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요 몇 년은 ‘새해’라는 사실을 감각하지 못한 채 섣달그믐도 설날도 흔하디흔한 다른 하루와 마찬가지로 보내곤 했지만, 올해는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다는 기분을 조금 느끼며 새해를 맞았습니다.
우리의 이 왕복편지 『지구에서 반걸음』 연재가 드디어 공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제 소설을 처음으로 세상에 소개해주었던 『문예(文藝)』(가와데쇼보신사)에서, 한국에서는 신미나씨 책을 펴낸 문학동네의 웹진에서.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는 너무 밝은 태양 아래에서 숨을 곳이 없는 기분이 들까요”라는 신미나씨의 말처럼 나는 숨을 곳이 없어 두꺼운 옷을 입고 귤색 날개에 검은 안경을 쓰고 검은 마스크까지 차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사실 이번에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받은 신미나씨의 네번째 편지를 바로 열지 못하고, 해가 바뀌어서야 읽었습니다. 편지에 어머니가 손수 빚은 술 이야기를 향이 나고 소리까지 들릴 듯 생생하게 묘사해주셨는데, ‘아아, 편지를 금방 열지 않았던 것도 술 빚기와 같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마음속 탁한 것들을 일단 침전시키고, 맑은 술이 넘치는 상태로 읽고 싶었던 거겠지요.
지난번 편지를 쓴 직후, 12월이 되면서 나는 아주 슬픈 이별을 경험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별을 시작으로 이런저런 이별을 경험해온 게 틀림없는데, 이만큼 괴롭고 슬픈 이별은 없었습니다. 자세히 쓸 수 없지만, 가족은 아니어도 한때의 나를 보는 것 같았던,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의식이 있는 동안에는 그의 죽음으로 머릿속이 가득차 눈물이 멈추지 않았고, 감정이 무너져 냉정을 되찾을 수 없으니 나 자신을 추스를 수도 없었습니다.
거대한 부조리였습니다. 이해나 통제의 영역을 넘어선 부조리. 신미나씨가 지금까지 편지로 전해준 부조리는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월호 사건 이후 계속되어온 상상, 갑자기 사람을 잃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마음도 알 것 같았습니다.
내내 머릿속을 지배당하는 것이 너무 괴로워서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하지만 의식은 그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을 향해 달려갑니다.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느꼈을 때 나는 썼습니다. 처음에는 그 사람에게 편지를, 그래도 진정되지 않으면 필사적으로 시를 썼습니다. 뭘 쓰고 있는지 스스로도 모른 채.
시를 쓰고 나니 나는 조금 살 것 같았습니다. 나를 파괴하는 폭력적인 마음이 진정되었습니다. 생각하지 않는 시간이 조금씩 생겨났습니다.
그 시는 너무나 개인적인 주문 같은 것이기도 하고 남에게 읽히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서 내 마음속에만 묻어두려 합니다. 그래도 시 덕분에 마음으로 죽음을 받아들이고 제정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며칠 후에, 새로운 동세대 소설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도 시를 쓰는 소설가로, 여름에 자신의 일부와 같이 느끼던 형을 잃고 어쩌지 못할 슬픔에 빠져 있던 중에 시를 써서 위기를 벗어났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시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서로에게 말해주었습니다.
이런 혼란 가운데 나에게 시가 나타난 것은 이 왕복편지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를 붙여 정리하기에 앞서 감정이나 감각이 말이 되어도 된다고, 신미나씨가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안의 “두툼한 이불을 덮은 고무 통에서 기포가 터지며 탄산이 만들어지는 소리”나 “바늘로 비눗방울을 찌르는 듯 따끔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진정할 틈도 없이 그대로 연말이 되었으니, 술을 빚듯 스스로의 마음을 잠재웠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맑은 술 같은 마음으로 읽은 신미나씨의 편지가 얼마나 심신 곳곳에 사무쳤는지, “시는 빼기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의 숨이 들어올 자리를 남겨두는 일이기도 하다”는 말을 오롯이 체험했습니다. 「에코」는 마치 사별로 마음이 찢어진 지금의 나를 위해 아주 오래전부터 조용히 준비되어 있었던 듯했습니다. 이 시를 나는 동시에 두 가지 방식으로 읽었습니다. 하나는 지금까지의 내 행보를 돌아보는 방식, 또 하나는 죽은 사람의 인생과 나를 향해 남겨진 말처럼 읽는 방식이었습니다. 이상하죠. 상당히 다른 의미의 읽기 방식인데, 어느 쪽도 나에게는 절실하고 실감이 담긴 것이었습니다. 다른 멜로디가 하나의 하모니가 되어 들립니다. 죽은 사람이 내 곁에 있는 듯이 느꼈습니다.
게다가 네번째 편지에는 호화로운 부록이 붙어 있었습니다. 김현씨로부터 온 서프라이즈 편지가! 내가 읽는 타이밍이 늦어져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을 편지가 신년 ‘오토시다마’(어른이 아이들에게 작은 주머니에 넣어 주는 새해 축하금―옮긴이) 같은 것이 되어버렸지만요. 한국에도 오토시다마가 있나요?
