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빈칸 열기

집을 나서면 바로 천변입니다. 제 걸음으로 스물다섯 걸음쯤. 머리 위로는 내부순환로가 휘어져 있고, 회색 교각 아래에서 한 남자가 야구공을 던집니다. 탁, 탁. 콘크리트 기둥에는 공 자국이 초승달처럼 박혀 있습니다. 

윗길로 가면 인공 폭포가 나오고, 아랫길은 한강으로 이어집니다. 백로와 왜가리는 늘 일정한 거리를 둔 채 서 있고, 볕 좋은 날이면 거북이가 엄지를 세우듯 목을 길게 빼고 일광욕을 합니다. 

어머니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일부러 몇 정거장 전에 내립니다. 그때 건너는 다리가 ‘연가교’입니다. 연희동과 가좌동을 잇는, 작고 평범한 다리. 달아오른 이마를 찬바람에 식히며, 저는 호시노 상이 걸었을 도쿄의 골목길을 떠올립니다. 이 편지는 그 산책길의 맞은편에서, 보폭을 맞추어 걷는 마음으로 씁니다. 

 

호시노 상의 어머니 이야기를 읽다가 저는 잠시 멈췄습니다. 트레이싱지를 포개놓은 듯 제 상황과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부터 어머니는 제 이름을 잊어버리곤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노랫말 몇 소절은 또렷이 따라 부르십니다. 그 몇 마디가 어머니의 몸에 남은 리듬처럼 느껴집니다. 

어머니는 이따금 아무 의미 없는 말을 하십니다. 아기의 옹알이 같은 소리. 그러면 저는 〈라디오 극장〉 같은 짧은 이야기를 틀어드립니다. 그 한 편이 잠시 어머니의 공백을 채워줍니다. 

 

저는 가끔, 눈앞에서 어머니를 보면서도 어머니가 그립습니다.
이 한 줄만 남습니다. 감각이 저를 넘어설 때가 있습니다. 가슴에 점선이 생기고, 그 점선이 빈칸을 만듭니다. 그 안으로 무언가가 들어와, 그대로 지나가게 둡니다. 

 

연가교 아래로 청둥오리가 부드럽게 물살을 밀며 다가옵니다. 예전에는 교각마다 세계의 명화를 복제한 액자가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알프레드 시슬레의 그림을 이따금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코팅이 벗겨지고 색이 바랬는데, 그 흐릿함마저 자연이 덧칠한 붓질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날, 무심코 걷다가 허전함을 느꼈습니다. 그림이 모두 사라진 것입니다. 액자를 떼어낸 자리만 조금 하얗게 변한 채 남아 있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처음부터 비어 있는 벽이 되겠지요. 우리의 시간도 언젠가는 그런 흔적으로만 남다가, 조금씩 투명해질 것입니다. 그 생각이 꼭 슬프지만은 않았습니다. 

 

문득 웃음이 났습니다. 호시노 상도 “언어가 아직도 필요한 거야?” 하고 자문하셨고, 저도 가끔은 말을 빈칸으로 남겨두고 싶은데, 이렇게 긴 편지를 쓰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설명을 완전히 버릴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뒤에야 남는 말이 시가 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편지를 쓰면서 호시노 상이 말한 ‘잡담’이 자주 떠올랐습니다. 

 

-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공기와 물과 태양, 그리고 목적 없는 수다. 

- 시는 잡담인지도 모른다. 

- 왕복편지는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한 잡담이다. 

 

이 세 문장을 적고 나니 질문이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호시노 상이 말한 ‘목적 없음’은 설명을 멈추려는 일인가요. 아니면 설명이 앞서 달려오기 전에, 한 칸을 비워두는 방식인가요. 

 

저는 잡담을 ‘본론 전의 여분’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러니 ‘낮은 자리’와 ‘부름’을 말하면서도, 제 안에서 또다른 높이와 배제가 만들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잡담을 공기와 물과 태양 옆에 놓았습니다. 필수적인 것들 옆에 나란히. 

생각해보니 잡담은, 아직 설명되지 않은 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말에 가깝습니다. “거기, 당신 있어요?” 같은 미약한 신호. 그런 말들이 인생의 바탕을 이룹니다. 우리가 쓰는 이 편지도, 긴 연시이면서 동시에 잡담 같습니다. 

