게 하고 싶은 걸까. 집 앞에 도착할 때까지도 나는 마음을 정하지 못한다. 그러다 문 앞에서 무심코 스티로폼 박스 뚜껑을 열어본 것이 잘못이다. 그냥 조금, 아주 조금만 열어서 살펴보려던 것뿐이었는데. 살짝 열린 틈으로 검고 흰 덩어리가 번개같이 튀어나간다. 너무나 깜짝 놀란 탓에, 그 서슬에 손등을 길게 긁힌 것은 신경쓰지도 못한다. 어어 할 새도 없이 털 뭉치가 바닥에 착 내려서더니 무작정 아무데로나 내달리기 시작한다.

야! 거기 서!

나는 소리치며 고양이를 따라 뛴다. 고양이는 정신없이 달린다. 골목 어귀 앞 쓰레기 더미에 숨는가 싶더니 빙글 돌아 다시 도망치기 시작하고, 막다른 길에 다다르더니 날쌔게 벽을 타고 오른다. 저렇게 작은 몸 어디에 그런 힘이 숨어 있는지, 뛰면서도 정신이 하나도 없다. 골목에 발소리를 우당탕탕 울리며 나와 고양이는 쫓고 쫓긴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저 멀리 보이던 쓰레기장이 순식간에 코앞으로 다가온다. 숨을 곳이 많은 저기에 들어가면 끝장이다, 그렇게 생각한 나는 죽을힘을 다해 속도를 높인다. 고양이 역시 지지 않는다. 깨진 아이스박스 뚜껑을 밟고 점프, 그대로 버려진 이불 더미 속으로 뛰어들더니 반대편에서 쏙 튀어나온다. 야! 외치는 소리에는 물론 아랑곳 않는다. 얼룩덜룩한 이민 가방과 플라스틱 들통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앞으로, 그저 앞으로 전진하는 고양이.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허공에 자꾸만 헛손질을 해댄다.

그러다가 별안간, 우리는 구름의 끝에 다다른다.

고양이는 우둘투둘한 구름 끄트머리에 선 채로 고개만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이제 이 술래잡기를 끝낼 때가 왔다. 나는 악당처럼 낄낄 웃으며 고양이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간다. 요 녀석아, 이제 못 도망가겠지. 진물에 젖은 고양이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다. 깨끗한 한쪽 눈이 내 눈을 똑바로 올려다보고 있다. 나는 천천히 거리를 좁힌다.

그때 고양이는 산뜻하게 선택한다. 뛰기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마치 이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점프하려는 것처럼 고양이는 뛴다. 울음소리 한번 내지 않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눈에는 그 모든 과정이 슬로우 모션처럼 잔상을 남기며 느릿느릿 흘러간다. 허공에 호를 그린 주먹만한 검고 흰 고양이. 너무 작고 가벼워서 꼭 날아간 것 같다. 추락했다기보단 있었던 곳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나는 멍하니 서 있다가, 내뻗고 있었던 손을 천천히 거둬들인다. 아래를 내려다볼 용기는 없다. 목덜미에 진땀이 배어 있다.

다음날, 다음날의 다음날까지 나는 그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18

 

원과 나는 인공 강우제가 뿌려질 미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집에 할아버지 있는데 어떡하냐.

야, 우리도 할머니 있어.

춘 여사는 그래도 건강하잖아.

나는 집에 누워 있는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할아버지는 아마 구름이 모두 녹아내리는 그 순간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누운 채로 낡아빠진 이불과 함께 추락하겠지.

미리 이사할 시간은 주려나.

줘도, 어딜 가냐.

원은 담뱃불을 발로 비벼 끄고는 곧바로 두번째 담배를 꺼내 문다. 강한 바람 때문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나는 양손을 동그랗게 모아 원의 담뱃불을 가려준다.

갈 데를 마련해주겠다고 하던데.

넌 그 말을 믿냐. 땅 사람들도 집 없어서 난린데.

그럼 그냥 아무데나 풀어놔 우릴?

말하고 나서야 풀어놓는다는 표현은 동물에게나 쓰는 것임을 상기한다. 원은 얼굴을 찡그리고 담배 연기를 뱉는다. 맵싸한 연기가 바람에 훅 쓸려 간다.

