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시노 상, 한국어 실력은 조금 늘었나요. 작년 10월, 호시노 상이 한국에 왔을 때 제가 기억나는 단어가 있느냐고 물었지요. 당신은 “깨끗하다. 조용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서툰 발음이 저는 좋았습니다. 마치 ‘언어의 아이’가 처음 말을 떼는 것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그 두 단어를 듣는 순간, 저는 잠시 가구라자카의 골목을 떠올렸습니다. 깨끗하고 조용했던 그 골목길.
멕시코는 어떤가요? 보내주신 간디 서점 사진에 한강과 조남주 작가의 소설이 보여 반가웠습니다. 지구의 머나먼 서쪽에 계신 셈이니 제가 “열다섯 시간을 먼저 사는 미래인”이 된 것 같다고 메시지를 보냈죠. 호시노 상이 “타임 워프한 외계인”이라고 답장을 보내주어 유쾌했습니다. 벌써부터 양양 바닷가 마을에서 열릴 우리의 낭독회가 기다려집니다.
호시노 상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영상 속에서 불꽃이 터지고 있었습니다. 콘서트의 열기로 울긋불긋하게 물든 멕시코의 하늘이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각 뉴스에서는 트럼프가 이란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일 것이라는 속보가 흘러나왔습니다. 불꽃이 한쪽에서는 축제의 절정이고, 다른 쪽에서는 폭격이었습니다. 같은 밤하늘 아래서 어떤 불빛은 환호를 부르고, 어떤 불빛은 비명을 부릅니다.
세계는 하나의 지도라기보다 보이지 않는 신경망에 가깝습니다. 호시노 상이 이전 편지에 썼던 파블로 네루다의 시도 다시금 선명하게 읽혀 놀랐습니다. 마치 마추픽추에서 인왕산으로, 인왕산에서 후지산으로 언어의 섬유가 이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외계에서 본다면 이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고치처럼 보일지도 모릅니다.
최근 저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위트앤시니컬이라는 서점에서 ‘일본 시인 강독’ 수업을 했고요. 첫 회로 후즈키 유미 시인의 시를, 지난주에는 오은 시인과도 대담을 나눈 적 있는 요쓰모토 야스히로 시인의 시를 읽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사가와 치카 시인의 시도 읽었습니다. 그리고 도쿄 체류중에 쓴 교차일기 최종고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겨우내 방안에는 책 무더기가 작은 탑처럼 쌓였습니다. 저는 먼지가 뽀얗게 쌓인 고무나무 잎사귀를 닦았습니다. 동그란 스툴 위에 유골함과 고양이의 사진을 넣은 액자를 놓았습니다. 삼 년 전만 해도 집에는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습니다.
새벽에 습관처럼 깰 때마다 저는 첫째 고양이 ‘이응’의 부재를 느낍니다. 이응이는 통통해서 앞에서 보아도 둥글고 뒤에서 보아도 둥글었습니다. 그래서 한글 자음 ‘ㅇ’에서 따온 이름입니다.
이응은 어김없이 새벽 네시 반에서 다섯시 반 사이 저를 깨웠습니다. 침대 발치에서 저를 부르곤 했지요. 그러면 저는 침대를 두어 번 두드립니다. 그리고 팔을 동그랗게 말아 둥근 자리를 만듭니다. 이응이는 그 곡선 안으로 몸을 쏙 밀어넣었습니다.
호시노 상, 이응이는 저와 가장 많은 잡담을 나눈 존재였어요.
이응이는 쾌변하고 난 뒤에는 갑자기 기운이 솟은 듯 ‘우다다다!’ 달렸습니다. 그리고 양반집 대감님처럼 워어어! 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마치 “어서 저 숭한 것을 치우거라!”라고 하인에게 호령하는 것처럼요.
이응에게 저는 머리 부분에만 긴 털이 난 채, 나무 냄새 나는 무언가를 골똘히 들여다보는 존재였을까요? 물론 제 감정을 투사한 것일 뿐입니다. 그 에메랄드빛 눈동자는 어떤 정답도 주지 않았습니다. 몸짓이 곧 언어였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응이를 마음껏 오해할 자유를 누렸습니다.
이응이는 호오오, 하고 깊은 숨을 세 번 쉬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그뒤로 며칠 동안 집이 조금 기울어진 것 같았습니다. 고양이 밥그릇은 그대로인데 사료가 줄지 않았습니다. 모래가 깔린 화장실도 제자리에 있지만 발자국이 남지 않았습니다. 새벽 네시 반쯤 되면 저는 여전히 눈을 뜹니다. 팔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쩌면 집이란 함께 사는 존재들의 숨이 빚어낸 자리일지도 모릅니다. 그 숨이 빠져나간 빈칸을 손바닥으로 쓸어보았습니다.
