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팅을 마치고 K선에 올라탄 시각은 저녁 일곱시. 열차의 혼잡도는 최악이었다. 도플갱어를 만났는데도 자리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앉아 있었다던 말이 떠오를 정도로. 나는 운좋게 자리에 앉았지만, 곧 도플갱어보다 강력한 변수가 나타났다. 술냄새가 진동하는 취객이 들어와 비어 있던 임산부석에 앉았는데 그게 하필 내 옆이었다.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았음을 차분하게 알리고, 통화를 끝낸 후부터 급속도로 취하기 시작했다. 자리가 딱딱하다, 사람이 너무 많다, 지금 어디로 가는 것이냐,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 것이냐…… 급기야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우렁찬 목소리로 “출발해!”라고 외치기까지 했는데,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한 소리에 나는 결국 일어섰다.
출입문 위쪽에 지하철 노선 안내도가 붙어 있었다. 1호선은 남색, 2호선은 초록색, 3호선은 주황색, 4호선은 파란색…… 색색의 선은 모두 서른여덟 개나 되었고, 그중 핑크색으로 표시된 선만 네 개, 회색으로 표시된 선이 세 개였다. 이제는 색상만으로는 구분이 어려웠다. 눈을 감았다 뜨면, 지하철 노선들은 마치 삶아놓은 스파게티 타래처럼 같은 재질로 보였다. 노선도 위에 소스를 부어 다 버무리고 싶을 정도로. 시선을 옆으로 돌리니 명랑한 글씨체로 적힌 광고판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통통하게 부풀기를 꿈꿔요!’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퀵오트 광고였는데, ‘통통하게’란 단어가 적절한가? 체중 관리를 위해 오트밀을 챙기는 사람들도 많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나는 그 글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통통이라는 단어가 주는 리듬감이 좋았다. 어쩌면 납작하게 눌린 귀리 낱알에 감정 이입이 되었는지도 모르고. 그 순간, 누가 나를 세게 치고 지나갔다. 출입문이 닫히기 직전, 뒤늦게 총알처럼 튀어나간 사람이었다. 그와 부딪히는 바람에 손에 들고 있던 짐을 놓쳐버렸다. 얼른 주워올렸지만 안에 든 무언가가 이미 아래로 떨어진 후였다. 아래로, 그러니까 열차와 플랫폼 사이 틈새로.
“출입문이 닫힙니다. 열차 출발합니다.”
얼결에 플랫폼으로 내려서자 열차는 서둘러 달아났다. 그 많던 사람들은 어느새 위층으로 올라가버렸고, 텅 빈 플랫폼에는 덩그러니 나 혼자였다. 목적지도 아닌 곳에. 내가 빠져나온 출입문이 3-3이었나 3-2였나. 스크린도어 너머는 잘 보이지도 않았다. 선로를 보기 위해 유리창에 가까이 다가가자 뒤로 물러나라는 메시지가 울렸다.
그 역이 K3이었다. 행사 때 생존배낭 오밀조밀을 전시할 장소이기도 했는데 바로 그곳에서 부속 하나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사라진 것은 단 하나, 제발 그것만은 아니기를 바랐던 홀튼사社의 양말이었다. 까탈스러운 거래처에서 겨우 얻은 샘플을 잃어버렸다고 하면, 선로 위에 흘렸다고 하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 그걸 왜 복잡한 열차에서 꺼내들었느냐고 하겠지. 누구도 실수를 실수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저 아래로 떨어뜨린 것은 단순한 양말 하나가 아닌 것이고. 스크린도어 쪽으로 다가가자 또 경고 메시지가 울렸다.