그 사람들이 우릴 신경이나 쓰겠냐. 신경쓸 게 얼마나 많은데.

뭘 신경쓰는데?

돈 벌고 애 키우는 거.

우리랑 똑같네 뭐.

나는 볼멘소리로 말한다. 원은 미묘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 사람들이랑 우리랑 같냐.

뭐가 다른데?

다르지. 달라도 한참 다르지. 어른들은 중요한 걸 놓치고 있어.

뭔 어른들?

모르냐. 강우제 뿌리지 말라고 데모하려고 하는 거. 거기 너네 아빠도 있는데.

뭐? 우리 아빠?

야, 너네 아빠가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어른들 설득하는 중이야. 같이 데모하자고.

처음 듣는 소리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치켜뜬다. 갑자기 지난번 발판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한데 뭉친 사람들 사이로 물결처럼 퍼져나가던 웅성거림,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빠의 등판에서 느꼈던 이상한 열기도.

우리 아빠가 데모를 하자고 말하고 다닌다고?

어어. 몰랐냐.

몰랐는데.

원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것처럼 담배 끝을 잘근잘근 씹는다. 잠시 동안의 침묵. 그러다가 불쑥 말한다.

내 생각에 이건 데모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냐.

그럼?

땅 사람들이 이 구름 때문에 손해 보는 게 얼만지 아냐. 이게 있어서 땅값이 엄청 떨어졌다고. 조금만 나가면 지하철역도 있고 대학교도 있고 그렇잖아. 여기 충분히 비쌀 만한 곳이야. 구름만 없으면.

야, 우리가 무슨 세균이냐.

땅 사람들이 보기엔 세균이나 다름없지. 얼마나 눈엣가시겠어. 살균제든 인공 강우제든 뿌려서 없애고 싶은 게 당연해.

나는 황당해져서 원의 얼굴을 바라본다. 얘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하지만 원은 진지해 보인다. 아니, 진지하다기보단 차라리 평온한 듯도 하다. 원의 목소리에는 비아냥거림도 패배감도 분노도 없다. 그저 정직한 사실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 우린 어디로 가. 다 없애면 우리는.

그게 그 사람들 알 바겠냐.

원이 나른하게 대꾸한다. 그 순간, 나는 내가 황당한 게 아니라 화가 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까부터 원은 자꾸만 땅 사람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다. 마치 자기가 땅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언젠가 인공 강우제는 뿌려지게 돼 있어. 데모를 할 게 아니라 살 길을 찾아야……

아 좀 닥쳐.

뭐라고?

닥치라고.

나는 벌떡 일어선다. 서슬에 놀란 원이 새로 꺼낸 담배를 떨어뜨린다. 그것을 원이 미처 줍기도 전에 나는 돌아서서 성큼성큼 자리를 뜬다. 뒤에서 부르지만 돌아보지 않는다. 멍청이. 바보. 비겁한 녀석. 대체 자기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구름에서 나고 자란 주제에. 인공 강우제가 뿌려지면 꼼짝없이 집이고 뭐고 다 잃을 거면서. 그렇게 말하면 땅 사람이 될 수 있는 줄 아나보지. 멍청한 놈, 밸도 없는 놈. 나는 속으로 마구 욕을 내뱉는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쾅 닫은 나는 자리에 벌러덩 누워버린다. 뭔가 더러운 것을 제대로 씹은 듯 입속부터 시작된 불쾌감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 같다. 단지 원이 비겁해서만은 아니다. 그 비겁이 정말 쓸모없고 무용해서다. 그저 강자의 편에 서는 것으로 강자의 입장을 쉽게 탈취하려는 비겁자. 그런다고 뭘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할 거면서. 그걸 스스로도 알고 있을 것이다. 원처럼 똑똑한 녀석이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나는 몸을 웅크리고 끙 소리를 낸다.