지난 편지에 썼던 조카의 집에도 고양이가 있습니다. 본가에 놀러갔다가 형부가 구조한 고양이 ‘청이’입니다. 아기는 청이와 사이좋게 지냅니다. 조카 말로는 청이가 공동 육아를 한다고 합니다. 묘생 선배처럼요.
호시노 상이 썼던 ‘인간’과 ‘사람’을 나누는 기준이 언어라면, 고양이와 아기는 동위입니다. 그러니까 아기는 아직 인간의 언어를 습득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지난 편지에서 호시노 상이 언급한 쓰시마 유코 작가의 오빠 이야기, 인간의 진폭을 확장하는 인식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고양이는 위로나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오해를 이해로 바꾸려 애쓰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인간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이응이를 대했습니다.
호시노 상이 식물 쪽으로 향한다면, 저는 동물의 육체 쪽으로 기우는 것 같습니다. 동물은 저에게 친족처럼 느껴집니다. 어릴 적부터 다양한 동물과 함께 살아왔기 때문인지, 아마 신경 구조가 비슷한 동물들의 고통이 더 생생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한번은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밤에도 가로등이 켜져 있으면 벼가 잠을 못 자서 쌀이 여물지 않는다.”
그것을 ‘불임’으로 읽는 제가 징그럽게 느껴졌습니다. 식물에까지 육체성을 대입하면 더 끔찍한 상상이 이어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식물에 대해 상상하기를 조금 미뤄두었습니다. 그저 그대로 존재한다고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삼 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둘째 고양이 ‘배호’가 떠올랐습니다.
배호는 지금쯤 인왕산 하늘을 떠나 어디론가 가고 있을 겁니다. 호시노 상의 시도 뿌려주었으니 잘 가고 있겠지요. 부겐빌레아의 뿌리에 스며들었을 수도 있고, 대한해협을 건너는 철새와 함께 날아갔을지도 모릅니다. 호시노 상이 쓰시마 유코 작가와 이야기를 나눴듯이 저는 이따금 배호에게 말을 겁니다.
배호는 이미 저 머나먼 우주의 한 점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우주는 그런 점들의 집합인 듯합니다. 저는 신이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 에너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이마가 조금 환해집니다. 비유 이전의 어떤 상태.
그래서일까요. 호시노 상, 저는 전부터 언어의 포박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세번째 시집 『백장미의 창백』에 이런 시를 실었습니다.
광수 아버지는 국가유공자다 월남전에서 왼팔을 잃고 돌아왔다
그의 의수를 똑바로 본 적은 없다
광수 아버지는 광수 아버지여서 광수 아버지라고 쓰지만
그것이 사실이지만
상희 아버지나 종수 아버지로 바꿔 쓸 수도 있다
그가 못 통 속의 못처럼 고개를 구부리고 걷는다는
사실을 비유로 써도 될까
추곡 수매 공판장에서 쌀가마니를 찍을 때 그의 갈고리가
은갈치처럼 빛났다고 써도 될까
나의 비유는 도금한 훈장처럼 잠깐만 빛난다
언어의 안팎을 뒤집어 다시 쓴다
광수 아버지가 아닌 것이 되어
광수 아버지가 광수 아버지로 가닿으려고
광수 아버지는 광수 아버지고 월남전에서 왼팔을 잃고 돌아왔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사실이다
―「비유로서의 광수 아버지」
이 시 속의 인물은 가공이 아닙니다. 제 친구의 아버지입니다. 가명을 썼다가 실명을 썼다가 다시 가명으로 바꿔 썼습니다. 저는 그를 시로 가져오며 소재처럼 소비한 것은 아닌지 자주 돌아봅니다. 연대를 말했지만, 어쩌면 안전한 문장 안에서 가책을 덜어내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행동’이라는 명분 역시 때로는 자기변명처럼 들립니다. 문학이라는 성벽 안에서만 가능한 연대라면, 그런 이야기는 뉴스로도 충분할지 모릅니다. 제 안에는 검열자가 있습니다. 그는 좀처럼 검열을 멈추지 않습니다.
