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막 지나간 자리, 오렌지빛 저녁 하늘과 끝없이 흐르는 구름을 보면서 이 편지를 씁니다. 열어젖힌 창으로 올해 들어 처음으로 느끼는 가을바람이 불어옵니다. 서재에는 서쪽, 북쪽, 남쪽으로 창이 있어서, 마음에 드는 노을을 만났을 땐 불을 끄고 앉아서 오렌지빛 속으로 빨려들어갈 듯 일을 합니다. 저녁놀 한가운데 잠겨 있노라면 나 자신이 붉은빛의 일부가 되어 사라질 듯한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나의 고향은 저녁놀이라는 이름의 별일지도 모릅니다.
신미나씨로부터 받은 첫 편지, 마치 해질녘의 노을 같았습니다.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하지만 그 안에 나도 살고 있는 세계.
한 번 읽었을 때는 혼란스러웠고, 그저 어머니는 어떤 분이었는지 상상해보았습니다. 의지적으로 상상했다기보다는 편지에 적힌, 말이라는 통로를 따라가다보니 어느샌가 머릿속에 신미나씨의 어머니일 것만 같은 그림자가 들어와, 열심히 응시하고 귀를 기울이게 된달까. 그림자였지만, 저물녘의 빛과도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잠시 시일을 두었다가 두번째로 편지를 읽었는데, 신미나씨의 영적 체험과 그 후의 문장이 내 몸 안으로 쑥 들어왔습니다. 편지를 교환하기로 결정했을 때 ‘글을 써서 살아가는 우리니까 글을 씀으로써 말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있겠지요’라고 신미나씨에게 보냈던 메시지가 정말 실감났습니다.
“나는 인간을 다시 살아내기 시작한 요괴다”라는 말에 나는 아주 유쾌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인간으로부터 빠져나오는 에스컬레이터에 탄다면, 인간으로 들어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있는 신미나씨와 스치고, 그 순간을 느낄 수 있어서 우리가 말을 섞는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스침은 아주 짧은 순간이고 그대로 서로 멀어져간다고 생각했지만, 에스컬레이터가 움직이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 구역에서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는 거예요. 아마 반대의 흐름을 살아왔지만,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 할까요?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난의 잎사귀에 쌓인 먼지 닦기를 게을리하고 있는 건 어떻게 알았을까요! 요괴의 천리안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 되겠군요.
나는 첫번째 편지를 신미나씨와 주고받을 때 ‘처음에는 일단 상대를 엿보기’ 같은 걸 안 하고 싶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말의 핵심을 찌르자, 그렇게 작정하고 썼습니다. 신미나씨도 거기에 응해주신 것이 감명깊었습니다.
이번에는 신미나씨와의 만남까지를 좀 돌아보려고 합니다. 그것은 소설만 썼던 내가 시에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이기도 했으니까요.
지난번 편지에서도 이야기했던 장편소설 『사람이 아님』을 2024년 봄에 탈고한 뒤에, 내 안에서 소설을 쓰고 싶은 기분이 사라졌습니다. 쓰기 전부터 이 작품을 완성하면 소설을 쓸 수 없어도 좋겠다, 마지막 소설이어도 상관없다, 그런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인간’을 떠나고 싶은 기분은, 언어를 놓아버리는 형식으로 표현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을 마치자 문학과는 전혀 관계없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좋아하는 슈퍼마켓에서 일을 하는 것도 진지하게 검토했습니다. 슈퍼마켓에서 나를 채용해줄지는 별도의 문제입니다만.
실제로 소설을 쓰겠다는 욕구가 없어지고 보니, 나 자신이 표백된 것 같은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좋아하는 소설을 읽기만 하는 인간으로 살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부분에서 살짝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읽어? 소설로부터 완전히 떠나는 게 아니야? 언어가 아직도 필요한 거야?
역시 소설에 미련이 있나 싶어서 마음을 고쳐먹고 글을 써보려고 했지만 강렬한 거부감이 일어서 쓸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을 거부하고 있는지 묻는다면 ‘인간’을 거부하는 것인데, 여기서 인간이란 소설을 구조적으로 지탱하는 ‘이야기(物語)’라는 사실을 알아챘습니다. 이야기란, 인과율에 따라 전개되는 스토리입니다. 흔한 예로는 흉악한 범죄에 이른 것은 빈곤 때문이라든가, 자신감이 없고 열등감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던 사람이 민족적 긍지에 눈을 떠서 광명을 느끼게 되었다든가 하는, 단선적인 인과관계로 만들어진 서사입니다. 나이지리아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가 말하는 ‘싱글 스토리’입니다.