 

시로 들어오는 길이 서로 다르다는 점도 새삼 보였습니다. 호시노 상은 “혼자서 몰입해 시를 쓰는 경험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적으셨지요. 먼저 ‘우리’가 생기고, 그 사이에서 ‘나’가 늦게 따라오는 흐름. 저는 안쪽에서 바깥으로 나아가는, 호시노 상은 바깥에서 안쪽으로 들어오는 분기점에 서 있는 듯합니다. 

 

오래전 기억 하나를 불러와봅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술을 빚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곤 했습니다. 커다란 고무 통 안에 누룩을 넣고, 가운데에 대나무로 만든 용수를 깊이 박아둡니다. 찌꺼기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대나무 틈으로 맑은 술이 괴어오릅니다. 겨울밤, 두툼한 이불을 덮은 고무 통에서 기포가 터지며 탄산이 만들어지는 소리를 듣곤 했습니다. 보글보글, 혹은 바늘로 비눗방울을 찌르는 듯 따끔한 소리. 

저에게 시는 용수 안으로 고여드는 맑은 술 같았습니다. 불순물이 가라앉은 뒤, 그 사이로 스며드는 한 모금. 그래서 시는 ‘더하기’보다 ‘빼기’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시는 빼기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숨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는 일이기도 하다는 것. 그 빈칸 덕분에 제 문장은 호시노 상 쪽으로 조금 더 열립니다. 

 

호시노 상은 우리의 관계가 “시간이라는 관점으로 측량할 수 없다”고 썼지요. 저는 자주 길을 잃습니다. 엇박자의 시간 감각에 빠져 걷다보면, 길이 갑자기 사라진 것 같고 과거의 풍경이 겹쳐 보일 때가 있습니다. 시간은 어느 장소와 기억에 와락 붙었다가, 어느 순간 툭 떨어져나갑니다. 

출간을 앞두고 ‘신미나와 싱고의 교차일기’(『짧은 꿈』, 봄날의 책, 2026) 교정을 보는 동안, 몸은 서울에 있었지만 마음은 가구라자카의 다다미방에 남아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호시노 상이 첫 편지에 써두었던 장면 속에서요. 편지를 보내고 나면 그때의 저는 이미 조금 달라져 있고, 몇 주 뒤 답장을 읽으면 예전의 제 문장이 다시 현재로 올라옵니다. 오늘이 그때를 부르고, 그때가 다시 오늘을 건드립니다. 

이 편지는 한 줄로 곧게 이어지기보다, 서로의 문장을 여기저기 옮겨 놓는 리듬으로 움직입니다. 우리가 알게 된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도 몇 년이 흐른 듯한 까닭도 거기에 있겠지요. 그러니 이 편지 안에서만큼은 설명으로 줄기를 세우지 않아도 좋겠습니다. 잡담이 가지치기 없이 뻗어나가도록. 

 

다시, 도쿄의 오래된 집들을 떠올립니다. 벽지와 다다미와 후스마가 속살을 드러낸 채 부서져가는 집. 그 장면 위에 요양병원의 후덥지근한 복도와, 연가교 교각의 빈자리, 재개발이 한창인 우리 동네의 철거 현장을 겹쳐 봅니다.  

붉은 글씨로 ‘공가’(空家)라고 적힌 집들이 늘어갑니다. 머잖아 구백 세대가 넘는 아파트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그 집들에 살던 새와 고양이들도 밀려나겠지요. 어떤 동네는 늙어가고, 어떤 동네는 갑자기 젊어집니다. 그 상반된 움직임이 같은 속도로 겹쳐 보일 때, 저는 이따금 멀미를 느낍니다. 

 

호시노 상의 삶에 시가 들어온 자리에는 여러 한국 작가들의 응원이 있었다고 하셨지요. 저도 비슷한 마음을 호시노 상에게 품고 있습니다. 당신은 저를 너무 빨리 한 가지 언어로 가두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 사실만으로도 이 실험을 이어갈 이유가 충분했습니다. 