저는 생각을 멈추려고 몸을 움직였습니다. 책장을 정리했습니다. 창가의 화분에 물을 주었습니다. 그래도 멈추지 않아 먼지를 털고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소파 아래에는 동그란 털 뭉치가 있었습니다. 외투를 입고 집 근처 유기 동물 보호소로 향했습니다. 외투에 고양이 털이 몇 가닥 붙어 있었습니다. 저는 기울어진 몸으로 걸었습니다. 호시노 상이 썼던 “문자의 입자”가 사방에 흩어져 있는 것 같았습니다. 상실의 빈칸을 다른 것으로 채우기 어려웠습니다. 이런 것이 삶이라면, 차라리 통째로 삼켜버리고 싶었습니다. 걸어가다 무릎이 꺾여 잠깐 서서 쉬었습니다. 그걸 반복했습니다.
의미로 포박하는 일 따위는 버리자.
존재를 있는 그대로 애도하자.
이응이의 체온 그대로.
배호의 눈빛 그대로.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언어의 바깥으로 나갈 수 없음을 압니다.
보호소 안에는 주로 개들이 많았습니다. 봉사자 신청을 하면 청소를 하거나 개를 산책시킬 수 있습니다. 큰 개들은 철창에 갇혀 있고 작은 개들은 조금 넓은 유리 공간 안에 있습니다. 저는 유리 너머의 개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북한산에서 구조된 강아지 ‘누리’가 촉촉한 밤색 코를 구멍으로 들이대며 제 손바닥 냄새를 맡았습니다. 위층에는 유기묘가 있습니다. 잠시 망설이다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몇 년 전 제주도에 낭독회를 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 동네는 흑돼지구이가 유명한 관광지였습니다. 간판에 웃는 돼지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불판 위에 삼겹살을 굽는 돼지였습니다. 인간은 왜 다른 종의 살을 씹으며 맛을 느끼는 미뢰를 갖게 되었을까요. 저는 그들을 의인화하거나 희화화하며 비유를 낭비해왔습니다. 한 가게 앞에서 우뚝 멈춰 섰습니다. 간판에는 “바다를 본 돼지”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때 쓴 시를 일부 옮겨봅니다.
돼지와 나는 해변에 앉았다
어깨동무하고
수평선을 보며
사냥의 재미를 모르는 종으로
다시 태어나자고
백사장이 하얗게 마른다
홍조단괴*
서빈백사**
돼지에게
인간의 말을 들려주었다
(……)
인간에게만 어여쁜 말을
―「돼지와 나」 일부
돼지라고 하면 잊을 수 없는 장면이 하나 있습니다. 어릴 적 저는 개울가에서 돼지를 잡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돼지가 앞발을 번쩍 들고 두 발로 걸었습니다. 돼지는 비틀거리며 몇 발짝 걷다가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그 울음이 사람의 울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훨씬 나중에 저는 뉴스에서 또다른 장면을 보았습니다. 한국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했을 때 수많은 돼지가 살처분되는 영상이 흘러나왔습니다. 인부들이 굴삭기로 땅을 파고 돼지를 밀어넣은 뒤 흙을 덮었습니다. 그 영상을 끝까지 보지 못했습니다. 오십만 마리가 넘는 돼지가 매몰되었습니다. 그 숫자가 너무 커서 저는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호시노 상이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 이후 말이 사라졌다고 쓴 것과 비슷했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한 마리 돼지의 울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숫자를 잊을 수 없습니다. 숫자는 점점 커지지만, 돼지의 울음은 늘 한 마리의 목소리로 들립니다. 호시노상이 304 낭독회에서 「신월」을 읽으며 떠올린 ‘개별적인 한 명’처럼, 그 한 마리의 생생한 울음이 제게도 남아 있습니다. 그 울음을 들은 뒤에도 저는 다시 밥을 먹고 살아갑니다. 젖꼭지가 붙은 돼지껍데기를 불판에 굽습니다.
저는 여기까지 쓰고 멈췄습니다.
호시노상, 한 마리의 울음을 알고 난 뒤에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세계를 읽고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문학은 그 울음을 기록하는 일일까요.
아니면 끝내 잊는 법을 배우는 일일까요.
우리가 세계라고 부르는 것은 어쩌면 이런 울음들이 모여 이루어지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세계를 ‘인간 이외의 괴(怪)’라고 불렀습니다. 제가 ‘인간 이외’라고 부르는 곳은 이런 존재들의 자리일 것입니다. 말을 배우기 전의 아기, 말이 필요 없는 동물, 그리고 가끔 언어의 바깥을 바라보는 인간. 그 세 존재가 나란히 겹치는 공간입니다.