내가 느끼는 개개인의 삶은 여러 개의 복잡한 흐름이 얽혀서 만들어지는 것인데, 세상의 인간상은 단순화된 서사로 설명될 뿐이어서 그것을 ‘인간’이라고 본다면, 내가 생각하는 인간은 그 ‘인간’이 아니라고 거부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나 자신은 그런 이야기의 지배력에 거스르듯 소설을 써왔다고 생각하지만, 서사를 거스르는 소설도 반복해가는 동안 서사화, 정형화되어버리는 것이죠. 내가 글을 쓰면 아무리 버둥거려봤자 ‘호시노 도모유키’다운 형태의 소설이 됩니다. 스스로 의식하지 못해도 독자가 기대하는 ‘호시노 도모유키’ 상에 묶여 있는 부분도 있을지 모릅니다.
SNS에서도 뉴스에서도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단순화된 인과관계에 의존하는 이야기가 늘어나고 있고, 말을 하는 순간 모든 것이 단순한 이야기로 타락해버리며, 내가 쓴 소설도 다른 방향에서 그 정형화에 조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어진 것입니다.
물론, 나는 이야기 자체를 부정할 생각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야기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논리적인 사고로 원인과 결과를 생각하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통속적이거나 로맨틱한 이야기에 맞추어 인과관계를 이해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납득의 감정 밑바닥에는 ‘믿는다’고 하는, 몸을 의탁하는 행위가 깃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미나씨의 편지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저는 감정이 세계를 인식하는 강력한 관문이라 믿습니다. 집회에서 울려퍼지는 노래 한 소절과 깃발의 무게처럼, 몸에 스며든 감각이 그 관문을 열어젖힙니다. 이성으로는 닿지 않는 틈에 권력은 스며듭니다. 사람들은 그 틈에서 자신의 삶을 설명할 문맥을 찾기도 하지요. 그것이 불확실한 삶을 버티게 하는 확신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확신은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스스로 형이상학적 권위를 쥔 것처럼 믿게 만듭니다. 이런 확신은 일상의 작은 틈에서도 모습을 드러냅니다.
정말 그것이야말로, ‘이야기’를 ‘믿는’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신미나씨도 아시는 것처럼 나는 축구를 정말 좋아합니다. 코로나의 소용돌이 속에서 누구나가 고립감을 안고 살았을 테지만, 내가 그 고독을 치유하기 위해 의존했던 것이 여자축구를 보러 가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응원하는 팀은 ‘우라와 레드 레이디스(Urawa Reds Ladies)’라는, 열광적인 팬이 전체주의적인 응원을 하는 것으로 유명한 클럽입니다. 경기를 혼자 관람하는 나는 그들이 버거워서 거리를 두었지만, 코로나 시절에는 점차 ‘우리’라는 일체감을 가지게 되었고 나도 소소한 응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매번 시합을 보러 갈 때마다, 레드 레이디스라는 서사를 깊이 공유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시합에서 이겨 다 같이 승리의 노래를 합창할 때면, 마음이 격렬하게 떨려오면서 자연스럽게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확신’과 함께 목청 높여 노래하는 것입니다. “Uraaawa Reds!”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나는 이것을 다가올 전체주의에 대한 면역력을 강화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감정의 좁은 문을 강렬한 힘으로 열어젖히며 전체주의가 유혹해 들어올 때, 면역이 없다면 완전히 습격당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체감, 자신이 모두 안에 녹아들어 완전히 그 일부가 되는 일의 환희와 전능감은 픽션이라고 정리해두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소설을 쓰는 사람으로서,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그러한 픽션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잊지 말자고, 나 자신을 이해시켰습니다.
올해, 나는 그런 팬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경기를 같이 보러 가는 친구가 생긴 후 열성적인 서포터가 얼마나 ‘확신’을 근거로 타인을 배제하는지 몇 번이나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이 그런 팬들과 일체감을 느꼈다는 점에도 실망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야기를 공유함으로써 고독이라는 독을 중화시키고, 기쁨에 넘쳤던 사실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것 없이는 인간은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나는 어떤 입장을 표방하는 데모나 집회에서도 이러한 서사의 공유와 일체감의 폭발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있을 곳이라 느끼는 정도라면 괜찮지만, 그곳에 아이덴티티를 두어버리면 확신이라는 폭력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아무리 공감이 필요하더라도 그것이 픽션이기도 하다는 생각의 잠금장치를 걸어두고 싶습니다. 나는 저항이나 데모가 눈앞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저지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그것과 나를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곤혹한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2024년 광주에서 열린 제5회 아시아문학 페스티벌에서 발표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내 소설에 일관되게 흐르는 테마는 젠더 문제입니다. 나는 내가 놓인 입장을 근거로, 소설을 통해 남성 비판을 전개해왔습니다. 남성을 어떻게 하면 남성이라는 사실로부터 분리할 수 있을까 하는 시뮬레이션 같은 것을 다양하게 시도했습니다. 여러 가지 형태로 거세 모티브를 쓰기도 했습니다. 나 자신이 남성이라는 사실이 괴로웠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내가 ‘헤테로 섹슈얼의 시스젠더 남성’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다른 젠더나 섹슈얼리티에 눈뜨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남성으로 보증받은 권력을 포기할 가능성만을 생각해왔습니다.