저는 하나의 목소리로만 살기 어려운 사람입니다. 어떤 날은 지나치게 무거운 얼굴로, 어떤 날은 장난스러운 얼굴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나에게도 싱고가 필요했다”고도 쓰셨지요. 십여 년 전, ‘싱고’라는 다른 이름으로 시툰을 그릴 때 제 언어가 가벼워지는 건 아닐지 스스로 의심하곤 했습니다. ‘작가다움’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는 얼굴이 있으니까요. 진지하고, 윤리적이며, 자기 의심마저 단정한 얼굴. 그 틀을 벗어나면 진지함이 먼저 훼손될까봐 두려웠습니다. 

그럼에도 ‘싱고’가 있었기에 저는 언어가 닿을 수 있는 조금 더 먼 자리까지 나아갈 수 있었고, 한 목소리에만 붙들리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호시노 상이 논바이너리라고 말했을 때, 저는 그 용기를 알면서도 제 속도를 검열했습니다. 거의 한 생애를 통과해 나온 당신의 언어 옆에서, 제가 너무 빠른 속도로 ‘다시 태어나는 나’를 증명하려 했던 건 아닐까. 결국 제 상처를 미학으로 정리해버린 건 아닐까. 그 속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저는 지금도 묻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게 필요한 건, 손을 내밀되 쉽게 거리를 지우지 않는 용기입니다. 서둘러 빈칸을 메우지 않는 힘. 이 편지를 쓰는 동안에도 제 안에는 “이 말을 써도 되겠니?”라고 묻는 목소리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은 그 볼륨을 조금 낮춰둡니다. 

 

멕시코 이야기를 하며 도쿄 레지던시의 의미를 물으셨지요. 도쿄에서 저는 ‘잠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익숙한 모국어와 일상에서 한 발 물러나, 덜 굳은 사람으로 살아본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어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기에, 오히려 감각은 자유로웠습니다. 말을 다시 배우는 ‘언어의 아기’가 된 것 같았습니다. 그때 저는 틀려도 괜찮은 사람이었습니다. 

통역을 도와주신 시미즈 선생을 저는 가끔 양육자처럼 느꼈습니다. 제가 몇 음절을 내놓으면, 선생은 그 음절들을 받아 더 다정하고 정확한 문장으로 완성해주었습니다. 그 짧은 순간마다 문장이 한번 더 태어났습니다. 저는 묘한 해방감과 가벼운 무력감을 동시에 느꼈습니다. 제가 말한 것과 제가 말하게 된 것 사이에, 늘 작은 간극이 남았으니까요. 

 

돌이켜보면 저는 뜻보다 먼저 소리를 배웠습니다. ‘키레이’의 의미보다, ‘레’를 발음할 때 혀가 한 번 구르며 입천장을 스치는 감각을 먼저 기억하는 식으로요. 말의 피부를 먼저 더듬어보는 시간이었지요.  

왕복편지도 어쩌면 비슷한 실험입니다. 제가 한국어로 쓴 편지는 김석희 선생과 시미즈 선생의 번역을 거칩니다. 그 사이에서 몇 번의 미세한 어긋남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저는 그 어긋남을 ‘오해될 자유’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문장이 제 손을 떠나 다른 언어를 통과할 때, 제 문장은 더이상 제 것만이 아닙니다. 언젠가 그 번역된 문장 틈에서 저도 몰랐던 제 문장을 마주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언제고 ‘언어의 아기’로 돌아갈 수 있는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삶을 다 알지 못한 채 빈칸을 열어두고, 천천히 기어다니고, 핥고, 깨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느린 속도에서만 보이는 시의 얼굴이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요. 

 

도쿄 체류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아마 번역된 책이나 짧은 서평으로만 스쳤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김현 시인의 소개가 없었다면, 아예 만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지요. 저는 종종 직감이 이끄는 대로 움직이는데, 도쿄행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여행처럼 충동과 호기심이 앞섰습니다. 

그런데 그 충동이 몇 번의 귀한 만남으로 이어졌습니다. 한 알만 캐려던 감자가 줄줄이 딸려 나오는 것처럼. 문장은 신기하게도 문장 밖에서 사람을 데려오기도 하더군요. 

