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목적 없는

글만 쓰면서 지내자면 종일 집에 앉아서 몸 움직일 일이 없어지기 때문에 매일 산책을 합니다. 목적지 없는 산책을 좋아합니다. 걸음이 내키는 대로, 피곤해질 때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몇 년씩이나 집 근처를 산책했더니, 거의 모든 길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드물게 미지의 길로 들어서는 일이 있어서, 그럴 때는 신대륙을 발견한 탐험가의 기분이 됩니다. 언제였는지, 한겨울에 아주 작은 골목길을 발견했는데 그 길은 급한 내리막이었고 경사가 완만해지는 곳까지 내려가보니, 어느 집 정원 양지에 새빨간 부겐빌레아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마치 영원한 여름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북풍을 피할 수 있는 와지였던 것이겠지요.  

그 부겐빌레아 정원을 다시 한번 보고 싶었지만, 길을 찾을 수 없어서 몇 년이 지나도록 가지 못했습니다. 

식물을 좋아하니 정원이나 수풀 속의 초목에 마음이 갑니다. 크고 선명한 분홍색 꽃잎에 안쪽만 노란 꽃술이 있는 꽃을 언제나 멋지게 피워내는 집이 있습니다. 그것이 만데빌라라는 꽃이라는 걸 알게 되었고, 서둘러 꽃집에 가서 사가지고 키워보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만데빌라는 넝쿨을 마음껏 뻗은 뒤가 아니면 꽃을 피우지 않기 때문에 우리집 베란다에서는 도저히 무리였습니다. 그후 나는 그 만데빌라가 피는 집 아주머니를 비밀리에 ‘명인’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오래된 매화나무 가지에 덴드로비움을 착생시켜 키우는 집도 있습니다. 봄이 되어 하얀 매화꽃이 진 뒤, 매화 가지 여기저기에 자라난 난의 뿌리에 대량의 분홍색 꽃이 피는 것입니다. 나는 그곳에 갈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넋을 잃고 쳐다봅니다.  

그 이웃집 할머니는 고양이에다 무려 까마귀를 길들였습니다. 인근 고양이에게 먹이를 줄 뿐 아니라 까마귀까지 부르면 날아옵니다. 할머니가 야단을 치면 까마귀는 문 위에 얌전히 앉아 있습니다. 까마귀에게 친근감이 있는 나는 마음속으로 그 할머니를 ‘사부님’이라 불렀습니다. 

그 두 집을 지나면 나타나는 아담한 집에는 사십 년쯤 전에 유행했던 스포츠카가 서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일했던 할아버지가 그 낡은 스포츠카를 세차하거나 닦거나 비를 피하느라 비닐을 덮거나 하면서 매일 바지런히 살핍니다. 그리고 하루에 한 번 정말 조금, 근처를 드라이브합니다. 엔진에서는 삐걱대는 소리가 납니다. 그 모습은 자신과 함께 세월을 살아온 노견을 산보시키는 할아버지를 연상시킵니다. 

요 몇 년, 그런 집이 조금씩 헐려나가고 있습니다. 가옥을 해체하는 현장에 가보면, 실내의 변색한 벽지나 다다미나 후스마(칸막이 문. 목제 틀 양면에 종이나 천을 발라 미닫이 형태로 둔다. 일본 가옥구조의 특징 중 하나.-옮긴이)가 벗겨지는 것이 눈에 띄곤 합니다. 타인의 삶의 일부였을 터인데, 나의 역사가 파괴되는 것 같은 아픔을 느낍니다. 

해체까지는 아니더라도 비막이 문이 열리는 일 없이, 급속도로 정원이 황폐해져가는 집도 늘어납니다. 나의 본가도, 코로나가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 어머니가 치매로 그룹홈 시설로 옮기고 나서는 그런 상태입니다. 어머니는 일 년 반 전에 뇌경변이 왔고, 지금은 시설에서도 나와 종말기 의료기관에서 여명이라고도 황혼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경지를 살고 있습니다. 세상 나이로 치면 구십 세가 되었지만, 어머니가 그 안에서 살아 있는 시간은 시계로 측정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그냥 때때로 어머니 곁을 지키며 몸을 만지고 옛날 사진을 펼쳐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좋아했던 가수의 영상을 보여드리는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반응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눈을 뜨고 있으면 사진이나 영상을 봅니다. 의사 표현만이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고 느끼는 시간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거리는 늙고 있구나, 느낍니다. 거리가 늙고 있다는 것은 나도 늙고 있다는 것. 기억의 순서는 섞을 수 있지만 세월의 흐름은 뒤바꿀 수 없습니다.  