저의 시 속에는 이런 장면들이 나타납니다. 사람을 벗고 처음 보는 짐승이 되어 달리고 싶어 하거나(「댐 옆의 붉은 다리를 건너자」), 인과가 뒤집힌 세상에서 동물과 식물, 죽은 자와 산 자가 함께 잔치를 벌이기도 하고(「꼭두전」), 제가 먹었던 동물들과 함께 신의 위장 밖으로 쏟아지기도 합니다(「방죽 위」).***
그러고 보니 예전에 인터넷 기사에서 ‘노상문학상’에 관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문학을 책상 위가 아니라 길 위에서 시작하게 된 마음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괜찮다면 다음 편지에서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존경하는 시인이 있습니다. 해방촌에 사는 황인숙 시인입니다. 시인께서 이 글을 읽는다면 “얘는 존경은 무슨 존경이냐! 진짜 낯간지럽다” 하고 어깨를 툭 치며 나무랄지도 모릅니다. 저도 시인께 존경한다는 말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황인숙 시인은 매일 길고양이 밥을 챙깁니다. 무릎까지 눈이 쌓인 날에도, 눈앞이 뿌예질 만큼 비가 퍼붓는 날에도 거르지 않습니다. 어쩌다 밥을 주지 못하는 날이면 미리 부탁할 사람을 구해둡니다. 거의 백 마리에 가까운 길고양이에게 밥을 준 지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그 길을 몇 번 따라간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돕겠다는 핑계로 따라갔지만, 시인께는 거추장스러운 선의였는지도 모릅니다. 황인숙 시인은 항상 곱슬곱슬한 머리를 숙이고 책을 읽습니다. 신상품 과자가 나오면 눈을 빛내며 “이거 꼭 먹어봐. 다른 사람 주지 말고 너 혼자 먹어” 하고 건넵니다.
지난겨울 매서운 한파가 지나간 뒤 오랜만에 시인을 만났습니다. 시인은 말했습니다.
“엊그제는 정말 비참할 정도로 춥더라.”
비참이라는 말은 그렇게 시린 말이었습니다.
겨울에는 물이 금방 얼어버립니다. 그래서 시인은 이웃에게 부탁해 따뜻한 물을 받아옵니다. 시인이 사료와 간식을 담은 밀차를 끌고 나오면 배고픈 고양이들이 알아보고 다가옵니다.
늦은 시각 고양이 밥을 챙기고 있을 때 한 아저씨가 다가왔습니다.
“저기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어가니까 가봐요. 밥 주면 그런 것도 하지 않나?”
저는 덜컥 겁이 났습니다. 시인의 얼굴에도 피로한 기색이 스쳤습니다. 그가 가리킨 공원에는 노숙인 서너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피 흘리는 고양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 고양이의 피가 묻었습니다. 그는 계속 고양이를 쓰다듬었습니다. 그의 품에서 고양이는 이내 숨을 거두었습니다.
저는 눈을 질끈 감고 집으로 가고 싶었습니다. 황인숙 시인은 길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습니다. 그때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해방촌에는 백팔 계단이 있습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백팔번뇌와 같은 숫자의 계단입니다. 그 계단을 올라가면 가파른 언덕 끝에 시인의 집이 있습니다. 몇 년 전부터 엘리베이터가 생겨 그것을 타고 올라가곤 합니다. 황인숙 시인도 엘리베이터를 탑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곳에 갈 때면 백팔번뇌를 떠올립니다. 시인이 하루도 빠짐없이 길고양이 밥을 챙기러 나서는 모습을 보면, 그 반복이 마치 계단을 하나씩 오르는 고행처럼 느껴집니다.
어떤 날에는 새벽까지 밥을 주기도 합니다. 지쳐서 한 걸음 내딛기도 힘들어 보이는데 시인은 저를 끝까지 배웅합니다. 그럴 때 저는 이유를 알 수 없는 화가 납니다. 저 백팔 계단 끝에 무엇이 있기에 이 가혹한 세상 속으로 나서야 할까요.
이것은 호시노상이 쓴 시,
“주검을 죽이는 가엾은 고통 속으로 손을 밀어 넣는” 일인가요.
그 어느 쪽에도 확실히 서지 못한 제가 비겁하게 느껴집니다.
시인이 사는 옥탑에 매달린 고드름.
그 고드름은 이제 녹았습니다.
눈 녹아 질척한 길을
제가 사랑하는 시인은 오늘도 오를 것입니다.
미로처럼 복잡한 해방촌 골목길.
그 오르막에서 가쁜 숨을 내쉬겠지요.
그래요. 호시노 상이 썼듯이
“언어만이 언어 밖을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전히 당신에게 편지를 씁니다.
고드름이 녹아 맺힌 한 방울,
그 차가운 질문이 정수리에 떨어집니다.
2026년 3월 11일(水)
서울에서 신미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