읽는 기쁨이 폭발했습니다. 내 귀에 김현씨의 목소리와 말투가 되살아났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폭신하고 밝고 따뜻한 김현씨의 목소리가. 나와 신미나씨가 전심전력을 다해 잡담을 하는 곳에 김현씨가 얼굴을 내밀고, 잠깐 잡담에 끼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잡담은 사실 이 왕복편지가 실현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산겐자야의 멋진 책방 ‘트와일라이라잇’에서 신미나씨가 “왕복편지를 정말로 해볼까요?”라고 제안했을 때, 함께 있던 가와데쇼보신사의 편집자, 이와모토 다이치 씨와 무라다 마이 씨가 그 자리에서 “하시죠!” 하고 찬성해주었습니다. 그렇게 바로 반응을 보인 것은 그때까지 이와모토 씨, 무라다 씨와 내가 ‘잡담으로 회의’를 계속해왔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와 같은 것이라면 이제 소설은 쓰지 않겠다, 뭔가 다른 언어 회로를 찾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목적이나 결론을 찾는 것이 아니라 어떤 틀도 없는 가운데 오직 잡담만 하고 싶다, 그러니 회의라 칭하여 잡담을 하자, 잡담은 분명 문학이다, 이와모토 씨에게 나는 그렇게 청했습니다. 그도 가능성을 느낀다며 찬성해주었습니다. 몇 달 뒤부터 셋이 식물원이나 다육식물 가게나 남아시아 이주민 거리에 모여 잡담을 반복했습니다.
신미나씨는 잡담을 “아직 설명되지 않은 채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말”이라고 표현했지만, 코로나가 한창일 때는 그야말로 존재를 확인할 수 없게 되어, 나는 자신이 희미해져가는 감각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간에 잡담을 베이스로 한다면 새로운 존재 방식에 도달할 수도 있다는 대답을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잡담에는 끝이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좋습니다.
무엇을 이야기해도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누구와 이야기해도 좋습니다.
사람에게 둘러싸여 혼잣말을 해도 괜찮습니다.
잡담의 서클은 잔물결이 되어 천천히 퍼져나갑니다. 우리는 둘이 편지를 나누지만, 이 최고의 잡담 서클에는 이미 우리의 동지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국어로 쓴 편지는 김석희 선생과 시미즈 선생의 번역을 거칩니다”라고 쓰신 것처럼 번역자들의 언어도 더해져 있습니다. AI의 번역과 다른 점은 번역한 사람들도 이 잡담의 서클 속에서 조용히 언어를 받아들이고 반응하며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문예』의 편집자인 이와모토 씨, 무라다 씨도, 문학동네의 편집자인 정은진씨, 이한민씨도 같은 서클 안에서 듣고 느낍니다. 그리고 독자인 당신도.
“오해될 자유”라고 하셨죠. 나는 두번째 편지 무렵부터 오해받을 자유에 설레었습니다. 공백이 부드럽게 퍼지며, 내가 날아오르는 듯한 감각을 느꼈습니다. 작은 어긋남과 오해를 만들면서 그때마다 우리들은 자유로워집니다. 새로운 기분이 되어갑니다. 스스로를 갱신해갑니다.
예전 같았으면 여기에서 잡담이란, 하고 시작하여 이론을 만들어냈을 테지요. 하지만 이제 필요 없습니다. 공백에 맡기면 되니까요.
이것이 신미나씨의 물음에 대한 제 대답일지도 모릅니다. “목적 없음은 설명을 멈추려는 일인가요? 아니면 설명이 앞서 달려오기 전에, 한 칸을 비워두는 방식인가요?”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설명’이 인과를 강하게 만드는 서사가 되고 상대를 설득하려 들어 지배관계가 되는 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거겠지요. 나는 ‘잡담’을 ‘설명’의 대칭인 양 다루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김현씨!(여기서 갑자기 김현씨 쪽을 향하여) 나도 같은 과입니다. “눈이 오면 개로 변신하여(가끔은 혀를 내밀고) 눈송이를 따라 뜀박질하는 인간”입니다. 눈이 쌓인 것을 보면 이성을 책상 위에 두고 밖으로 뛰어나가, 아직 누구도 밟지 않은 새하얀 백지를 밟으면서 발자국을 선명하게 남기며 좋아합니다.
글자는 쓰여 있지 않지만, 발자국이 시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요, 쌓이기 시작한 털스웨터 같은 눈 위에 모든 소리가 침전하고 침묵하는 세계란 목소리가 아니라 문자를 위한 장소이겠지요.
