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나씨, 서울의 추위는 내려갈 만큼 다 내려갔나요? 도쿄의 겨울은 몇 년 전부터 이상기온을 보입니다. 원래 관동 지역의 한겨울은 투명하여 모든 것을 찌를 듯한 빛과 추위가 특징이었는데, 지금은 자주 흐리거나 갑자기 따뜻해지기도 합니다. 도무지 안정을 찾을 수 없고, 도쿄의 겨울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신미나씨는 ‘중음’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나는 정말 “디딤돌”처럼 산재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섯번째 편지를 읽고 있자니, 십오 년 전에 읽었던 시가 돌연히 내 마음속에 얼굴을 내밀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왕복편지에도 쓴 적 있는 것처럼, 나는 거의 시를 읽지 않았고 시와는 무연하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시가 나를 잊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는 철길, 좁은 대기의 길,
수의를 입은 밭과 돌을 지나,
별빛 허공을 향한 마지막 발걸음을 디디며
빙빙 도는 나선형 길을 지나왔다.
(……)
나는 요드 묻은 붕대를 걷어내고, 내 손을
주검을 죽이는 가엾은 고통 속으로 밀어넣었다.
그리고 그 상처에서 영혼의 휑한 틈새로 밀려오는
차가운 돌풍을 감지했다.
―파블로 네루다, 「마추픽추의 산정에서」, 『모두의 노래』, 고혜선 옮김, 현대문학, 2016 54~56쪽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대표작 「마추픽추의 산정에서」의 일부입니다. 시구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신미나씨의 편지를 읽으면서, 네루다의 시를 읽었던 기억이 갑자기 입체적으로 떠올랐습니다.
나는 이 시를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후에 몇 번이나 반복해서 읽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조금 길지만, 그때 쓴 에세이를 인용합니다.
평소에 거의 시를 읽지 않지만, 대지진 이후 때때로 충동적으로 시집을 펼치곤 했습니다. 많은 것이 넘쳐흐르니, 시야말로 구멍투성이가 된 마음을 메꾸어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기도하고 싶은 것인지, 너무나 큰 상실감과 불안이 복잡하게 얽혀 스스로도 그 정체를 분명히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지진으로 타계하신 분들과 남겨진 이들의 고통인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남겨진다’는 것은 어딘가 잔혹한 말이지요. ‘잔혹(殘酷)’이라는 단어에도 ‘남겨진다(殘)’는 글자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일찍이 나와 친분이 있었던 젊은이가 목숨을 끊었을 때, 남겨진다는 일의 잔혹함을 몸으로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남겨진 자에게 그 아픔은 결코 지워질 수 없다는 것도.
내 기력이 다할 정도로 힘들 때면, 문득 죽은 사람을 생각합니다. 이럴 때 그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아, 그녀는 분명히 이런 기분을 안고 있었는지도 몰라 등. 그리고 그들의 원통함으로 마음이 달려갑니다. 말이 되지 못하고 사라져버리는 마음을, 내가 그들의 머리와 입이 되어, 말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난 말은, 나의 언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 나는 이미 예전의 내가 아닙니다. 사자와 함께 사는, 사자를 마음에 둔, 사자의 안식처가 된 나입니다. 내가 사자의 마음을 생각할 때, 나는 죽음을 당한 자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3.11を心に刻んで』, 岩波書店, 2012, 6~7쪽
이 에세이에 인용한 네루다의 시는 「마추픽추의 산정에서」 마지막 부분이었습니다.
나는 그대들의 죽은 입을 대신하여 말하리니,
대지를 통해 눈물 흘린
침묵의 입술들을 모두 모아,
저 깊은 곳에서 긴 밤 새워가며 나에게 말해다오.