 

호시노 상, 한 가지 제안을 해봅니다. 내년 3월쯤 여러 명의 한국 시인과 함께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한 잡담”을 해보면 어떨까요. 편지 밖에서도 그 속도로 나란히 걸어볼까요. 낮에는 시를 쓰고, 마지막 날에는 작은 낭독회를 열고요. 잡담이 공기와 물과 태양 옆에 놓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며칠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 초대를 기쁘게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연말의 감미로운 분위기에 쉽게 휩쓸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돌아보면 올해는 유독 깊이 새겨진 장면이 몇 개 남았습니다. 호시노 상과의 만남도 그중 하나입니다. 

편지를 주고받는 동안, 촛불을 나눠 들고 동굴을 빠져나오는 느낌이었습니다. 때로는 촛농이 너무 뜨거워 손을 델 것 같았고, 때로는 금방이라도 불이 꺼질까봐 겁이 났습니다.  

과거의 문장이 굳은 촛농처럼 보일 때가 있더라도, 그때마다 바람을 막아주려 서로에게 손을 내밀었던 시간이 분명히 있었다고 믿습니다. 

 

다음 답장을 받아볼 즈음이면, 이 편지들은 다른 빛 아래 놓이겠지요.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는 너무 밝은 태양 아래에서 숨을 곳이 없는 기분이 들까요.  

아니면 다 식어버린 촛농인 줄 알았던 문장이 사실은 종유석이었구나, 하고 돌아보게 될까요. 모르겠습니다. 다만 동굴에는 큰 불이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긴 동굴을 지나온 호시노 상에게. 한 해의 끝에, 이 시를 붙여둡니다. 

 

여기 불이 지나갔다고

은과 구리를 녹이는 불기둥이 

 

표면을 만지면

화상을 입은 돌의 피부가 느껴집니다 

 

굴, 하고 말하면

구우우우―ㄹ 음운이 사라지는

신의 성대 속으로 들어온 것 같습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가장 나다운 목소리를 찾기 위해

평생 자신의 그림자를 미행했노라고 

 

어둠 속에서

불안을 심지처럼 세우느라

나는 슬픈 사람이 되었어요 

 

무너지는 촛농을 쌓느라

과거를 다 썼습니다

아직 끝난 게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서 

 

보세요, 빛의 퇴적물을

불의 찬란이 촛농을 만드는 걸요

동굴 밖에는 종려나무가 흔들리고 청귤이 익는데 

 

그는 내 손을 끌어당겨 만져보라 했습니다

참회하는 자의 젖은 얼굴을

자신의 내부를 명예롭게 할퀸 자국을 

 

그를 두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폭양이 그림자를

가혹하게 만드는 걸 알면서도 

 

종려나무가 흔들리고 청귤이 익는다니

종려나무가 흔들리고 청귤이 익는다니 

 

혼잣말을 하면서

동굴의 입구를 보았습니다 

―「에코」 

 

2025년 12월 14일(日) 

서울에서 신미나
 

P.S. 우리의 첫 만남을 이어준 김현 시인이 보낸 편지를 덧붙입니다. 호시노 상에게 다정한 연말 선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운 호시노 상에게 

 

안녕하세요? 호시노 상.  

건강히 잘 지내시죠?  

어제 이곳엔 첫눈이, 첫눈치고는 꽤 많은 눈이 기습적으로 내렸습니다.  

 

요사이 행사가 많아 피로가 쌓인 몸을 질질 끌며(눈을 반쯤 감고) 출근하는 와중에 ‘퇴근길 첫눈 예상’ 뉴스를 보자마자 눈이 동그랗게 떠졌습니다. 가슴은 뛰고. 눈앞에 상상의 눈송이가 나풀나풀 날리는 지경에 이르자 놀랍게도 ‘기분좋은’ 출근길이 되었습니다. 물론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다시 병든 닭 신세가 되어 모닝커피를 수혈해야 했습니다만, 첫눈을 기다리는 마음을 아코디언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며 근무시간을 버텨냈습니다. 그러니까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눈이 오면 개로 변신하여 (가끔은 혀를 내밀고) 눈송이를 따라 뜀박질하는 인간.  