휴대폰을 들고 유실물 등록 정보를 찬찬히 입력했다. 떨어진 것은 양말이고, K3에서 K10 쪽으로 가는 방향의 3-2 출입문에서이며, 유실을 인지한 시각은 오늘 오후 일곱시 이십분경…… 질문이 무려 서른두 개나 되었고, 마치 응답자의 일관성을 시험하려는 것처럼 같은 질문을 약간씩 변주해서 거듭 묻기도 했다. 답은 선택지 중에서 고르는 방식이었는데 ‘기타’ 항목조차 없었다. 어디로든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상황을 설명하고 싶었지만, 역무원과 유선상으로나마 연결되는 길이 어찌나 지난한지 웬만하면 제공된 형식 안에 요구 사항을 욱여넣는 게 낫다고들 했다. 이윽고 내용이 접수되었다는 알림이 떴다. ‘48시간 이내에 연락드리겠습니다.’
사십팔 시간이라니! 결국 안주임에게 연락을 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말을 잘라먹던 안주임이 어쩐지 뜸을 들이더니 “우리 다이버한테 얘기해둘게요. 열차 운행 다 끝나야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일단 기다리세요!” 했다. 잠시 후 내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안녕하십니까, 역무원의 얼굴 한태오입니다. 열차 운행 종료 후 접수하신 내용 확인하고 다시 회신드리겠습니다.”
얼굴이라니, 무슨 얼굴?
K선의 열 개 역을 담당하는 역무원은 안주임을 포함해 모두 세 명이었다. 과거에는 안주임이 K1의 역무원이었다면, 이제는 K1의 역무원이기도 하고 K2의 역무원이기도 하고 K3의 역무원이기도 했다. 그렇게 K10까지 맡았고, 같은 회사의 다른 노선들도 비슷했다. 이제는 어느 역에서도 승객과 역무원이 직접 대면할 수 없는 것이 기본값이 됐다. 대면할 필요가 없었다. ‘승객이 인지하기 전에’가 그들의 모토였는데, 이를테면 휠체어나 유아차를 싣기 위해 움직일 때도 역 입구에서 열차 내부까지 터치 세 번이면 연결되는 식이었다. 이전보다 더 빠르고 편리해졌다는 것이 회사의 자부심이었다. 수신호조차 자동 시스템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역에서 직원들을 마주칠 일이 없고, 있다면 오히려 비상 상황이란 얘기였다.
역무원이 들고 다니는 태블릿으로 시스템 원격 조정이 가능하지만, 만약 여러 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긴급 상황이 생긴다면? 역무원은 그곳 모두에 자신이 갈 수 없음을 인지한 후 최대한 빠르게 역할을 분배해야 했다. 버튼을 눌러 경찰이나 외주업체가 그곳에 닿을 수 있도록 대응하는 것이 역무원의 임무였다. 당연히 매뉴얼이 훨씬 두꺼워졌다. 안전실 벽에는 새로 인쇄된 매뉴얼이 수배자 명단처럼 붙어서 나풀거렸고, 몸에 익기도 전에 새로운 지침이 생겼다. 십 년쯤 지나야 올 것 같던 변화가 이렇게 갑작스럽게 닥쳐왔다.
K선 역무원들의 평균 나이는 오십 세로, 한동안 안주임이 가장 막내였다. 이십대 후반에도 그랬고, 삽십대를 거쳐 사십대 후반에 접어들었을 때까지도 여전히 그녀가 가장 막내였다. 삼 년 전 K선 열 개 역의 안전실을 하나로 통합할 때 회사는 인력 충원을 약속했지만 예산이 부족하다며 계속 미뤄왔다. 같은 이유로 임금도 몇 년째 동결이었다. K선을 이용해 출퇴근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그 시간대가 아닐 때는 열차가 텅텅 비었다. 그래서 회사는 거의 적자였고, 어찌저찌 빚을 다 갚은 뒤에도 자질구레한 재정적 위기들이 계속 닥쳐왔다. 개가 짖어서, 바람이 세게 불어서, 택배가 와서…… 이유는 갖가지였다.
“그런데 택배가 왜요?”
“K3 1번 출구로 택배가 왔거든요. 보통 K5로 와야 하는데요. 안전실이 K5에 있으니까요. K3으로 왔다는 것 자체가 시스템에 구멍이 생겼다는 뜻이죠. 아시다시피 K3은 B9기도 하잖아요. 환승역인데다가 다른 회사랑 공유도 하는 역인데, 여기로 오면 문제가 커지는 거죠. 물론 이건 회사의 입장이고요. 연말에는 K9에 정체불명의 비행물체가 나타났다고 위기 발표를 했어요.”