언제나, 사라지고 싶다고 바라면서도 사라지는 것에 저항하고 싶습니다.  

난초나 까마귀나 바람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평온해지고 싶다는 것과 없었던 존재처럼 여겨진다는 것은, 언어와 별만큼 다른 이야기입니다.  

내가 작은 산에 살고 있었다면, 들판을 산책했을 테지요.  

내가 바닷가에 살고 있었다면, 언제까지고 파도를 듣고 물고기를 바라보았겠지요.  

내가 우주에 살고 있었다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가볍게 떠다니며 평생에 한 번쯤 만났을지 모르는 별의 파편을 찾으려 하지 않고도 찾았을 테지요.  

 

이번 편지에는 우선 긴 침묵 이야기만을 썼습니다. 신미나씨의 세번째 편지를 읽고 무질서가 상기시키는 것들 사이를 떠돌며, 툭하면 나에겐 이미 언어가 필요 없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필요한 말만을 쓸 것이 아니라 목적도 없이 남겨진 말들을 주워보기로 했습니다. 정확히는 남겨진 ‘문장’을 주운 것이지요.  

코로나 기간 동안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단절된 기나긴 날들을 경험하고 나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 공기와 물과 태양과 목적 없는 잡담이라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주제도 결론도 없는 수다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일부를 상대에게 전하거나 상대를 받아들이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는 잡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잡담은 소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소설의 세부에는 시가 흩어져 있으니, 그것이 잡담인지도 모릅니다.  

잡담은 만데빌라처럼 농염한 생명력을 부여해줍니다. 

잡담은 덴드로비움처럼 어디서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잡담에는 이름이 필요할지도 모릅니다.  

잡담을 즐기고 있자면, 인간으로부터 빠져나가 까마귀나 난초나 금목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왕복편지는 전신전령의 잡담입니다.  

 

한여름에 시작했던 이 편지도 이제 겨울을 맞습니다. 슬슬 이 서한집의 제목을 생각할 때가 되어 세 번의 왕복편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시간의 불가사의를 느꼈습니다. 편지를 쓰는 데 걸린 시간은 몇 년이나 되는 느낌인데, 통독하면 겨우 두 시간 정도 걸립니다. 신미나씨와 알게 된 지 아직 일 년도 지나지 않았지만, 나와 신미나씨의 관계는 시간이라는 관점으로 측량할 수 없다고 느낍니다. 이것도 소식을 주고받는 사이에 내 안의 인과관계가 풀어져버린 탓일까요?  

모든 편지를 이전에도 몇 번이나 읽었을 터인데, 지금 한꺼번에 다시 읽으니 또다른 감각으로 다가옵니다. 거기에는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일도 쓰여 있었습니다. ‘아, 나는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아니지,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돼. 모르는 것을 읽고 있을 때의 새로운 풍경이 펼쳐지는, 바람이 통하는 듯한 감각에 몸을 맡기면 되지’라고 고쳐 생각합니다.  

나는 ‘감각’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것 같습니다. ‘감정’이나 ‘사고’가 아닌 ‘감각’. 그것은 머리와 마음 사이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미나씨는 감정이 이해보다 먼저 온다는 사실을 여러 가지 비유를 통해 몇 번이나 말씀하셨죠. 그리고 감정과 이해의 틈에서만 숨을 쉬는 말이 있으며, 그게 시라고 말이죠.  

두번째 편지에 이렇게 쓰셨더군요.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떨림과 흔들림을 붙잡고. 

시는 이해보다 먼저 몸으로 오는 것이니. 

흔들리세요. 

시는 납득할 수 없는 언어가 삶을 흔드는 자리에도 있으니. 

시는 다시 살아가고자 하는 이에게 들리는 작은 ‘부름’과도 같으니. 

 

이해도 납득도 없이 찾아든 ‘부름’이나 ‘깨달을 수 없는 것이 관통하는’ 체험이, 신미나씨를 소설이 아니라 먼저 시로 향하게 한 것이겠지요. 

그 일 자체를 쓴 「생체」라는 시를 세번째 편지에서 읽고, 나의 몸속, 그리고 몸의 표면에도 전율이 지나갔습니다. 회전하는 궤도를 탄 것처럼, 다 읽어도 처음으로 돌아가기에 읽기를 끝낼 수 없었습니다. 우주에서 지구를 보면 나무나 물이나 구름의 움직임이 보이고, 그 틈에 꾸물거리는 생명체들도 보이고, 그중 하나가 인간이며, 말이 날숨처럼 눈에 보이게 이합집산하며 활동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세번째 편지에 쓴 것처럼, 말로 무장해버리는 일은 그만두고 싶어서 절망 속에 있는 나는, 마지막 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습니다.   