―파블로 네루다, 같은 책, 70~71쪽
그 시기, 「마추픽추의 산정에서」에 매달리듯 반복해 읽은 것이 ‘구원’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자연계의 맹위가 일으키는 부조리를 받아들이기 위해, 멸망한 문명을 제재로 했던 이 시에 이끌렸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나는 신앙을 가진 적도 종교에 관여한 경험도 없으므로, ‘구원’이라는 말의 의미를 신미나씨가 생각하는 의미와는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인용한 에세이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시가 필요하다는 감각을 생리적 욕구처럼 느꼈었고, 시의 언어를 읽음으로써 저를 집어삼키려고 하는 황폐한 감정이 잦아들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나는 덕분에 제정신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그 감정이나 감각에 몸을 맡기면 확실하게 폭력 쪽으로 떨어졌을 텐데, 그러기 바로 직전에 시가 타락을 막아주었습니다.
이전 편지에서 말했듯 너무나 괴로운 이별 앞에서 나만 아는 시를 쓴 것도, 이 오래전의 에세이에 기록했던 마음의 움직임에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편지에서 반려묘의 뼈와 함께 삼 년째 인왕산을 오르는 신미나씨의 숨결을 느낍니다. 내년에도 또 오르게 되겠지요?
신미나씨는 나의 시를 바람에 실어주셨습니다.
그곳에 신미나씨의 시어가 천천히 침전되어 갑니다.
언어로 된 시가, 자기 안에 둥지를 틀고 자신을 향한 칼날이 되기 전에, 다른 사람들에게 보내서 읽히고, 그래서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이 편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그저께, ‘죽은 자’와 대화를 하고 왔습니다. 나의 소설 은사이자 연상의 친구였던 소중한 작가, 쓰시마 유코 선생님의 10주기였기 때문에 나는 선생님이 잠든 장소에 다녀왔습니다.
가톨릭 신자였던 쓰시마 선생님의 묘는 성당의 납골당에 있습니다. 나는 지난 십 년 간 자신과 이 세상에 있었던 변화를 보고하고, 불신과 폭력이 가속화될 앞으로의 세상을 어떤 자세로 살아갈 생각인지 밝히고, 신미나씨와 왕복편지를 시작했다고 전했습니다. 쓰시마 선생님은 아직 일본에서 한국문학 번역이 빈약했던 이십 년 전, 신경숙씨와 왕복편지를 주고받으셨습니다.(신경숙·쓰시마 유코,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 김훈아 옮김, 현대문학, 2007; 『山のある家井戸のある家』, きむふな訳, 集英社, 2007)
최근 십 년간, 쓰시마 선생님과는 때때로 상상 속의 대화를 나누어왔습니다. 세상에서 믿기 힘든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묻고, 쓰시마 선생님의 목소리를 상상합니다. 그것은 나의 상상일 수밖에 없지만, 그때 나는 쓰시마 선생님이 되어 선생님의 어조로 나에게 대답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렇게 공상의 대화를 나누는, 사자가 되신 은사가 한두 분 더 계십니다.
그 대화 시간은 이 세상에 흐르는 공적인 시간과는 다릅니다. ‘시간’이지조차 않을지도 모릅니다.
신미나씨는 중음에 대하여 이렇게 썼습니다.
저는 그 ‘사이’가 꼭 사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살아 있는 몸도 가끔은 하늘로 향하는 부력과 땅으로 끌어당기는 중력 사이에서 잠깐 떠 있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으니까요.
죽은 이와 같은 지평에 설 때 나의 감각은 이 말과 겹칩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왕복편지에서 죽음 이야기만 쓰고 있는 것 같네요. 신미나씨의 조카가 아기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읽고, 알아차렸습니다. 나는 요즘 매일 한 시간 이상 앱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고, 최근에 ‘백설기’라는 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기에 대한 부드러운 묘사와 백설기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나도 행복을 조금 나누어 받았습니다.
아기는 인간이 아닙니다. 사람이지만(인권은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 인간이 아닙니다. 적어도 내가 절망하고 있는 ‘인간된 자’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어쩌면 나는 내가 절망하는 인간이라는 존재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고 싶어서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아기를 생각하는 것도 좋을 수 있겠습니다.
인간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소설 속에서 나는 식물로 전환되어 갔습니다. 때때로 어째서 동물로는 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 주변에는 동물과 함께하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단순히 동물을 좋아한다든가 키운다는 것뿐 아니라,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사라져가는 듯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신미나씨와 고양이의 관계도 특별하지요. ‘특별’하게 보이는 건 내 입장일 뿐, 신미나씨 본인의 입장으로 보면 그것은 극히 자연스러운 관계일지도 모릅니다.