“뭐죠, 드론인가요?”
“연! 나무에 연이 걸렸는데 제거 작업에 예산이 들어갔다고요. 아아, 진짜 이유도 가지가지 아닙니까?”
우리 회사도 좋은 상황은 아니었지만 안주임네는 더했다.
“그러던 곳에서 왜 갑자기 인턴을 뽑은 거예요? 이제 택배도 제대로 오고 비행물체도―”
“더 큰 게 불어온 거죠. 외풍!”
역무원을 대면할 수 없는 방식에 대한 문제 제기는 전부터 있었지만 그것을 더는 무시할 수 없는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던 것이다. 어느 역에서 발생한 화재 사건을 계기로 전국 대중교통의 재난 대비 실태 점검이 있었고, 지하철 세 개 노선을 운영하던 회사는 거의 최하위에 가까운 점수를 받았다. 내구연한을 한참 넘긴 방독면과 방연 마스크, 무엇보다도 ‘방독면 비치는 의무가 아니라 권고 사항’이라던 회사 대표의 발언 때문에 여론이 악화되었다. 의무 사항이 아닌 것은 사실이었지만 온라인에서는 ‘승객이 인지하기 전에 눈치 챙기세요’ ‘승객이 인지하기 전에 회사 문을 닫습니다’ 하는 식의 밈이 이어졌다. ‘승객이 인지하기 전에 바퀴를 하나 뺍니다’ ‘승객이 인지하기 전에 문짝 하나 떼어갈게요’……
이런 분위기에서 정부가 거듭 대중교통 종사자들과 승객의 밀착 대면을 강조하자 회사는 결국 일 년간의 채용 연계형 인턴 마흔 명을 선발했다. 이중 일부는 정규직으로 전환된다고 했다. 이른바 ‘역무원의 얼굴’ 프로젝트. 다만 전환율이 얼마인지, 근무 평가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중요한 정보를 누락한 채로 채용 과정을 중계해서 뒷말이 많이 돌았다. 서바이벌 예능 같다는 평도 있었다. 어쨌든 이 인턴십의 경쟁률은 267:1이었다.
그렇게 선발된 단기 인력들은 K선 열 개 역을 순회하며 승객들을 만났다. 승객을 만나기 위해 움직인다는 점이 이전과 달랐다. 승객 앞에 나타나 직통 라인이 되는 것. 물론 승객의 요구나 희망 사항에 대해 바로 조치할 수 있는 게 많지는 않지만, ‘담당자에게 바로 전달하겠습니다’ ‘확인해보겠습니다’와 같은 말을 하면서 여기 사람이 있다,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 하는 인상을 전해주는 일이었다. 눈앞에 역무원이 나타나자 민원이 불어났다. 복잡한 방식으로 열어야 하는 문 앞에 그립감 좋은 손잡이가 생긴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그들이 가져온 활력이 분명히 있었으나 안주임은 이런 식의 활동도 결국 구색 맞추기라고 했다. 회사는 그야말로 ‘역무원의 얼굴’이, 맨 앞에 걸어둘 터치패드가 일시적으로 필요했을 뿐이고, 그 터치패드가 꼭 회사 내부와 긴밀히 연결될 필요도 없었다고.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태오는 일 년의 인턴십 기간 중 칠 개월째에 접어든 상태였다. 그는 주로 유실물 관리를 도맡았고, ‘다이버’로 통했다. 2미터 길이의 집게를 들고 선로를 휘젓는 영상 때문에 ‘K선의 2미터 집게’라는 별명도 생겼다. 모든 열차가 잠든 밤이 되면 그는 거대한 집게를 들고 플랫폼으로 내려갔고, 선로에 떨어진 물건을 건져올렸다. 사람들이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흘린 물건들은 휴대폰, 지갑, 이어폰, 서류 봉투까지 다양했다. 승객이 분실 지점을 대충이라도 기억해낼 수 있다면 그것들을 밤의 집게로 건져올리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추락과 동시에 망가지는 것들도 있었지만.