몇 년 전에 숀 페이의 『트랜스젠더 이슈』라는 책이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고, 번역자인 다카이 유토리(高井ゆと里) 씨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나는 나의 밑바닥이 빠져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트랜스젠더란, 태어났을 때 주어진 성별과 자신이 생각하는 성별이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성이 주어졌지만 스스로는 여성으로 느끼는 ‘트랜스 여성’이거나, 그 반대인 ‘트랜스 남성’이거나. 하지만 스스로 인정하는 성별을 남성/여성으로 나눌 수 없는 사람, 즉 ‘논바이너리’도 트랜스젠더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자신을 남성이라고 생각해왔는가, 의문이 생겼습니다.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지는 않았고, 동성에게 끌리는 일도 없으니 헤테로 남성이라고 정해두었지만, 정말로 그런가? ‘헤테로 시스 남성’이라면, 왜 그렇게 반복적으로 거세 모티브를 써야만 했는가? 나는 남성으로부터 하차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원래 남성의 범주에 속하지 않으면서 남성으로 분류되어 살아온 것 자체에 무리함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새롭게 알게 된 정의에 의하면, 나는 헤테로 시스 남성이 아니라 논바이너리라는 범주에 들어갈 것 같았습니다.
나는 성별을 잃었습니다. 아니, 이 어법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섹슈얼 아이덴티티를 잃었다고 해야 옳겠지요.
지금까지 육십 년 가까운 인생을 싫다, 힘들다, 그만두고 싶다, 생각하면서도 내가 헤테로 시스 남성이라고 여기며 그 입장을 반쯤 받아들였고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남성이 받는 우월적 대우를 향유해왔으면서, 이제 와서 사실은 헤테로 시스 남성이 아니었다니. 지금까지의 인생 자체가 환상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것은 이미 전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배신당한 기분조차 들었습니다. 좀더 빨리 내가 논바이너리라고 자각했다면, 영문 모를 위화감에 괴로울 일도 없었을 텐데.
나는 어떻게 살면 좋을지, 나를 어떻게 안정시키면 좋을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논바이너리란 본디 분류라는 행위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논바이너리라는 분류’ 자체가 모순입니다. 나는 자신이 논바이너리라고 표명할 수 없었습니다. 성별 문제를 생각하면, 나는 그 무엇도 아닌 것입니다.
사실은 섹슈얼 아이덴티티가 없다는 방식을 긍정적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행방이며, 오랜 고뇌를 지우는 것입니다. 하지만 헤테로 시스 남성으로 육십 년 가까이 살아왔다는 사실이 무겁게 마음을 짓눌렀습니다. 그 역사에 무책임하다는 듯, 이제부터 논바이너리입니다, 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돌이킬 수 없겠다는 실망감이 반복적으로 이어졌습니다. 그것이 나를 염세적으로 몰아가고, 사람과 관계 맺는 일, 즉 표현하고 싶다는 욕구의 저하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외견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고 대체로 이도 저도 아닌 모습으로 있었지만 섹슈얼 아이덴티티가 사라지자 처음으로 헤테로 시스 남성으로 보이는 모습에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삭발했습니다. 머리카락을 남김없이 밀고, 체모의 일부도 깎았습니다. 털이, 섹슈얼 아이덴티티의 표상인 것 같았습니다. 승려가 될 때 삭발하는 것은 이래서겠구나, 납득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그간의 경위와 사건을 쓰게 되면 아무래도 서사로서 묶이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는 해방감을 느끼는 동시에 자신을 소비한 듯한 피곤함에서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신미나와 싱고의 교차일기』 6월 20일자에서 신미나씨는 “말을 지나치게 많이 하고 나면 수치심이 먼저 찾아왔다. 시가 될 것을 이미 말로 소진해버렸다는 자책 때문이다”라고 썼는데, 나는 말을 하든 글을 쓰든, 설명을 했을 때 비슷한 후회에 내몰립니다. 이런 것은 소설로 써야 하는데, 곧잘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소설을 쓸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그런 사막에 스며드는 물 같은 상태일 때, 시가 먼저 손 내밀며 찾아온 것입니다.