 

퇴근시간이 가까워지는데도 사무실 창밖으로 눈송이가 비치지 않자 시무룩한 기분이 되었습니다(퇴근시간에 시무룩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요!). 그러나 ‘첫눈 기다리기’를 결코 포기할 순 없어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가는 대신 친구를 불러내 종로3가로 향했습니다. 지금은 여남소노가 찾는 관광지가 되었으나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게이 포차 골목’으로 불리던 곳이죠. 다른 눈도 아닌 첫눈이니까, “눈이 내리면 지나는 사람들 모두 첫사랑의 얼굴이 된다”라는 쩡찌 작가의 말에 힘입어 게이력(로맨스 파워)을 높이기 위해 부러 약속을 잡은 장소였습니다. 그곳에 도착하자, 마치 저를 기다렸다는 듯이 희끗희끗한 것이 팡파르 꽃가루처럼 날리었습니다.  

 

와, 눈이다! 

종로3가 6번 출구에서 페리 코모의 <It's Impossible>을 들으며 친구가 오길 기다리고 있자니 귀여운 남성이 어깨를 톡톡 치며 “커피 한잔하실래요?” 하고 말 걸어오는 싱거운 상상이 펼쳐졌습니다. 누군가, 무언가를 기다리다 보면 이야기가 절로 쓰이기도 하죠. 제 친구가 멀찍이서 찍은 영상 속 그때 제 모습은 제가 보기에도 배시시 미소가 지어지더라고요. 이야기에 빠진 얼굴에 서리는 빛을 호시노 상도 알고 계시죠?  

꿈꾸지 않는 삶은 불가능해요. 

 

근래에 저는 청탁을 받아 청소년들을 위한 시 두 편을 썼습니다. 그중 한 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이 

눈송이가 흩날린다 

친구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고 

 

그런 사람이 

새하얀 눈밭 위에 쫑쫑쫑 찍힌 

작은 동물의 발자국을 사진으로 남기고 

 

길고양이들을 위해 

깊은 그릇에 물을 담아 내어놓는다 

 

마음의 처마 밑에 가만히 앉아 흰빛으로 물드는 세계를 듣는 사람의 침묵은 아름답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름답다」 일부 

 

눈으로 덮이는 세상을 신나게 뛰어다니다가도 어느새 멈추어 서서 생각에 잠기는 순간을 우리는, 저는 맞닥뜨립니다. 잠깐이면서 동시에 하염없는 시간. 경이로운 자연에 고개 숙이는 인간 되기. 말없이 말하기. 그것은 쓰기로도 이어지지요. 

 

호시노 상은 눈밭에 처음으로 썼던 말을 기억하시나요? 

새하얀 종이 위에 손가락으로 남기었던 발자국은요? 

첫눈 내린 어느 일요일 아침, 까까머리였던 저는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을 찾아 헤매다 교회 종탑 아래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 그 흰 종이 위에 글씨를 남겨두고 돌아왔습니다. 좋아하던 이의 이름이었는지, 제 마음에 드리운 그림자 혹은 한 줄기 빛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어쩌면 저는 그때 그곳에 남겨두고 온 언어를 찾아 여전히 시를(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쓰기를 마칠 때마다 그날 아침 들었던 청아한 종소리가 여전히 제 귓가에 울리는 것일지도요. 

 

호시노 상은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이신가요? 이제 아니 오래전부터 첫눈의 낭만보다 도로의 교통 상황과 시설 피해를 생각하는 의젓한 어른이신가요?  

눈이 다 녹은 서울의 풍경 사진을 찍어 이국에 사는 이에게 보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 눈이 고향에 빨리 돌아갔네. 

 

사라지는 눈이 아니라 돌아가는 눈. 

눈은 흰빛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가 다시 잠에 빠지는 것일까? 잠시 눈이 많이 내리는 제 고향을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호시노 상을 생각하면 칼바람이 부는 매서운 겨울이 아니라 눈이 쌓여 따스한 겨울 저녁의 창가(거기엔 따뜻하게 데운 사케와 은행 몇 알)가 눈앞에 그려집니다. 호시노 상의 상상 속에서 저는 어떤 겨울 풍경에 포함되어 있나요? 

짧게 써야 할 편지가 소복소복 길어졌습니다.  

 

저희는 곧 보게 되겠죠? 우정을 우표 삼아 보냅니다.  

김현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