막차가 운행을 끝낸 후에 선로로 내려간 다이버는 양말을 찾아냈다. 한 짝뿐이었지만, 그리고 하루가 아니라 한 달쯤 방치된 듯 보였지만, 녹색 양말은 그것뿐이었다. 아니, 양말이란 그것뿐이었다. 양말은 흔한 유실물은 아니었다.
그는 오전 여섯시에 안전실로 찾아온 승객에게 그 양말을 보여주었다.
“혹시 이건가요?”
그렇게 내 앞에 두 개의 거짓말이 놓였다. 하나는 그것이 내가 찾는 양말이라고 말하는 것, 다른 하나는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 두번째도 왜 거짓말인가 하면 애초에 ‘내가 찾는 양말’이란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한참 후에야 알아챘으니 난감했다. 오밀조밀에 달린 아홉 개의 주머니, 그중 하나를 놓쳤던 것이다. 히든포켓이라고 부르는 작은 주머니인데, 설마 해서 손을 넣어보니 얄궂게도 무언가가 만져졌다. 양말이 그 안에 들어 있었다. 이름대로 히든포켓은 쉽게 드러나는 구조가 아니었지만, 내가 이 배낭의 기획자라는 것을 생각하면 더 어이가 없었다. 안주임에게 다급히 부탁했던 그 상황이 부담스러워 두번째 거짓말을 택하지도 못했다. 다이버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첫번째 거짓말을 선택했으면 될 텐데 그러지도 못했다. 왜 그랬을까.
그는 두 번이나 돌아봤지만 양말은 이것뿐이었다면서, 내일 또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재차 열차 방향과 물건을 떨어뜨린 위치를 다시 물었다.
“보통은 위치를 혼동하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내일도 안 보이면요?”
“장기 미제 목록으로 옮겨야죠.”
“그냥 괜찮으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다시 구하면 돼요.”
스스로도 필요 이상으로 말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그렇다면 다행이에요”라고 말하면서 실은 그런 목록이 따로 있진 않다고 했다.
“못 찾으면 제 꿈에 나오더라고요.”
“꿈이 장기 미제 목록이로군요.”
그렇게 양말은 두 개가 되었다. 하나는 실재하는 양말, 다른 하나는 그의 꿈속에 보관된 가상의 양말. 선로에 떨어뜨린, 아니 떨어뜨리지도 않은 양말 때문에 나는 그를 만나게 된 것이다. 두고두고, 그 양말이 그의 꿈속에 들어간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생각했다. 양말이야 만 켤레 중 하나가 되겠지만, 꿈은 오롯이 일인용이니까.
러닝 코스를 답사하기로 한 주에 호우경보가 세 차례나 발효되었다. 지하철 회사의 인력들은 몇 달 전 침수 피해가 있었던 역사를 점검하느라 바빴다. 시설물을 고정하고 배수로를 정리하고 관련 기관에 전달할 것들을 체크하느라 교대 순번이 꼬일 정도로 비상이었다. 그래도 러닝 코스 답사를 더 미룰 수는 없었다. 대회를 앞두고 주관사는 주관사대로, 협찬사는 협찬사대로 바쁘게 돌아갔는데 모두가 우려하는 변수는 날씨였다. 안주임은 “얼굴을 붙여줄게요!” 하고는 가장 소통이 잘될 거라며 한태오를 연결해주었다. 말수가 적은 친구들이 많은데, 한태오는 싹싹하고 유머러스하니 편할 거라면서. 게다가 이미 구면이니까.
“97인가 98인가 그런데, 출생 연도를 속인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달까요. 80년대 초반생 같다는 평이 지배적이에요. 지나치게 삼행시를 좋아하는 것도 수상하고. 걸핏하면 운을 띄워달래. 아니, 근데 왜 저렇게 앉아 있는 거지?”