유감이지만 도쿄는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눈이 내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첫눈은 기다리고 기다려도 좀처럼 오지 않는 것입니다. 올해는 1월 2일 밤에 첫눈이 내렸는데, 쌓이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여름에만 만났으니 저에겐 가벼운 차림의 김현씨 쪽이 익숙하지만, 사실 김현씨는 설국에서 온 양초 같은 눈사람이기도 했던 것이네요. 두터운 옷을 입어 부풀어오른 몸으로 옅은 복숭아색 니트 모자를 쓰고, 하얀 입김을 뿜으며 손을 비비고, 로맨틱한 상상으로 미소 지으며 종로3가역 6번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는 김현씨의 모습을 멋대로 그려보며 즐거워집니다. 커피를 마시자고 초대한 뒤, 삼 개월 후에 뛰어난 요리 솜씨를 발휘하며 주방에 서서 잡담을 나누는 김현씨까지 떠올려봅니다.
종로3가역 6번 출구는 익숙합니다. 2012년 서울에 삼 개월 정도 체재했을 때, 종로3가에 있는 호텔이 첫 숙소였습니다. 들어가기로 한 아파트에 곧바로 입주하지 못하고 급히 호텔을 수배했지만, 일본의 골든 위크 때문에 어딜 가나 일본인 손님으로 만실이었고, 겨우 예약한 것이 러브호텔. 종로3가 5번 출구에 가까운 아마레 호텔입니다. 거품이 잔뜩 뿜어져 나오는 자주색 둥근 욕조와 거대한 게임용 컴퓨터가 있는 어둡고 분위기 있는 방에 열흘 정도 묵었습니다. 그리고 그사이에 종로3가 거리와 친해졌습니다. 설마 그 무렵 김현씨와 스쳐지나갔던 것은 아니겠지요?
재작년에 김현씨와 만났던 여름, 십수 년 만에 낙원동에 가보았는데 젊은이들이 모이는 근사한 골목으로 바뀌어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마레 호텔은 보통 호텔로 개장되어 아직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은 한글을 막 배워서 길을 걸을 때도 지하철을 타도 일단 눈에 들어오는 광고를―‘꽃’이라든가 ‘약’이라든가 ‘떡’이라든가 ‘찜닭’이라든가―의미도 모른 채 전부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언어의 아기’로서의 행복이 가득했습니다. 그대로 한국어 공부를 계속했다면 지금쯤 신미나씨나 친구들과 막힘없이 수다를 떨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덕분에 다시 태어나고 있는 중입니다.
"내년 3월쯤 여러 명의 한국 시인과 함께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한 잡담을 해보면 어떨까요. 편지 밖에서도 그 속도로 나란히 걸어볼까요. 낮에는 시를 쓰고, 마지막 날에는 작은 낭독회를 열고요. 잡담이 공기와 물과 태양 옆에 놓일 수 있는 것이라면, 그런 며칠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매력적인 초대에 낙원을 방문하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입니다. 궁극의 잡담이 되겠군요. 언젠가는 실현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이렇게 빨리 움직여주시다니요! 이 왕복편지의 힘에 경악하고 있습니다.
신미나씨는 연초에 한 해의 목표를 세우는 편인가요?
해넘이의 감각조차 잊어버린 나는 이미 일 년의 목표를 세우는 일이 없습니다. 어쨌거나 눈앞의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거기에서 생기는 일에 몸을 맡기듯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지금은 봄에 한국에 가서 모두와 함께 온몸과 온 마음을 다해 연시라는 잡담에 참여할 일이 가장 큰 즐거움입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신미나씨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김현씨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김석희씨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시미즈 사치코 씨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이와모토 다이이치 씨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이소연씨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유현아씨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이동욱씨를 좋아합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호시노 도모유키를 좋아할지도 모릅니다.
나는 사람을 싫어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무한히 많습니다.
사람들은 나를 싫어할지도 모르지만, 신미나씨는 나를 좋아합니다. 그렇죠?
그림자를 읽혔다면
존재를 압류당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이상 도망쳐 숨을 만한 동굴은 없습니다
크크크 메아리치는 것은
새의 웃음소리거나 도망쳐 사라지는 구둣발 소리거나
손을 뻗으면
여문 태양을 수확하고
과즙이 매달리는 손가락은
그리운 촛농 냄새
농축된 후회의 맛
태양은 모든 곳이 되어 있어
더이상 도망쳐 숨을 만한 동굴은 없습니다
걸을 때마다
혼자 남겨진 그림자가 흩어지는
피를 흘린 상처는 부스럼 딱지가 되고
인간들이 맛있게 베어 무는
나무들 그림자
바위 그림자
하늘을 춤추는 물고기 그림자
맑은 구름 그림자
이만 광년의 별 그림자
모래사장에 비치는 다음주의 내 그림자
빛이 들지 않는 내장 안쪽 주름의 그림자
그림자가 시끄러워
우리는 그저 여물어가고
그림자 흩뿌리며
더이상 도망쳐 숨을 만한 동굴은 없습니다
― 「난반향(乱反響)」
2026년 1월 11일(日)
도쿄에서 호시노 도모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