게다가 데모는 또 무슨 소리일까. 아빠가 데모를 한다니. 물론 나는 데모란 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모른다. 화가 난 사람들이 모여 무언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모임, 정도로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예전에 출근길에 데모 행렬을 마주친 적이 한 번 있다. 머리에 무어라 쓰인 빨간 띠를 두르고 팻말을 안은 사람들이 줄지어 걸어가는 모습을. 팻말의 글귀를 자세히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걸 든 남자의 얼굴만은 똑똑히 기억한다. 손아귀에 넣고 구긴 비닐봉지 같은 얼굴, 그저 피곤함 외에는 아무런 감정이 없는 표정. 자신이 왜 이런 걸 들고 이 길을 걸어가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는지 그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남자의 얼굴에 아빠의 얼굴을 붙여본다. 내가 땅 사람들이라면 어떨까. 그런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그런 상상을 하다 나는 더러운 베개에 얼굴을 파묻는다. 방금 한 생각은 너무 비겁했다는 걸 깨달아서다. 이래선 원이랑 다를 게 뭐람.

하지만 비겁한 것이 나쁜가.

나쁜 쪽을 꼽자면 이쪽이 아니다. 비겁한 쪽보다 비겁하게 만드는 쪽이 나쁘다. 멀쩡히 살아가는 사람들보단 그들의 목숨을 위협하고 집을 뺏으려는 사람들이 나쁘다. 그 당연한 사실이 왜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는 걸까. 왜 문제는 우리 쪽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옆에서 할아버지가 기나긴 기침 소리를 흘리며 돌아눕는다. 나는 할아버지의 잠든 얼굴을 바라본다. 기운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쭈글쭈글한 얼굴. 저것은 나쁜가, 나쁘지 않은가. 나는 영원히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순간, 공포가 느릿느릿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는 어둠 속에서 눈을 깜박인다.

 

 

19

 

아빠와 함께 할아버지를 병원에 데려가는 날이다. 발판 앞에서 나는 할아버지를 아빠의 몸에 묶는 것을 돕는다. 두꺼운 천으로 된 넓은 끈을 두 사람의 허리에 두르고 매듭을 세게 조인다. 영차, 아빠가 시험 삼아 움직여보자 할아버지는 가죽 자루처럼 힘없이 딸려간다. 그렇게 묶어두고 내가 먼저 구름을 내려간다. 이윽고 빈 발판이 올라갔다가 다시 아빠와 할아버지를 태우고 내려온다. 땅에 발을 딛자마자 할아버지는 발작하듯 밭은기침을 내뱉는다. 나와 아빠는 자리에 선 채로 기다려준다. 할아버지가 가래를 뱉어낼 때까지. 이윽고 퍽 소리와 함께 바닥에 떨어진 가래 덩어리는 새까맣다. 아빠가 발로 그것을 짓뭉개서 없애버린다.

아빠가 택시비를 지불하는 동안 나는 할아버지를 부축해 택시에서 내리게 한다. 택시 기사는 불쾌한 표정으로 떠난다. 기사는 운전하는 내내 뒷좌석에서 기침을 하는 할아버지를 룸미러로 노려보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우리에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아마도 동정이나 두려움, 둘 중 하나 때문이었을 것이다. 불쌍한 사람과 무서운 사람 중 어느 쪽이 되고 싶은지는 자명하다. 그래서 우리는 택시에 탄 이래로 줄곧 미간에 주름을 잡은 채 한마디라도 꺼낸다면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병원은 깨끗하고 따뜻하다. 환하게 불이 켜진 로비를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이들이 모두 아프거나 아픈 사람들의 보호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간이 휠체어에 앉아 링거 줄을 끌고 다니는 이 사람도, 환자복 차림으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는 저 사람도 우리에 비하면 아주 괜찮아 보이니까. 아빠가 할아버지를 의자에 앉히고 나면 나는 접수 번호표를 손에 꼭 쥔 채 괜히 병원 로비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로비 한쪽에는 작은 카페가 있다. 예쁜 쇼케이스에 빵과 케이크가 들어 있고 그 앞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의 표정은 평온하다. 나는 옆으로 지나가며 괜히 그들을 힐끔거린다. 이런 것이 왜 병원에 있는 걸까. 병이라는 것은 이렇게 예쁘고 깔끔하지 않은데. 모두가 불행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순간 카페에 앉은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꼭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