안주임이 가리키는 식당 야외석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다. 음식점의 개업 축하 화분이 리본을 펄럭이는 자리 바로 앞이었다. 아직 비가 시작되지는 않았지만 바람이 많이 불었고, 그때마다 투둑투둑투둑…… 커다란 리본 자락이 그의 뒷덜미를 리드미컬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마치 경추 마사지를 받는 사람처럼 그렇게 앉아 있는 모습이라니. 그때 내 감정의 나사가 살짝 풀어져 느슨해졌는지도 모른다.
태오와 나는 거래처 관계였지만, 그보다 우리 사이를 더 정확히 설명할 수 있는 말은 홍해파리였다. 그날부터 홍해파리는 우리 대화의 고명처럼 쓰였다. 이거 조금 홍해파리 같은 얘긴데, 이런 홍해파리 같으니라고…… 그러면서 오래전 풍경들을 소환하는 것이다. 도서대출카드나 비디오 대여점의 간판, 필름카메라, 지나간 시절의 라디오와 주말의 TV 편성표 같은 것. 영화와 음악은 그렇다 치더라도 라디오마저 그 시절 것을 좋아한다는 게 좀 신기했다. 그의 휴대폰에는 오래전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부터 그 시절의 뮤직비디오, 광고 파일들이 담겨 있다고 했다. 바로 재생되는 동시대 것이 이렇게나 많은데 굳이 오래전 것을 찾아 보고 듣는 일이 그에겐 조금도 수고롭지 않았다. 시간 여행 같은 것인가?
태오에 따르면, 홍해파리는 성체가 된 후에도 필요에 따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한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외부 환경이 좋지 않다고 느끼면 성체로 살아가기를 멈추고 다시 유년기로 숨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것이 성체 이전의 폴립 형태로 돌아간다. 몸을 뒤집어 밖으로 드러난 촉수들을 내부로 밀어넣고 아이가 되는. 그러고는 정말 시간을 되돌린 듯 거기서부터 현재를 다시 시작한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대신 웅크려 폴립 시기를 보내고, 또 한번 삶을 도모한다. 촉수를 외부로 길게 드리운 메두사가 될 때까지. 인간의 삶에서 그런 태도는 낙오나 도태로 평가되겠지만 홍해파리의 세계에서는 나름의 전략이다. 놀라운 건 홍해파리의 회춘 카드에는 횟수 제한도 없다는 점이다. 언제든 성장을 멈추고 지연시키면서 삶을 무제한으로 운용할 수 있기에 불멸의 상징으로도 통한다.
“중요한 건 그게 세포 수준이 아니라, 집단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라는 거죠. 혼자만 젊어지는 게 아니고, 같이 젊어진다는 것? 그게 인간에게는 노화를 막을 힌트로 보이는 것이고.”
“걔네 근사하네요.”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홍해파리 활동을 하나봐요. 편안한 벽에 붙어서 풍파를 견디는 거죠. 홍해파리 폴립처럼요.”
“그 벽이 90년대란 말이야? 그렇다면 나는 그 벽 반댈세.”
안주임이 말했다. 태오는 어깨를 으쓱했다. “벽이 좀 많아요. 이 벽, 저 벽.”
“90년대는 과대평가됐어요. 내가 느낄 때는 야만의 시대였다고.”
79년생인 안주임은 자신이 겪었던 그 시절을 요즘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억울해서 못 산다고 했다. 90년대 이미지를 소비하는 것과 그 시절을 살아낸 것은 다르다면서. 갑자기 전화가 울려 그녀는 서둘러 안전실로 들어가버렸고, 나와 태오만 식사를 계속했다.
“왜 그 시기를 동경해요? 저는 88년생인데도 90년대 문화는 잘 모르는데.”
“제 친구는 70년대 좋아합니다.”
“다 복고풍이군요.”
“그 시대의 공기가 좋은 거죠. 저한테 90년대는 뭐랄까, 어딘가 부유하는 느낌이 있어요.”
“부유해 보인다고요?”