시를 모르는 것은 나의 오랜 콤플렉스였습니다. 소설을 쓰지만 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시에는 다가가지 않도록, 관계하지 않도록,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왔습니다.
2024년 5월, 시인 노무라 기와오(野村喜和夫) 씨가 “소설도 탈고했으니 대담을 해볼까요?”라며 토크 이벤트에 초대해주었습니다. 그는 일본 현대시를 대표하는 시인의 한 사람으로, 2002년 원주에서 열린 한일문학심포지엄에 함께 참여했던 적이 있습니다.
시를 알지 못하는 것이 콤플렉스인 나에게 대시인이 말을 걸어오니, 나는 도망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런데 노무라 씨가 말하길, 한일문학심포지엄 자리에서 내가 ‘어떤 소설에도, 그것이 빼어나다면 반드시 그 핵심에 시가 있다, 시가 없다면 그저 읽을거리에 불과하다’라고 발언했다면서, 그러니 소설과 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시를 모르면서도 소설의 핵심에는 분명히 시가 있다고 생각했고 내 작품에도 시가 있다고 확신했었습니다. 그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더군요.
그래서 이것은 오히려 찬스다, 시의 대가에게 시에 대해 꼬치꼬치 물어봐야지, 나는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노무라 씨와의 토크 이벤트에 임했습니다. 그리고 행사가 끝난 뒤, 시에 대한 나의 관심에 불이 붙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시는 언제나 먼저 찾아와 손 내밀어줍니다. 노무라 씨와의 토크 이벤트에 왔던 요쓰모토 야스히로(四元康祐)라는, 역시 일본 현대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인이 “하와이의 시인이 시를 쓰는 워크숍을 하니까 오라”고 초대해주었습니다. 요쓰모토 씨는 신미나 씨도 같이했던 팬데믹 시대의 연시(連詩), 『달빛이 고래의 등을 씻을 때』(한국어판 제목은 『그 순간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에 참여한 시인입니다.
이때 나는 아직 시를 쓰지 못했습니다. 요쓰모토 씨가 “그러면 연시를 합시다. 혼자서 쓰면 자기가 자기한테 불합격 통보를 계속하는 바람에 영원히 쓸 수 없지만, 연시라면 판단은 다른 사람의 몫이니까”라며 다시 자리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광주의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나의 젠더 이야기를 하니,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 아주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주었습니다. 시인 김현, 이소연, 안희연, 김은지, 소설가 이지, 예소연, 이서수, 장류진…… 나의 이 위기를 받아들여준 것은, 가족 이외에는 처음 있는 경험이었고, 문자 그대로 구원받은 듯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 자리에는 신미나씨가 없었습니다. 내가 2025년 3월에 서울에 갔을 때 김현씨, 이소연씨와 만나는 식사 자리에서 신미나씨와 유현아씨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김현씨가 “시는 썼나요?”라고 물었고 아직 못 썼다고 답하자 “이번에 시 파티를 하니까 그때 시를 발표하지 않을래요?”라고 제안해주었습니다.
어째서 시는, 내가 아직 한 편도 완성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시를 쓸 줄도 모르는 단계일 때부터 마치 당연히 쓸 수 있다는 듯이 나를 초대하는 걸까요? 이런 일은 소설에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아마도 소설은 프로 작품으로 인정받는 레벨인지 아닌지를 항상 문제삼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는 그런 것은 훨씬 나중의 일이고, 우선은 써보자, 라고 재촉합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 정도는 쓸 수 있다, 마치 그런 확신이라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신미나씨가 K-BOOK진흥회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라이터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으로 도쿄에 체재중일 때, 한국 시인이 주최하는 시 파티가 열렸죠.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시가 되었다고 확신할 만한 작품은 좀처럼 쓸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나를 구해준 시인들과 함께 시의 장에 들어갈 수 있다는 기쁨을 생각하자, 자연스럽게 시가 써졌습니다.
그때의 시를 여기에 다시 옮겨볼까 합니다. 이 편지 가운데 적어두면, 분명히 이 시가 보다 더 생생하게 싹이 틀 거 같아서요.
호시노 도모유키를 찾습니다
호시노 도모유키는 난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호시노 도모유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나는 호시노 도모유키 밖에 있었고
모두와 함께 호시노 도모유키를 찾고 있었습니다
호시노 도모유키는 어디 있나요?