 

슬픔은 

부드럽고 얇고 흰 것을 

붕대처럼 들고 서 있다. 

상하지 않게 하려고. 

무엇으로부터? 

무엇으로부터. 

무엇? 

무엇.  

 

사실은 시에 근접하지 않기로 오랫동안 생각했던 것도, 시는 상처 입지 않기 위한 무장처럼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일본의 현대시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다가서서 보니 내가 과잉 경계했다는 걸 알겠습니다만, 이전에는 그 난해함이 뭔가를 감추기 위한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생체」를 반복하여 읽는 동안, 나는 인식을 돌파하기 위해 소설을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우회하듯이 쓰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죠. 

데뷔 직후 몇 년 간의 작품을 다시 읽을 기회가 최근에 있었는데, 지금 보니 그것은 한없이 시에 가까운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세간의 평가는 대부분 ‘읽기 힘들다’ ‘뭘 쓴 것인지 모르겠다’였습니다.  

완전히 의기소침해져 있을 무렵, 그런 작품 중 하나인 『배신 일기』를 절찬해준 것이 한국의 작가, 시인, 평론가들이었습니다. 2000년에 일본의 아오모리에서 있었던 한일문학 심포지엄에서의 일입니다. ‘절찬’ 같은 말을 스스로 하기가 멋쩍습니다만, 그때의 감각은 정말 절찬받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이 차이는, 소설 속에 담겨 있는 시를 받아들이는가 아닌가에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덕분에 나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고, 지금까지 계속 쓸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난해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극복하고 싶어서 읽기 쉽게 쓰려고 분투하는 동안, 나는 소설에 설명 부분을 늘려갔던 것 같습니다.  

나는 문학, 소설이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로 쓰는 것’이라 생각해왔습니다. 말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소설이 아니라 설명문으로 쓰면 되는 것입니다.  

소설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나는 대량으로 읽으며 내 것이 아닌 말을 섭취하고, 대량의 메모를 썼습니다. 그 메모의 대부분은 설명입니다. 등장인물의 성장과정이거나, 상세한 시대 설정이라든가, 주제에 대한 고찰이라든가.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설명하는 문장으로 쓰면 되는 것이니 우선 그렇게 해서 명쾌한 문장을 다 쏟아내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말할 수 없이 감미로운 시간입니다. 때로는 등장인물에 영향을 준 단역 친구, 그 일가의 역사를 적어본다든가, 소설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내가 지금 빠져 있는 음악을 말로 묘사해본다든가, 소설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문장을 길게 쓴다든가 하기도 합니다. 

쥐어짜보아도 설명이 나오지 않게 될 때 소설을 시작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때는 소설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멍하니 있습니다. 잡담이나 산책과 같은 종류의 멍하니 있는 시간. 산만하게, 두서도 없이, 방심한 상태로, 맥락 없는 망상에 잠깁니다. 

갑자기 문장이 찾아옵니다. 그것이 글의 서두라고 생각하면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돌아보면, 근년 들어 메모로 만든 설명 글을 소설에 넣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나에게 있어 이야기의 덫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에게도 ‘싱고’가 필요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소설 속의 시를 놓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상하게도 일 년 반 전에 시를 만나서 시의 세계로 초대받았을 때부터, 나는 혼자서 몰입해 시를 쓰는 경험을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시 워크숍에서 여러 사람과 같이 써본다거나, 신미나씨의 행사에서 만난 친구 시인들을 생각하면서 쓴 시를 읽는다거나, 연시를 쓴다거나. 

며칠 전에는 문학 프리마(플리마켓)라는 대형 이벤트에 가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친구나 지인의 시집을, 마주보고 수다떨면서 이것저것 샀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머릿속에 또하나의 다른 우주를 만들고, 그곳에 현실의 언어를 털어내다 보면 작품이 만들어져갑니다. 외계와의 교섭은 없어집니다. 나에게 있어 시를 읽거나 쓰는 것은, 완전히 역방향으로 펼쳐지는 행위입니다. 언제나 그곳에는 수다와 잡담이 있습니다. 구심적이고 구축적인 설명이 아닙니다.  