“팔을 사방으로 휘저으면 손끝에 뭔가가 걸릴 것 같은 공기라고 해야 되나? 그런 거.”
“아아, 둥둥 떠다니는 부유?”
전혀 다른 의미의 부유를 떠올렸던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웃었다. 태오는 “아, 부티. 리치! 그런 거 생각하셨구나. 뭐, 그 부분도 어느 정도…… 확실히 문화적으로는 풍요로웠잖아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면서 새로 시작된 게 많았으니까요. 지금은 웬만해서는 사람들이 안 놀라요” 하고는 반달 모양 단무지를 집어 한 입 깨물었다.
“저기, 단무지 한 입씩만 베어먹은 거 지금 그 접시에 두 개나 더 있는 거 알죠?”
그는 자신의 접시 위에 놓인 ‘한 입 먹은 단무지’ 두 개를 보고는 말했다.
“일부러 모은 겁니다. 모아 먹어야 더 새콤달콤하거든요.”
그러더니 젓가락으로 단무지 세 개를 야무지게 겹쳐 입안에 넣었다. 아삭아삭 소리가 경쾌하게 들렸다.
창밖으로 열차가 지나갔다. K선 중에서도 지상으로 다니는 구간이 두 군데 있었고, 이 식당에서는 열차 소리가 잘 들렸다. 오후 열한시 사십분에 그날의 마지막 열차가 K3에 삼십 초간 멈췄다 떠나간다. 열한시 사십사분에는 K4에 정차하고, 열한시 사십칠분에는 K5에 닿는다.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역무원들은 역을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점검할 필요가 없다. 카메라가 닿지 않는 사각지대는 없기 때문에.
그의 퇴근은 실질적인 이동을 몇 차례 거친 후 곧 또다른 출근으로 이어진다. 그는 꿈에서도 역무원이니까. 현실에서 그는 K선 열 개 역을 오가는 역무원이지만 꿈에서는 역 하나를 온전히 지키며, 오래전 그가 상상했던 방식으로 일한다. 막차가 떠난 뒤, 혼자 때로는 동료와 함께 그날의 늦은 순찰을 하는 것이다. 화장실도 하나하나 확인하고 플랫폼도 구석구석 돌아본다. 누군가 있다면 얼른 밖으로 내보내고, 아무도 없다면 그대로 버튼을 눌러 역사 셔터를 내린다. 지금은 모두 기계가 하는 업무들이지만 그의 꿈은 90년대의 속도로 움직였고, 그것이야말로 그가 가장 좋아하는 홍해파리 활동이었다. 그러다 꿈에서 깨어나면 진짜 하루가 시작된다. 가끔 이쪽이 꿈이 아닐까 의심스러운 하루가.
“꿈에서도 일하는 거예요? 과로인데!”
“출근하고 싶어서 안달하는 상태죠. 그 꿈을 꾸고 싶어서요.”
꿈에서 그는 자신이 담당하는 역의 이름을 모르는 역무원이다. 매번 역사 이름을 확인하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꿈에서 깨버리기 때문에 어느 시점부터는 자신이 근무하는 역의 이름을 알기를 포기했다. 이름을 아는 것보다 그 안에 머무른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그래도 근무하는 곳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게 그의 꿈에서 반복되는 숙제였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방식은 아니고, 소분해서 날마다 조금씩 수행하는 성실한 모험에 가까웠다.
창밖에서 열차가 또 한 대 지나갔다. 금을 긋듯이. 태오가 테이블에 냅킨 한 장을 펼쳐놓더니 펜으로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 이게……”
“홍해파리?”
“아니, 러닝 코스요, 우리 대회요!” 그가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그러더니 곧 “과장님도 같은 과예요. 홍해파리” 하고 덧붙였다.
“저요?”
“보면 알아요.”
나는 꿈도 꾸지 않고, 90년대도 동경하지 않는데 무슨 뜬금없는 얘기인가 싶었지만, 나를 같은 과로 분류한 태오의 표정 때문에, 그의 얼굴에 어리는 생동감이 좋아서 담백하게 인정했다.
“들켰네!”