호시노 도모유키는 누구입니까?
당신인가요?
저 아닌데요
그 사람은 남자인가요? 아니면 여자?
뱀띠? 아니면 뱀주인자리?
사람? 아니면 꽃?
수증기 아니면 그림?
에메랄드그린 아니면 시큼하다?
실마리를 잃고 나는 호시노 도모유키 찾기를 그만두었습니다
모두들 호시노 도모유키를 잊었습니다
그러니까 호시노 도모유키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존재하지 않았으니 발견된 것입니다
한국어로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만든 동그라미 끝자리에
어렴풋이 미소 지으면서
시를 읽고서 흡족한 얼굴로
그것은 더이상 호시노 도모유키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완전히 호시노 도모유키였습니다
― 「행방불명(尋ね人)」
나는 앞에서 모든 말이 단순화된 이야기에 도달할 수밖에 없음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시는 여전히 모르겠습니다만, 시라면 이야기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직감하고 있습니다. 이야기에 말려들어 소진되고 덩그러니 남은 언어. 그것을 정성껏 줍기를 반복하면 시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나의 내면을 아무리 뒤져도, 언어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소설이 되려는 ‘호시노 도모유키’라는 정형화된 이야기의 파편뿐이었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은, 자신의 밖으로 나가는 일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소설을 써도 자신 안에 갇혀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의 바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시를 쓰는 한국 친구들을 떠올렸을 때, 시의 언어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신의 바깥에 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에 쓴 시도 두 사람의 친구를 생각하다가 쓴 것입니다. 제목인 「저녁놀의 씨앗」이라는 말은 오랜 친구로 늘 나의 작품을 번역하고, 이 편지도 번역하고 있으며, 통역도 해주는 김석희의 그림을 보았을 때 떠오른 것입니다. 그녀는 아주 최근에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전업 화가가 되었는데 (우리가 처음 만났던 것도 김석희의 개인전이 열리는 갤러리였네요) 그의 그림은 시의 일종입니다. 김석희의 시를 보고, 나의 머릿속에는 시의 언어가 나타났습니다. 이 씨앗을 시로 펼쳐놓았을 때, 나에게는 저녁 어스름에 잠긴 스페이스 다다에 머무는 신미나씨가 보였습니다.
저녁놀의 씨앗은 예쁜 입방체
라는 걸 알고 있었나요?
손으로 만든 것 같은 검은 씨앗은
까마귀가 부리를 열 듯 모서리를 터트리며 발아하고
투명한 뿌리로 구름을 휘감아 허공을 도배합니다.
언제 천둥이 도착했는지는 몰라요.
해질녘 대기가 씨앗을 삼키자, 그제야
꽃은 피어나는데, 생물도 무기체도 언어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는 거라며
온몸을 내맡기는 일의 상쾌함이란!
살아 있는 일보다, 죽어 있는 일보다 더 끝없이
나 혼자만 저녁놀에 홀렸죠.
저녁놀에 홀린 사람도 홀리지 않은 사람도 그 누구도 없고
그저 청록색 しんご([ɕiŋɡo], 신호등)만 갓 이슬을 머금은 듯 영롱함을 매달고
정적 속에 사람 없이 피어난 저녁놀의 단 꿀이
みな([mina], 모두)에게
쏟아지니
해질녘의 씨앗이 남긴 껍질 문자가 서성거립니다.
― 「저녁놀의 씨앗」
신미나씨가 “호시노 도모유키는 별의 들판에서 친구의 길을 가는 자”로 시작하는 시를 써주었다니, 최고의 답시입니다. 너무 읽고 싶은데 어떡하면 좋을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쓰고 보니 신미나씨의 시 쓰기나 번역 강의를 듣고 싶어 견딜 수가 없습니다. 며칠 전에 신미나씨의 시를 번역하는 시미즈 치사코(清水知佐子) 씨가 번역중인 시를 낭독하는 걸 들었습니다. 기억은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히 원숭이에 대한 시였습니다. 소설로밖에 못 쓸 거라고만 생각했던 이야기가 시로 실현되자, 또 한번 시에 대한 신뢰가 깊어졌습니다.
신미나씨가 시를 쓰게 된 것은 영적 체험도 관계되어 있다고 했지요? 그것은 시 이외의 언어 표현, 혹은 문자 이외의 표현으로 향하지는 않았는지요? 시를 쓰지 않으면 ‘싱고’도 없는 거겠지요?
점점 학생 같은 질문이 되어버려서 이쯤에서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이달 말에는 만날 수 있을까요?
2025년 9월 7일(日)
도쿄에서 호시노 도모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