미나씨도 아시겠지만, 11월 초에는 ‘시즈오카 연시 모임’에 참가했습니다. 미나씨가 첫 편지에 언급했던 후지산을 품은 시즈오카시에 세 명의 시인(노무라 기와오, 가와구치 하루미, 미즈사와 나오), 래퍼(타마키 로이), 소설가(나), 이렇게 다섯 명이 모여, 3일간 한곳에 틀어박혀 연시를 짓는 기획입니다. 나는 혼자 이 행사에 ‘시 합숙’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5행과 3행의 시를 서로 반복하면서, 한 사람이 열 번의 시쓰기를 담당하여 도합 40연이 되는 연시를 완성합니다. 

노무라 상을 제외하면 모두 첫 대면이었지만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친밀한 신뢰가 생겼고, 서로의 언어를 주워 시를 만들고는, 긴장하면서도 안도하며 다음 사람에게 그것을 넘겨줄 수 있었습니다.  

본인 순서가 아닌 시간은 대체로 수다를 떱니다. 이 잡담이 너무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시나 소설이나 랩 같은 언어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호러영화라든가, 이사라든가, 물이라든가, 이야기는 이리저리 흩어졌지만 마음이 내키는 대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잡담의 충만함으로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게 되었고 시에 대한 마음도 깊어졌으며 어쩐지 팀을 형성하는 듯한 강렬한 일체감이 생겨났습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기분이 사라지고 뇌를 열어 모두가 함께 발화한다는 감각으로 가득찼습니다. 그 결과, 나는 나의 언어가 분명하게 시가 되었다는 감촉을 얻었습니다.  

 그렇지만 ‘비인간’이기도 한 나는, 이 결합하는 듯한 감각이 반쯤 환경의 산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합숙 효과죠.  

언젠가 스노보드 선수의 인터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남녀 선수들이 올림픽 전에 합숙을 위해 설산에 갇히면, 이상하리만치 서로에 대한 친근감이 짙어져서 연애 감정과 구별되지 않을 정도로 밀착하게 된다. 하지만 합숙이 끝나 산에서 내려오면, 친근했던 감각은 마법이 풀린 듯이 사라져 통상적인 인간관계로 돌아온다.’ 조금 경우가 다르기는 합니다만, 인질과 범인이 긴박한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친애의 정을 가지게 된다는 스톡홀름증후군과 비슷한 원리가 작동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반쯤은 환경의 산물이더라도, 우리가 강한 신뢰를 느끼고 서로를 위해 언어를 모아 시를 쓴 것은 사실이며 현실이니까요. 

신미나씨도 코로나가 한창일 때 참가했던 경험이 있으시겠지만, 실제로 얼굴을 마주하고 연시를 쓰는 것은 아름다운 사건입니다. 언젠가 신미나씨와 연시를 쓰는 것은 실현하고 싶은 목하 희망이 되었습니다.  

매일 산책을 하면서 같은 길, 같은 집, 같은 식물을 사랑하고 거기에 있음을 소중히 생각하긴 하지만, 나는 결코 향토애를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태어난 곳은 미국인데 어린 시절에 일본으로 돌아왔기 때문에 미국에 대한 기억은 전무하고, 그후에도 아버지의 전근으로 몇 년마다 이사를 해서 고향이라고 여기는 곳도 없습니다. 

멕시코로 날아갔던 것도 목적지가 없는 산책과 같았을지 모릅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로 들어가 기자생활을 했지만 나에게 맞는 일은 아니라고 느꼈고, 이 년 반 만에 그만두고 1990년대 전반에 멕시코로 건너갔습니다. 왜 멕시코에 갔냐는 질문을 자주 받고 라틴아메리카문학에 이끌렸다든가, 지구 반대편에 살고 싶었다고 말했지만, 어느 대답도 정직한 기분인 동시에 사후적인 대답이었습니다. 

충동에 몸을 맡겼을 뿐이며, 이유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일본으로는 돌아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생활했습니다. 실제로 그런 운명도 있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결국 돌아왔죠.  

신미나씨도 짧은 기간이지만, 한국 밖으로 나와서 가구라자카에서 지냈죠. 그곳에 이르는 문맥이나 미나씨의 머릿속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라이터 인 레지던스’ 프로그램이 시작되지 않았다면 일본에서 사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다른 흐름 속에서 만날 수 있었을까요?  

 

날씨가 추워지니, 한국의 뜨거운 찌개가 그리워집니다. 연말연시는 좀 느긋하게 보낼 수 있을까요? 모쪼록 좋은 새해 맞으시길 바랍니다.  

 

2025년 11월 29일(土) 

도쿄에서 호시노 도모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