신미나씨에게 고양이, 나아가 넓은 의미로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동물에 대해, 인간과의 경계에 대해 묻고 싶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쓰시마 선생님의 『산이 있는 집 우물이 있는 집』에서, 쓰시마 선생님은 이런 이야기를 쓰셨습니다. 쓰시마 선생님에겐 다운증후군을 가진 세 살 터울의 오빠가 있었습니다. 그 오빠는 열다섯 살에 사망했습니다.
내게 ‘바깥세상’은 말의 세계였습니다. 말로 설명을 요구하는 잔혹함― 불쌍하게도, 안 됐다 하는 어른들이나 반 아이들의 말을 들어야 했을 때의 표현하기 힘든 고통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오빠와 있으면 세상은 마법으로 가득 찬 것 같았어요. 오빠는 말에 매어 있지 않았고 공간이나 시간관념에도 구속받지 않았습니다. 마음대로 불어오는 바람처럼 살랑살랑 춤추는 나비처럼 마음 닿는 곳으로 마냥 걸어다녔습니다. 목적도 없었고, 돌아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즐거워서 기분이 좋아서 걸었을 뿐이지요.
(……)
말, 언어. 나는 지금도 말과는 무관하게 마음 내키는 대로 걸어다니던 오빠 뒤를, 숨을 헐떡이며, 지치고 불안해하며, 내 보잘것없는 말로 쫓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신경숙·쓰시마유코, 같은 책, 123~125쪽
물론 쓰시마 선생님은 “너무 미화시키다보면 그 가족들이 짊어진 현실의 무거운 짐들이 잊혀지지는 않을까”(122쪽) 염려하고 이상화하지 않도록 주의 깊게 쓰고 계십니다.
인간 밖으로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는, 이것은 광대한 가능성으로 보입니다. 거기까지 인간의 진폭이어도 된다고, 쓰시마 선생님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오빠와의 관계 방식을 느끼면서 낙천적인 마음이 됩니다.
나도 쓰시마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말에 묶이지 않는 사람을 서툰 말로나마 계속해서 뒤쫓아가고 있는 것이구나, 생각합니다.
문자 없는 문자를 찾아
지표(地表)를 걸어 건너다보니
문자 없는 지표면을 찾아
방황하게 되었다
거리는 문자 없는 문자의 전당이었다
정원의 식재(植栽)는 문자로 입혀진 신음소리
기르는 개는 문자의 털가죽을 두르고
문자 오줌을 문자 관목에 뿌린다
자동차가 문자를 뿜어내니
대기까지 문자의 입자가 가득하다
문자의 공기를 마시지 않을 수가 없다
산속 마을로 도망치면
그곳은 버려진, 문자 없는 문자의 폐허
유적이 된 문자의 흔적이 수풀로 덮인다
샘물을 후루룩 마시면
마시는 자가 문자 없는 문자가 되어
무의미한 메시지를 우주로 흘려보낸다
문자에 미친 문자 없는 곰이
문자로부터 도망칠 수 없는 문자자(文字者)를 습격한다
문자 없는 문자의 오줌에 더러워지는 것이
고작일 터이니 심해에 잠수하는 것은 그만두자
해독(解読)의 저주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얽어맨다
무의미를 의미하면 된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문자로 존재하기를 멈추세요!
그렇게 말하고 시체가 된 자를
유언대로 조장(鳥葬)에 부치면
그는 문자의 새가 되고 문자의 흙이 된다
문자 없는 문자의 흙과 물에 덮인 별을
수다스런 침묵이 지배한다
―「문자의 혹성」
소설이든 시든, 나는 막다른 지경에 내몰린 형태의 말로밖에 쓸 수 없습니다. 그 사각지대로부터 숨통이 끊어진 절망이, 가능성을 잘려버린 허무가 착각처럼 나타날 거라 믿고 있습니다.
2026년 2월 20일(日)
도쿄에서 호시노 도모유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